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기 있는 날, 대구 미술관로는 파란 물결…주변 상권 매출 ↑
경기 날 지하철은 삼성 팬들로 북적
라팍 주변상권과 미술관, 경제활력 극대화

삼성 라이온즈가 KBO리그 흥행 중심에 섰다. 가성비를 비롯한 삼성라이온즈파크(라팍)만의 화끈한 응원 열기, 오심 없는 공정한 판정 등은 블랙홀처럼 팬들을 라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이 같은 역대급 야구 흥행이 라팍 주변 상권 활성화는 물론, 미술관 관람객 수도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연고의 프로스포츠가 지역 경제와 사회에 성장 엔진으로 거듭난 좋은 예다.

◆ 삼성라이온즈가 만든 진풍경(珍風景)

삼성라이온즈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지하철2호선 문양역에서 라팍이 있는 수성알파시티역까지의 지하철역사(驛舍)에는 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삼성라이온즈 유니폼과 모자를 쓴 팬들이 라팍과 붙어 있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모여든 것이다.
문양역을 출발해 계명대역, 죽전역, 반월당역, 범어역 등을 거치면서 푸른 유니폼 차림의 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수성알파시티역에 이를 때쯤이면 지하철 칸칸마다 삼성라이온즈 팬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역사로 쏟아져 나와 라팍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계단 등은 그야말로 푸른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지난 23일 삼성라이온즈 경기를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는 김민지씨(21·대구 달서구 감삼동)는 "친구 3명과 경기를 보러 간다"며 "지하철이 버스보다 빨리 갈 수 있고, 경기 시작 시간이 임박해 타면 대부분 삼성팬들이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경기를 마친 뒤에도 진풍경은 이어진다. 경기 후 2만여 명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지하철역사(驛舍)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안내원들이 나와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지하철로 가는 길 등을 안내하고 지하철 이용객들의 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지하철을 타기 위해 20~30분 대기하는 일도 다반사다.
대구교통공사도 야구 경기를 관람하려는 시민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임시열차 운행, 안전요원 배치 등 빈틈없는 수송대책을 마련해왔다.
◆ 야구 인기 이유는…한국만의 독특한 응원문화

팬들에게 야구장은 단순히 스포츠를 관람하는 곳을 넘어 거대한 '축제의 장'이다. 한국 야구의 정수는 단연 응원이다. 한국은 경기 내내 쉴 새 없이 노래하고 춤춘다. 메이저리그(MLB)가 고요하게 경기에 집중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환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히 삼성라이온즈의 경기에서 응원 열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모든 선수에게는 각자 고유의 응원가가 있다. 삼성라이온즈의 간판타자였던 이승엽 선수의 "이승엽 홈런!" 같은 떼창은 삼성팬에게는 전설의 곡이다. 지금도 구자욱, 김영웅, 이재현 등 간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라팍이 들썩일 정도다.
야구 관람에서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치맥(치킨+맥주)'은 야구장의 국룰이 됐고, 라팍에는 지역 대표 치킨 브랜드가 입점해 대구만의 치킨맛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 라팍의 명물인 크림새우나 납작만두 등도 즉석에서 즐길 수 있다.
특별한 좌석도 라팍만의 매력이다. 올 시즌 라팍에 신설된 '캠핑존'은 최대 6명이 잔디석 상단에서 함께 관람할 수 있어 가족과 지인 단위 팬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는 다양한 연령층을 라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는 평가다.
3살, 5살 아이들과 라팍을 찾은 이윤미(여·33·대구 수성구)씨는 "라팍에는 잔디석, 모래 놀이석처럼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어린이들이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면서 "응원가도 따라 부르기 쉬워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응원할 수 있다. 주말에 키즈카페를 찾으면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라팍은 부모와 아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선택지"라고 했다.
◆ 야구는 단돈 1만6천원…가성비 스포츠

