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1년…내년 3월 ‘주총’ 분수령될까

허인회 기자 2025. 9. 24. 15:5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개 매수 시작으로 소송만 24건…여전한 극한 대립
“최대주주의 정당한 경영 정상화” VS “적대적 M&A 막겠다”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영풍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를 앞세워 고려아연의 경영권 장악에 나선 지 1년이 지났다.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75년 간 이어온 동업 관계는 공개 매수를 시작으로 적대 관계로 돌변했다. '쩐의 전쟁' 이후에도 양측은 소송전을 통해 경영권 쟁탈을 위한 공세를 굽히지 않았다. 승자 없는 경영권 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측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주총 이사진 구성 변화에 따라 이사회 주도권을 쥐는 쪽이 한 발 앞서 나갈 것이란 관측이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1년을 맞이한 가운데 양측의 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모습 ⓒ연합뉴스

두 동강 난 '한 지붕 두 가족'

1949년부터 이어온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영풍기업사를 모태로 하는 영풍그룹은 국내 재벌가(家)에서 유일하게 '한 지붕 두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집안은 번갈아 그룹 회장을 맡으며 잡음 없이 성장을 이끌어왔다.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의 경우 최대 주주는 장씨 일가의 영풍이지만, 경영은 최씨 일가에서 맡는 식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2세와 3세 경영자로 세대가 바뀌면서 고려아연을 둘러싼 두 가문의 파열 징후는 선명해졌다.

고 최기호 창업주의 손자이자 최창걸 명예회장의 차남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3세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갈등 양상은 뚜렷해졌다. 최 회장 측이 자사주 맞교환을 통해 우호지분을 대거 확보하면서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의 지분을 맹추격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양측은 신사업 확장이나 배당 정책 등 경영전략에서 갈등을 빚으며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위기감을 느낀 영풍은 지난해 9월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MBK를 등에 업고 약 2조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다. 경영권 분쟁의 서막을 알린 순간이었다.

영풍·MBK의 공개매수에 고려아연 측은 "최대주주인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라며 "세계 1위 비철금속인 당사에 대한 기업사냥꾼의 적대적·약탈적 인수합병(M&A)이라고 판단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영풍과 MBK는 "공개매수는 명백한 최대주주, 1대 주주의 경영권 강화 차원이며 장씨와 최씨 일가의 지분 격차만을 보더라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적대적 M&A는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사적으로 장악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최대주주의 정당한 권한 행사에 부딪히자 반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해 10월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승자 없는 머니 게임 속 유증 논란도

영풍과 MBK는 공개매수 선언 후 주가가 오르자 공개 매수가를 66만원에서 75만원, 83만원으로 올리며 지분 확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최 회장 측도 반격에 나섰다.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자사주 공개 매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국내 자본시장에선 이례적인 '쌍방 공개매수'라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최 회장 측은 영풍·MBK 연합의 공개매수가에 맞춘 83만원을 제시했다가 89만원까지 가격을 올렸다.

양측의 '머니게임'이 과열되자 당국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당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도외시한 지나친 공개매수 가격 경쟁은 종국적으로 주주가치 훼손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상대 측 공개매수 방해 목적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확인되면 누구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쟁 같던 공개매수 이후 영풍·MBK 연합은 5.34% 지분을 확보했다. 고려아연은 9.85%를 얻었다. 그러나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 중 어느 쪽도 지분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승자 없는 공개매수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또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10월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MBK·영풍 연합의 지분율을 희석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유증 시도는 당국에 의해 가로막혔다. 유증 계획을 숨기고 공개매수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이 제출한 유증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었다. 관련 증권사에 대해 현장조사에도 나섰다.

