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현대 추상 선구자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혁명의 기운이 도처에 어른거렸던 1910~1920년대 러시아는 전위미술의 전성기였다. 카지미르 말레비치(Kas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9~1935)는 ‘절대주의’(Suprematism·쉬프레마티즘)라는 새로운 사조를 열며 러시아 아방가르드(전위) 미술을 이끈 화가였다.
말레비치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과 더불어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하지만 물리적이고 현상적인 세계를 중시한 칸딘스키와 달리, 내재적이고 본질적인 세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직관(intuition)에 의해 창조의 원칙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직관에 이르기 위해서는 재현적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창조의 핵심은 직관이며, 이 직관을 살리려면 형태를 있는 그대로 모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은 그의 작품을 ‘부재(不在)의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 그리고 이 ‘부재의 세계’는 도형과 기하학, 특히 사각형으로 표현됐다. 말레비치를 ‘위대한 예언자’라고 부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입체주의와 야수주의를 계승해 절대주의라는 세계를 개막한 말레비치는 1915년 완전한 추상으로 돌아선다. ‘절대주의 구성’(Suprematist Composition)은 절대주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말레비치는 1915년 12월 하얀 바탕의 캔버스 위에 빨강 검정 등의 단순 정사각형을 그린 그림을 선보이고, 시인인 마야코프스키의 협력을 바탕으로 ‘절대주의’라 이름을 붙였다. 그러면서 “절대주의란 비구상적 제작에 의한 새로운 리얼리즘”이라고 외쳤다. 1927년 베를린과 바르샤바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된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경매에서 6000만2500달러라는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에 팔렸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말레비치에 사각형은 대상의 부재를 알려주는 가장 순수한 형태”라며 “세계와 예술에 대한 그의 깊은 관념이 형상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미술사학자인 밀다 빅투리나에 따르면, 말레비치 회화 기법의 특징 중 하나는 특정 색점을 얻기 위해 물감을 서로 겹겹이 쌓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붉은색 점에 두 가지 색층, 즉 아래쪽 검은색과 위쪽 빨간색을 사용하는 식이다. 이 색점을 통과하는 광선은 보는 사람에게 빨간색이 아닌 약간의 어둠으로 인식된다.
절대주의는 극단적 단순화가 특징이다. 대상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대상(non-objective) 미술’로 불리기도 한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설명한 ‘비구상 세계’(The Non-Objective World)라는 책도 썼다.
말레비치는 입체주의(큐비즘)에서 극한의 순수한 기하학적 추상을 추출해냈다. 그는 순수함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겼다. 절대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제로(zero) 형태’다. 말레비치는 “형태의 영(zero)으로 자신을 변형하고 환상의 쓰레기 더미와 자연주의의 구덩이에서 스스로를 끌어냈다”고 했다. 형태들은 말레비치의 손에 의해 자유로워진다. 말레비치는 형태들이 생명과 독자적인 존재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몬드리안이 단계적인 단순화 과정을 거쳐 형태를 제로로 만든 것과 달리 처음부터 무형태를 지향했다.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와 단색조의 컬러, 공격성과 영적 순수함, 그리고 공간상의 운동도 절대주의의 특징이다.
말레비치는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인 키이우 인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폴란드계였다. 궁핍했지만 1900년경 모스크바로 그림 공부를 하러 갔다가 1905년 12월 폭동을 체험하고 회화의 혁명을 꿈꾼다. 초기에는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주의, 미래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며 ‘농민 시리즈’를 그렸다.
그가 화가로 본격 활동하던 시절 러시아는 1904년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했으며, 1914년 레닌의 볼세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는 등 대혼돈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말레비치는 미술로 끌어들였다. 레닌의 볼세비즘에 호응, 미술에서 평등주의를 반영했으며, 비구상 미술을 앞세웠다. 그가 창시한 절대주의는 국제 추상주의 운동의 중심이 됐다.
말레비치는 형상의 해체를 통해 미술에서의 평등을 이루려 했다. 화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같은 의미 있는 새로운 실재들을 창조해야 한다. 그에게 절대주의는 창작 예술에서 순수 감성의 절대적 우위를 뜻한다. 물질적, 시각적 현실세계를 초월해 볼셰비키적 정신세계를 표현하려 한 것이다.

