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양보하라던 트럼프, 180도 바뀐 태도 "러시아는 종이 호랑이"

권경성 2025. 9. 24. 17: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엔 총회서 젤렌스키 만난 뒤 SNS 글
나토엔 영공 침범 러 비행기 격추 독려
“공허한 말뿐” 유엔 맹공, 北 언급 없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3일 유엔 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에서 따로 회동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양보를 압박해 러시아와의 전쟁을 끝내도록 하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향을 틀었다. 러시아를 ‘종이호랑이’라 부르며, 어쩌면 빼앗긴 영토를 전부 되찾는 것은 물론 전쟁에서 승리할지도 모른다고 우크라이나를 편들었다. 6년 만에 유엔 총회 연단에 선 그는 도처에 전쟁인데 공허한 말뿐이라며 유엔을 맹공했지만 북핵 위협은 언급하지 않았다.


180도 바뀐 입장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으면 (러시아와) 싸워 이기고 우크라이나를 (영토를 빼앗기기 전)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영토 수복 이상의 성과를 거둘 저력이 있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판단이 근거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강국이라면 일주일 내에 끝냈어야 할 전쟁을 러시아가 3년 반 동안 끌고 있다며 이게 러시아를 종이호랑이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붕괴된 전시 경제가 러시아의 약점이라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러시아는 심각한 경제적 곤경에 빠져 있고 지금이야말로 우크라이나가 행동에 나설 때”라며 “우리는 계속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무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는 불과 한 달여 사이에 일어난 극적인 전향이다. 지난달 미국 알래스카주(州)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려면 우크라이나가 영토 일부 포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지금껏 발언 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장 강력한 공개 지지”라고 평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반색했다. 유엔 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에서 이날 자신과 회담한 뒤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그는 취재진에 “큰 변화(big shift)”라고 논평했다. 또 푸틴 대통령의 정보를 신뢰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말 중 일부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 있다는 언급도 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푸틴 전화 한 통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막한 제80차 유엔 총회 고위급 주간 일반 토의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이날 드러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입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담 직전 러시아 항공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하면 격추하라고 나토 회원국을 독려했다. 러시아 무인기(드론)와 전투기가 최근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나토 회원국 영공에 진입하는 일이 늘고 있는 와중에 이뤄진 입장 표명이었다. 다만 미국의 지원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그는 덧붙였다.

외교에서 압박으로 대러 대응 기조를 선회한 듯한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 예고한 조치는 고강도의 제재다. 그는 이날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앞서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미국은 강력한 관세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다만 그게 효과가 있으려면 유럽 국가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유럽을 상대로 “러시아산 에너지를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도 협조하려는 기색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뉴욕 회동에서 “러시아 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취재진에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연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회의론도 없지 않다. EU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의 전화 한 통이면 바뀔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유엔보다 유능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이후 6년 만에 이뤄진 이날 유엔 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올해 재집권 뒤 8개월간 자신의 중재로 7개의 세계 분쟁이 종식됐다는 사실을 부각하며 “유엔이 할 일을 내가 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유엔이 하는 일이라고는 강경한 어조의 편지를 보내는 게 전부”라며 “공허한 말로는 전쟁을 해결하지 못한다. 전쟁을 해결하는 것은 행동”이라고 훈계했다. 또 그렇게 국제 분쟁 해결에는 무능한 유엔이 ‘사기’나 다름없는 기후 위기론 설파와 불법 이민자 지원에 앞장선다고 독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우월성을 자랑하는 데 1시간 가까운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자신을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로 묘사하려 했다”고 논평했다.

이란의 핵 보유를 저지하겠다는 의지는 밝혔지만 북한 핵 위협을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비핵화 목표를 미국이 포기할 경우 북미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밝힌 만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 국무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정책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성공적인 무역 합의국의 사례로 소개됐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베를린=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