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경성의 밤은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극적인 무대였다. 조선일보는 ‘야(夜) 경성(京城) 순례기(巡禮記)’라는 제목으로 밤이 되면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드러내는 경성의 희비극을 시리즈로 연재했다. 100년 전 경성의 밤 모습을 찾아 떠나가 보자.
첫 번째는 종로의 야시장(夜市場) 이야기다. “경성의 밤은 왔다. 문명(文明)은 경성의 암흑을 정복하고 수 없는 전등은 불야성(不夜城)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경성의 밤은 잠자는 밤, 침묵의 밤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밤이요 소리치는 밤이었다. 밤의 소리를 듣고자 파리한 단장(短杖)을 동무하여 사람의 발길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따라가니, 뜻밖에 ‘싸구려~’ 소리가 요란히 울려 온다. 백설같은 흰옷 산뜻하게 단장한 유두분면(油頭粉面)의 미인을 태운 인력거가 방울을 따르릉 울리면서 달려온다. 식도원(食道園), 명월관(明月館) 지점이 번개같이 머리 위로 지나간다. 쉴새 없이 일어나는 ‘싸구려’ 소리에 맞춰서 수 없는 전등이 번쩍인다. 조그마한 가가(假家; 가게)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는 수많은 군중이 질서 없이 오고 가고 한다. 자유로 걸음을 옮길 수 없을 만치 어깨가 서로 부딪히고 손과 손이 마주치곤 한다. 땀 냄새와 향내는 섞여 코를 찌른다. 그렇게 두어 걸음씩 밀려가다가는 무엇을 살 듯이 화장품 가가, 철물전, 과실 가가를 한참씩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간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가장 바쁜 볼 일이나 있는 듯이 활개를 치면서 지나다니는 청년들도 있다. 그들은 대개가 남녀 학생이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온 할머니, 할멈을 데리고 온 젊은 아씨, 망건과 갓에 꼬부랑 지팡이를 끄는 시골 첨지, 함부로 차린 건달패, 선생, 신사,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구경 온 사람과 구경시키는 사람, 이렇게 갖은 각색 사람이 나와서 한데 섞여 부대낀다. 그곳은 물건 파는 시장이라는 것보다도 ‘사람 구경터’이라고 하고 싶다. 기약 없이 만나는 사람 가운데 공연히 미운 생각을 주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몹시도 어여쁘고 다정하게도 보인다. 한번 가서 인사라도 해보고 싶은 때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뭇사람의 눈동자는 번개같이 움직인다. 전등에서 상품으로 사람의 얼굴에서 사람의 얼굴로 이렇게 뭇사람의 시선은 쉴새 없이 부딪치고 난데없는 주악 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알고 보니 우미관(優美館) 앞이다. 어떤 연속사진에 명탐정이 악한대(惡漢隊)를 추격하는 장면이 전개된 모양이다. 한 곳에는 사람이 삼첩사중(三疊四重; 거듭해서 겹쳐짐)으로 에워싼 속에서 부드러운 합창 소리가 흘러나온다. 얼른 가서 한 다리 밀고 보니 멀쩡한 청년 4~5명이 창가(唱歌)책 광고를 하고 있었다. 꽤 발달되어 가는 광고술이다. 이렇게 장안 한복판 제일 큰 거리에서는 밤 새로 1시 2시가 지나기까지 남녀노유(男女老幼)의 자유 등장의 희활극(喜活劇)이 연출되니 이것이 바로 대 경성 밤무대의 제1막이다.” (1925년 8월 23일자)