삼성 팬 최찬경(36·대구 동구)씨는 "라팍 오는 게 즐겁다. 판정도 깔끔하고 응원 분위기도 좋아 계속 오고 싶다"고 말했다.
KBO리그는 2024시즌부터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를 도입했고, 올해는 체크스윙 비디오 판독까지 실시했다. 지난 6월23일부터 7월2일까지 진행된 팬 설문(2천130명)에서 새로운 경기 제도로 인해 관람 빈도가 늘었다는 응답자들은 이유로 '경기 집중력과 몰입도 향상'(32.9%), '공정성 향상'(28.9%)을 꼽았다.
'가성비'도 라팍 흥행의 중요한 배경이다. 지난 4일까지 KBO리그 관중 1인당 평균 지출 입장권 금액은 1만6천715원이다. MZ세대들이 선호하는 공연, 콘서트 등 여가활동 비용에 비하면 무려 3시간 동안 야구 관람과 다양한 먹거리, 응원을 함께 즐기는 야구장은 소요 비용이 저렴해 '가성비 여가소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유명가수의 콘서트나 뮤지컬 등 공연 티켓 가격이 15만~20만 원을 상회하고 영화 관람료도 1만5천원인 점을 감안하며 야구 경기 관람 비용은 아주 저렴한 편이다.
올해에만 3차례 라팍에서 야구를 봤다는 김정훈씨(38·대구 남구)는 "입장료에 음식 값, 대중교통요금 모두 합산해도 3만 원을 넘지 않는다"며 "3~4시간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 가족들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야구장만한 곳이 잘 없다"고 설명했다.
◆ 라팍 옆 대구미술관·대구간송미술관도 '푸른 물결'
라팍 인근에 위치한 대구미술관과 대구간송미술관을 찾는 야구팬들의 발걸음도 늘고 있다. 지역 연고 프로스포츠의 활성화가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대구의 '시각예술 클러스터' 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대구미술관에 따르면, 삼성의 홈경기가 있는 주말에는 평소보다 3~5% 더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고 있다.
대구미술관은 올해 정규시즌 동안 삼성 홈경기 티켓 및 시즌권 소지자에게 관람료 20% 할인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이런 이유로 삼성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야구 유니폼을 입은 관람객을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기에다 대구미술관과 수성알파시티역 사이를 왕복하는 무료 순환버스는 차량이 없는 야구팬들의 미술관 방문 부담을 덜고 있다.
문현주 대구미술관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미술관 운영이 끝나는 시간대(오후 6시 이후)가 되면 미술관로 일대가 삼성팬들의 파란 물결로 일렁인다"면서 "예술의 감동과 스포츠의 열정이 넘치는 미술관로와 야구전설로가 어우러져 대구만의 특별한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경우 지난 4월4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총 1천323명의 관람객이 삼성라이온즈 제휴 입장권 20% 할인 혜택을 받았다. 해당 할인이 대구시민이 아닌 이들에게만 적용(대구시민은 시민할인 20%를 적용 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3천명 안팎의 라팍 방문자가 이 기간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4일 야구경기 전 가족들과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전시를 봤다는 윤희진씨(47·대구 수성구 만촌동)는 "라팍에서 열광적인 응원으로 에너지를 쏟기 전 간송미술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멋진 미술품도 보니 기분이 더 좋다"며 "그림 감상 후 야구경기 관람으로 이어지면서 완벽한 하루 나들이 코스가 됐다"고 만족해했다.
삼성과 LG 경기가 있었던 지난 7월5일 하루에만, 조사 기간 중 최다인 52명의 야구팬이 제휴 할인 혜택을 받고 대구간송미술관을 관람했다. 이어 6월7일(삼성-NC)·8월2일(삼성-LG) 각각 44명, 7월6일(삼성-LG) 38명 순으로 야구팬 제휴 할인 혜택이 많았다.
눈길이 가는 점은 대구간송미술관이 자체 조사한 기획전 관람객(4월30일~8월3일 기준)의 소비 형태다. 이 기간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은 관람객 16만2천여 명이 총 47억1천만 원을 지역에서 소비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금액은 먹거리(16억 원), 숙박비(8억 원), 쇼핑비(7억7천만 원) 순으로 많아 미술관과 프로야구 흥행이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 삼성 경기 있는 날, 배달 건수 몇 배 뛰어