이런 그의 철학은 1912년 작인 ‘눈보라가 지나간 마을의 아침’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레비치가 절대주의를 선언하기 전 그린 그림이다. 눈보라가 한 차례 지나간 시리면서도 투명한 아침 길을 두 사람의 마을 사람이 터벅터벅 걸어간다. 하지만 구체적 형태는 사라지고 사람과 집, 나무는 입방체 기하학적 모양으로 묘사됐다.

말레비치는 1915년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 합동전시회인 ‘마지막 미래주의 전시 : 0, 10’에서 39점의 작품 전시한다. 전시회 이름은 완전한 비구상인 제로를 지향하는 10명의 화가 전시회(0, 10)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이 ‘검은 사각형’이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절대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옛 예술과 새 예술 사이의 넘을 수 없는 선을 그렸다.
러시아 가정은 벽과 벽이 맞닿은 모서리 꼭대기를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꼽는다. 말레비치는 전시장의 이 자리에 ‘검은 사각형’을 전시한다. 기존 관념들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검은 사각형 하나만을 그려놓고 말레비치는 “자연 오브제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하고 회회에서 어떤 자연의 환영도 불러일으켜선 안된다”며 ‘입체주의에서 절대주의로’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후 말레비치의 사각형 시리즈는 검은 색, 유채색, 흰색으로 넘어간다.
말레비치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전파하는 미술교육자로도 활동했다. 1919년 모스크바 미술학교의 교수가 됐으며, 1921년에는 레닌그라드 미술학교의 초청을 받았다. 샤갈의 고향이던 벨라루스 비템스크(벨라루스어로는 비쳅스크) 미술학교에서 교장이던 샤갈의 밑에서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 회화를 주장하는 샤갈과 혁명의 교조주의 및 절대주의를 옹호하던 말레비치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예술을 통해 혁명이 구현되기를 바랐던 말레비치는 회화뿐만 아니라 건축, 도자기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작품에 남아 있는 순수 미학은 레닌 사후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스탈린 체제 아래 그의 절대주의 작품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며 숙청 대상이 된 것이다. 이데올로기 전파에 봉사하는 예술이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앞세운 스탈린 정권에 이를 거부한 말레비치는 눈엣가시였다. 그를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화가’라고 낙인을 찍었으며, 소련공산당은 그를 몽상가적 철학가쯤으로 치부했다. 결국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KGB에 의해 투옥돼 간첩 혐의로 사형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가난에 시달리던 말레비치는 1933년 암 진단을 받았으며, 2년 후인 1935년 56세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한다. 그는 영욕을 남긴채 친구들과 제자들이 만든 검은 사각형으로 표시된 무덤속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신비주의와 허무주의를 통해 추상 회화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 유토피아를 꿈꾼 예술가였던 말레비치. 그의 사후 스탈린 독재는 그의 작품들을 파괴했으며, 나치도 ‘퇴폐 미술’ 목록에 올렸다. 예술의 혁명을 주장했던 그가 ‘혁명 세력’에 의해 숙청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들이 일부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바우하우스를 건축한 후고 헤링 덕분이다. 말레비치의 작품들은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 뉴욕의 현대 미술관 ,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1973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말레비치 작품의 첫 미국 회고전은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60일간의 교양미술’의 저자인 박광혁 씨는 “말레비치의 작품은 현대 디자인의 표본으로, 미니멀리즘으로 나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방금 뭘 봤지?”…퇴근시간 교량 인도 질주한 SUV
- 11개월 딸 살해·유기한 아빠…검찰, 항소심서 징역 20년 구형
- “법원서 보자” 접수 소송만 700만건…민·형사 늘고 이혼건 줄고
- 길고양이 밥주는척 쥐약 살포…용의자 혐의 부인, 수사중
- “황의조는 ‘준 영구제명’, 국내 활동 못한다”…대한축구협회 입장문
- 검찰, ‘초등생 살인’ 교사 명재완에 사형 구형…“86차례 반성문에도 반성 없어”
- 희대의 ‘1050원 초코파이 절도’ 재판…지검장 “상식선에서 들여다볼 것”
- 40대 엄마 사망·7살 아들 중상…한밤중 남양주 다세대주택서 화재
- “너무 아찔”…고속도로 달리던 차 6대 타이어 파손, 무슨 일
- ‘무료 국수 맛있게 먹었잖아’…金총리 “한수원 월성본부 현수막 모욕적, 경위 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