두 번째는 하룻밤을 향락하려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연극장 이야기다. “때는 7시 반! 종로 큰 거리에 군데군데 벌려 있는 각 극장 활동사진관 등의 손님 끄는 유창한 주악(奏樂) 중에 서울의 밤은 어두워간다. 피리, 나팔, 북, 장고 등의 소리와 북악(北岳) 인왕(仁旺)의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온종일 뜨거운 햇발에 시들고 시든 장안 사람을 다시 삶의 무대로 불러들여 온갖 연극을 짓게 한다. 돈 있는 탕자(蕩子)는 기생을 데리고 홍등녹주(紅燈綠酒; 붉은 등불과 푸른 술이라는 뜻으로 화류계를 뜻함)에 무르녹고, 돈 없는 건달은 막걸리 한 잔에 거리를 헤매이며 야시(夜市)의 복판 공원의 ‘뻰취’에도 사람 물결을 이루기 비롯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흥겨운 주악을 따라 이곳저곳의 극장 문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도 역시 수백 수천을 이루어 그들의 자취가 끊길 8시경부터는 문 닫힌 극장 안에서 오직 환희의 웃음과 갈채의 박수가 때때로 문틈을 새어 길거리로 흘러나올 뿐이다. 이것이 오직 서울 중산계급의 사람들이 시달린 머리를 쉬며 삶의 위안을 받는 유일의 향락장이다. 아래 위층 객석에서는 수백 수천의 각 계급 각 방면의 젊은 남녀가 희미한 전등 빛에 싸여 죽은 듯 고요히 앉아 있으나 그들의 날카로운 눈은 어둠에서 활약을 하고 머리는 고요한 속에 음분(淫奔; 남녀가 음탕하고 난잡한 짓을 함)을 짓는다. 무대와 스크린을 바라보고 좋아하고 웃는 학생이 있으면 부인석의 아양 피는 기생들을 건너다보고 어리석은 기쁨을 짓는 점잖다는 신사도 있다. 이리하는 동안에 시간은 자꾸 간다. 9시 10시! 지리한 중에 10분 휴식이 돌아온다. 기생을 건너다보는 신사들은 1분 1초라도 휴식을 더 늘리려 한다. 그러나 힘없는 어린이, 학생들은 휴식을 오히려 지루하다 소리친다. 이리하여 극장의 밤이 깊어가고 서울의 밤이 깊어간다. 최후의 일각. 닫혔던 극장 문이 화다닥 열리면서 봇물이 터지듯 사람의 물결이 밀려 나온다. 그들의 머리에는 주마등같이 지금 본 양극(洋劇)이 번듯번듯 거린다. 철없는 아이는 ‘숭내’를 내며 시시덕거리고 뜻깊은 젊은이는 머리를 기울여 묵상(默想)에 잠기면, 탕자와 춘녀(春女)는 손에 손을 쥐어 하상견지만야(何相見之晩耶; 이제야 너를 만나다니 안타깝도다)를 부른다. 이리하여 여유 있는 사람들의 하룻밤 놀이터의 문이 닫힌다.” (1925년 8월 27일자)
다음 이야기는 단돈 5전(錢)으로 하룻밤을 잘 수 있는 ‘노동 숙박소’ 이야기다. “기쁨의 밤 서울! 설움의 밤 서울! 이와 같이 서울의 밤은 여러 의미로 볼 수가 있다. 돈 있는 사람의 밤, 서울은 향락의 꿈터요 환희의 궁전이 되겠으나 돈 없는 사람의 밤 서울은 한숨의 거친 들(황야)이 되고 괴로움의 흉악한 구렁텅이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더라 ‘서울은 산 송장의 누리’라고. 그러나 이 ‘산 송장’의 누리인 서울에서도 그 안타까운 계급과 구분을 역력히 볼 수 있어 희비의 온갖 인생극이 도처에 얼크러져 일어남이랴! 서천(西天)에 비슷이 걸린 초승달 그림자를 따라 어디 설움의 밤 서울을 찾아보자. 설움의 밤 서울은 과연 음울(陰鬱)한 종로 길 북녘에 죽은 듯 고요히 누워있다. 집 속에서, 거리에서, 사람에게서, 짐승에게서 설움의 밤 서울은 도처에서 눈앞에 나타난다. 내친 걸음이 동관 네거리에 이르니 선뜻 앞에 닥치는 것은 인생 생활의 최하층을 설명하는 화광교원(和光敎園) 경영의 노동자 숙박소였다. 하룻밤 자는데 5전! 누가 이를 싸다 하더냐? 이 5전이나마 없어 처마 밑 굴뚝 옆 신세를 지는 그들에게는 성전(聖殿)이 즉 이곳이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좁기는 관(棺) 속과 같은 더러운 방을 찾아 해가 어스레하면 그들의 발자취가 이어 든다. 온종일 굶주림을 참아 가며 비지땀을 흘려 벌어 온 20~30전의 삭전을 움켜 쥐고 이곳을 찾아 들어 양쌀밥, 강조밥으로 겨우 겨우 소리치는 뱃속을 단속한 후, 지친 몸을 방 한구석에 끼워 두면 빈대, 모기, 벼룩 등의 물 것들이 다시 크게 습격하여 더위와 함께 그들의 단꿈을 깨트리고 만다. 그때에는 기약한 듯이 이 방 저 방으로부터 침통한 한숨 소리가 리듬 맞춰 흘러 나온다. 다시 이웃 단성사에서 둘리는 환성(歡聲)과 박수 소리가 그들의 여윈 살을 점점이 에워 내고 시들은 정신에 날카로운 침질을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육(靈肉)은 때와 날로 가까이 가까이 죽음의 길을 밟고 이에 반비례하는 것은 오직 반항과 원한이 있을 뿐이다. 세상의 사람들아! 아는가? 모르는가? 이리하여 날마다 달마다 설움의 밤 서울은 깊어가고 밝아가는 것이다.” (1925년 8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