라팍 인근 상권도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6시 20분쯤 삼성과 롯데 자이언츠 경기가 있던 탓에 라팍 인근은 야구팬들로 북적였다. 특히 배달 픽업존인 수성알파시티역 5번 출구 앞에는 20여 대의 오토바이가 길게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배달 기사들은 고객들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라팍을 오가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60대 배달기사 김정문씨(대구 남구)는 "지난해부터 라팍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배달 건수가 몇 배나 증가한다"면서 "특히 지난해의 경우 삼성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체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인근 가게들도 야구팬들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라팍과 가까운 시지광장, 원정 팬들이 반드시 거치는 동대구역 인근 상권, 동성로 일대 역시 홈경기마다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일부 가게에서는 관중들을 위한 특별 메뉴를 개발하거나, 가격 혜택을 제공하는 등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시지광장의 한 치킨집은 건물 외벽에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중계가 있는 당일 유니폼을 착용한 고객에게 2천원 할인한다'는 문구를 내걸어 야구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시지광장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김진수씨(38·대구 서구 내당동)는 "야구 경기 날이면 유니폼을 입고 가게 스크린으로 경기를 보러오는 손님들이 많다"며 "라팍과 시지광장이 대중교통으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이지만 야구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라팍은 전국에서도 높은 상권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KB국민카드가 2022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야구 경기가 열린 날의 전국 9개 야구장 주변 상권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출액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장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46%)였고 라팍(42%)이 2등을 차지했다.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매출이 상승했다.
이예린(여·33·대구 수성구)씨는 "주로 경기장 근처에 있는 치킨집에서 닭강정을 사 먹거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핫도그, 떡볶이, 음료 등을 즐긴다"면서 "삼성의 성적이 좋으면 팬들이 더 많이 경기를 보러 가서 매출도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관람의 열기를 '하는 야구'로…대기업 구단이 물꼬 터야

라팍을 가득 채운 푸른 물결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 가능한 스포츠 생태계로 진화하기 위한 방법은 뭘까. 스포츠산업 전문가들은 '보는 야구'가 '하는 야구'로 확장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천보성 전 LG트윈스 감독은 "야구 인기가 정점에 있을 때 삼성, LG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먼저 사회인 야구, 직장인 야구단을 창단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 구단을 운영하는 모기업들이 사내 야구 문화를 장려하고 전용 구장을 확보하는 등 풀뿌리 인프라 구축에 앞장서야 야구의 저변이 탄탄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포츠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은 직장인 리그와 지역 사회인 야구가 프로야구의 가장 강력한 지지 기반 역할을 한다. 일례로 매년 도쿄돔에서 열리는 사회인 야구 대회 '도시 대항전'에는 토요타, NTT, JR 등 기업들이 자존심을 걸고 출전하며, 결승전엔 수만 명의 임직원, 지역 주민이 응원전을 펼친다.
천 감독은 "대구 역시 삼성 라이온즈라는 독보적인 브랜드 자산을 활용해 사회인 야구 동호인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이는 장비 산업 활성화와 프로야구에 대한 깊은 충성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
현장의 분석도 맥을 같이 한다. 송민구 대구MBC 야구해설위원은 현재의 흥행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보복 소비가 지역사회에 긍정적으로 발현된 형태"라고 진단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위한 야구계의 엄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송 위원은 "성적보다 선수를 추종하는 '아이돌식 팬덤'의 유입으로 야구장이 거대한 파티장이자 놀이공원으로 진화했다"며 "높은 구매력을 가진 이들 신규 팬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암표 근절과 주차난 해소 등 고질적인 불편 사항을 제도적으로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훈·정지윤·이남영기자 hoony@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