결국 최 회장 측은 유증 방침을 철회하기로 했다. 당시 고려아연은 "그동안 일반공모 유상증자의 필요성과 적정성에 대해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여전히 부정적 의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시장과 주주의 우려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유증 시도를 접었다. 현재 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은 공개매수 직후 유상증자를 시도한 부분과 관련해 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양측은 지난 1월 임시 주총에서 다시 맞붙었다. 영풍·MBK의 소집 요구로 이뤄진 임시 주총을 앞두고 양측의 지분 격차는 약 5%포인트 수준이었다. 영풍·MBK 측이 약 39%, 최 회장 측이 약 34%였다. 근소하게 지분이 앞선 영풍과 MBK는 이사 14명 추가 선임을 통해 이사회를 장악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강성두 영풍 사장이 지난해 9월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윤범, '상호주 의결권 제한' 통해 경영권 방어 성공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최 회장 측이 주총 전날 '상호주 의결권 제한' 전략을 꺼낸 것이다. 지난 1월22일 고려아연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은 최 회장 등 최씨 일가와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약 10.3%를 취득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순환출자를 형성하면서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상법 제369조 제3항은 회사·모회사·자회사가 다른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갖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되면서 영풍이 갖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 25.42%는 의결권을 상실했다. 결국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집중투표제 등의 안건만 주총에서 통과했다. 추천 이사 14명을 이사회에 새로 진입시켜 과반을 확보하려 했던 영풍·MBK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영풍·MBK은 주총 결과가 원천 무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영풍은 "최 회장 측이 '탈법적 상호출자' 꼼수를 동원해 정당한 의결권 행사를 부당하게 가로막았다"며 "SMC은 외국 법인이자 유한회사로서, 상법상 상호주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MBK 측도 "최 회장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SMC에 영풍 주식을 30%나 싸게 팔면서까지 가담시켜 공정거래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우리는 시간적인 여유도, 자금도 많다. 고려아연 이사회에 어떻게든 들어가서 온 힘을 다 쏟을 생각"이라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상법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상법 제369조 제3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은 없다"며 "SMC는 유한책임회사 혹은 유한회사가 아니라 주식회사"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영풍·MBK 측은 곧바로 임시주총 결의의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냈다. 법원은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영풍·MBK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의결권이 부활한 영풍·MBK은 3월 정기 주총에서 재차 이사회 진입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무산됐다. 최 회장 측이 해외계열사를 활용해 새로운 상호주 관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다시 의결권이 제한된 영풍·MBK은 정기 주총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다만 강성두 영풍 사장·김광일 MBK 부회장·권강석 우리금융캐피탈 고문을 이사회에 진입시켰다. 이후 정기 주총 결의 효력정지를 요구하는 가처분을 냈지만 이번엔 법원이 고려아연의 손을 들어줬다. 임시 주총과 정기 주총에서 영풍·MBK의 공격을 막아낸 최 회장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3월28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1기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 주주총회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경영권 분쟁 1년 맞아 또 날선 공방

최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지만 양측의 싸움은 계속 되고 있다. 지난 1년간 양측에서 발생한 소송만 24건이다. 여론전을 활용한 공방도 여전하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연루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이에 고려아연은 "영풍의 주장에 대해선 "MBK와 손잡고 적대적 M&A 야욕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구설을 만들어 낸 것"이라며 "악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인위적으로 의혹을 만들어내는 데 급급한 모습"이라고 맞받아쳤다.

양측은 경영권 분쟁 1년을 맞아 재차 날선 공방을 이어갔다. 고려아연은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최근 영풍·MBK 측이 잇따라 내놓는 일방적 주장과 고려아연에 대한 음해는 기업을 일종의 소유물, 또는 사유화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방증한다"면서 "(이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 국가기간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으로서 역할과 고용 창출, 국익 차원의 기여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부족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전 임직원이 합심해 제2의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 롯데카드 해킹 사고, 환경오염 기업이라는 오명이 고려아연에서 재발하지 않도록 영풍·MBK 측의 적대적 M&A를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영풍은 "최대주주의 정당한 주주권 행사를 '적대적 M&A'로 오도하면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이는 본질을 흐리는 매우 유감스러운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향하는 '경영 정상화'는 소수주주이자 경영 대리인에 불과한 최윤범 회장이 사익을 위해 독단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온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정당한 요구"라며 "우리의 목적은 '지배력 확보'가 아니라, 최대주주의 정당한 '경영 정상화'이며, 이는 공정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회복과 모든 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권 분쟁이 초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내년 3월 이뤄질 정기 주총의 결과도 주목된다. 최 회장을 비롯한 이사 6명의 임기 만료로 후임 이사 인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사회 구성은 직무 정지 상태인 4명을 제외하면 고려아연 측 11명 대 MBK·영풍 연합 측 4명으로 고려아연 측이 우세한 상태다.

내년 주총에선 집중투표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최 회장 측이 다소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의결권을 몰아서 행사할 수 있어 MBK·영풍보다 지분율이 열세한 최 회장 측에 유리하다. 그러나 MBK·영풍 측 인사도 이사회 추가 합류 가능성이 있어 이와 같은 상황이 해마다 반복된다면 MBK·영풍 측의 과반 확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