션 베이커 공동제작 ‘왼손잡이 소녀’…“강인한 여성 가장에 대한 헌사”

이민경 기자 2025. 9. 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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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아노라’ 션 베이커 감독, 각본·제작 참여
25년 영화 동료 쩌우스칭 감독 단독 연출작
‘왼손잡이 소녀’의 공동제작자인 션 베이커(왼쪽) 감독과 쩌우스칭 감독. 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대만의 많은 가정에서 아버지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지만 집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무런 일도 하지 않더라고요. 대신 그럼 그 수많은 가정의 대소사는 누가 챙기느냐. 엄마, 여자가 해요. 그래서 아예 싱글맘 가정을 주인공으로 삼으면 여성 가장들이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쩌우스칭 감독)

대만의 쩌우스칭 감독이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아노라’(2024) 등을 연출한 션 베이커 감독과 함께 각본을 쓰고 편집한 영화 ‘왼손잡이 소녀’는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익숙함은 당연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와의 유사성에서 오고, 새로움은 대만계 미국인인 쩌우스칭 감독이 담아낸 대만 사회의 특징과 타이베이 야시장의 배경에서 기인한다.

싱글 맘 쉬펀(차이수전)이 스무살 딸 이안(마쉬유안), 여섯살 딸 이칭(니나예)과 야시장에서 국수가게를 하며 근근히 살아간다. 매일은 정글이며 전쟁터, 세 모녀는 점점 더 수렁에 빠진다. 백마 탄 왕자와 같은 조력자는 없고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더 큰 상처를 부른다.

이 모습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모녀 할리와 무니를 떠올리게 한다. 이칭역을 맡은 니나예의 깜찍하고 무해한 얼굴은 무니를 연기한 브루클린 프린스와 상당부분 겹친다. 싱글맘이자 성노동자인 할리의 특징은 쉬펀과 이안이 각각 나눠가진 모양새다.

25년간 함께 영화를 만들어온 쩌우스칭 감독과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임을 숨기지 못하는 이 영화는 보호해줄 남성가장 없이 홀로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어낸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감독과 상세한 영화 ‘뒷담화’의 시간을 가졌다.

쩌우스칭 감독은 “2010년에 스크립트를 쓸 때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만난 싱글맘이 있다. 이칭과 같은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또 “남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 안에도 ‘드라마’가 가득하기에 그것을 많이 담으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베이커 감독은 “대만의 가부장제에 대해서 다루고 싶었다. 사실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2류 시민(Second class)까지는 아니어도, 남성들만큼 존중받지 못하는데 이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가치관과 시각을 공유하는 두 감독의 인연은 25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미디어학을 공부하러 미국 뉴욕으로 석사유학을 떠난 쩌우스칭 감독은 막 영화 연출과 편집을 시작한 베이커 감독을 만났다.

쩌우스칭 감독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 둘이 정말 비슷한 결의 영화를 좋아하더라. 이제껏 같이 작업하고 있고, 2010년에 이 영화 각본을 만들때도 션과 아이디어를 공유했는데 션이 영화로 각색하자고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왼손잡이 소녀의 한 장면. 언니 이안과 동생 이칭이 대만 타이베이의 주요 교통수단인 바이크를 타고 야시장을 누빈다.레드아이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야기는 작은 소녀 이칭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바로 그녀가 전세계 인구의 12%만이 해당하는 왼손잡이 소녀다. 그런데 대만에서 왼손잡이의 의미는 ‘악마의 손’이라고 불릴 정도로 극단적이다. 쩌우스칭 감독의 외할아버지도 이 미신을 깊게 믿었다고 한다.

베이커 감독의 눈에는 왼손에 대한 터부 개념이 “매혹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말 이국적인 이야기 아닌가. 미국에서도 왼손잡이는 좀 특이하다(odd)고 여겨지지만 불운을 불러오고 악행을 행하게 하는 왼손이라니, 소녀가 할아버지로부터 그 소리를 들으면서 혼란스러워 할 때, 많은 서구 관객들도 그녀처럼 놀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아시아 특유의 ‘체면을 차리는’ 인물들이 쉬펀과 쉬펀의 어머니를 비롯해 영화 곳곳에서 나오는데, 베이커 감독은 “체면 때문에 영화에서 모든 문제의 발단이 생기고 소통이 단절되는게 맞다”며 “그렇기에 우리 영화는 ‘체면에 대한 단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쩌우스칭 감독은 “체면 차리는 문화는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뿌리가 깊은데, 저는 정말 긍정적이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저는 사람들이 이 체면 때문에 숨고 위장한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틀에 모두를 우겨넣으려고 하는게 체면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자신을 잃게 되고 나 스스로를 잃게 되고요.”

한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는 아이폰으로 촬영됐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뮤직비디오를 넘어서 2시간 분량의 장편영화가 전부 아이폰으로 찍혔다. 제작비 절감을 위한 것이냔 질문에 오스카 감독인 베이커 감독은 “전혀 아니다”라며 웃었다.

“저는 신인감독들한테 어중간한 카메라로 찍느니 차라리 아이폰으로 찍으라고 해요. 아마추어 배우들의 경우엔 커다란 촬영용 카메라 앞에서보다 아이폰 앞에서 훨씬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기도 하고요. 아이폰의 신선한 미감도 참 좋거든요.”

쩌우스칭 감독도 “첫날은 야시장에 큰 촬영장비를 들고 갔는데, 그랬더니 사람들이 더 모여들었다. 우리는 세트를 짓지 않고 실제 야시장에 섞여들여 찍어야 했다”며 “그래서 둘째날부터 아이폰으로 바꾸고 스탭도 아주 소수만 투입하는 중대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의 영화와 같이 후편집 과정에서 돈이 꽤 많이 들어가서 제작비 절감 효과는 없었다고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10월 30일 개봉.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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