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만수 감독을 키운 8할은 94세 생신날 눈 감은 아버지

김종석 기자 2025. 9. 2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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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최다승, 최다우승 신기록 제조기 유재학 본부장
-‘공부하는 선수’의 원형, 선친의 남다른 교육 철학
-50년 전 지혜가 아쉬운 요즘 학생 운동부 현실
프로농구 사령탑 시절 최다승, 최다우승 기록 등 최다와 관련된 기록을 다수 갖고 있는 명장 유재학 KBL 본부장. KBL 제공

유재학 한국농구연맹(KBL) 경기본부장(62)은 감독 시절 '만수'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변화무쌍한 작전 구사 능력, 상대의 허를 찌르는 수읽기, 선수 개개인의 심리와 기량에 따른 맞춤형 용병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리더십을 지닌 유 감독은 프로농구 역사를 빛낸 갖가지 기록의 보유자입니다.


  정규시즌 1257경기에 나서 724승 533패, 승률 76%을 기록했는데 출전 경기 수, 최다승 등에서 모두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챔피언결정전에 7차례 진출해 6차례 우승한 것도 단연 1위입니다. 역대 최장인 10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이끌었습니다. 한국 농구 아시아 정상에 오른 것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이었습니다.


  유재학 감독의 지략이 이처럼 빛날 수 있었던 건 아버지 유병선 씨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3형제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유 감독은 1970년대 상명초등학교 다니면서 농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주방용품 제조업을 하던 유 감독의 아버지는 공부와 함께 예체능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피아노, 바이올린, 태권도 하고 있던 유 감독의 눈에 농구가 꽂힌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유 감독은 "다니던 학교에 농구부가 있었다. 농구 응원하러 갔는데 너무 재밌어 보이더라. 그래서 농구부 감독이셨던 세 살 위 친 형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선수가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유재학 본부장과 전창진 전 KCC 감독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뒤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갈라섰지만, 청소년 대표로 한솥밥을 먹었다. 학창 시절 유 본부장과 전 전 감독. 채널에이 자료

사립초등학교였던 상명초등학교는 무리한 체력 훈련보다는 1대 1 위주의 게임으로 농구를 재밌게 지도했습니다. 경기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기본기와 개인기를 키우고 농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초등학교 때 동기가 바로 전창진 전 KCC 감독입니다. 


  농구의 재미에 푹 빠져 초등학교 때 이미 남다른 실력으로 전국구 꿈나무가 된 유 감독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에 빠집니다. 공부도, 농구도 전교에서 모두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유 감독의 아버지는 운동을 그만하고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그를 용산중에서 놔두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유 감독 집에 찾아와 특기생 입학을 권유한 겁니다.


  결국 유 감독은 아버지의 '거래'를 통해 계속 농구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수업엔 꼭 들어가고, 구타가 있어선 안 된다는 조건을 용산중에서 들어주면 입학하겠다고 하셨고 학교 측에서 수용한 겁니다. 또 학원이나 과외도 할 수 있도록 오후 6시까지만 운동해야 했습니다. 덕분에 중학교 때 한 대도 안 맞고 운동할 수 있었고 공부도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1학년 때 반장도 하고, 2학년 때까지는 10등 안에 들었어요."

연세대 코치 시절 인연을 맺은 최희암 감독(고려용접봉 부회장). 최 감독과 유 본부장은 모두 선수 관리의 대가로 불린다. 채널에이 자료

국사, 국어, 영어, 사회 과목을 좋아한 유 감독은 동기생 전창진 등과 용산중 전성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졸업반 때는 다시 진로를 고민하게 됩니다. 용산중에서는 대부분 용산고로 진학하는 데 경복고에 입학한 겁니다. "당시 용산고에는 이재호 고명화 같은 뛰어난 선배들이 많아 출전 기회가 적을 것 같았습니다. 경복고에 가면 1학년부터 베스트로 뛸 것 같았습니다."


  유 감독의 부모님은 처음엔 순리대로 용산고 진학을 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 감독은 원하는 팀에서 뛰고 싶다며 버텼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요. 결국 경복고 유니폼을 입은 유 감독은 고교 신입생 때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연세대 입학 후에는 훈련으로 바쁜 가운데도 수업에 들어간 덕분에 졸업 후 사회 구석구석에 진출한 친구들과 오랜 세월 우애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된 뒤에는 선수들에게 독서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감독에서는 물러났어도 유 본부장은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KBL 본부장 등 행정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다양한 경험이 그 자양분이 됐습니다.

모비스 감독 시절 양동근과 대화하고 있는 유재학 본부장. 채널에이 자료

유 본부장의 제자 가운데는 유독 프로 감독이 많습니다. 조동현, 양동근, 문경은, 이상민 등은 대학과 프로에서 유 본부장 밑에서 지도를 받은 인연이 있습니다. 남다른 리더십을 지닌 유 감독은 지도자 아카데미 원장이라는 말까지 듣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50년 전에 이미 요즘 강조하는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모범사례가 됐던 겁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자식 교육에 철저했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유 감독은 농구 선수와 지도자로 정신없이 바쁜 일정에도 서울 목동에 살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수시로 찾아뵈었습니다.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면서 거처를 모비스 용인 숙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드릴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필자는 언젠가 유재학 감독이 요로결석으로 고생한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보도 다음 날 유 감독은 "아버지가 기사를 보시고 아들 걱정을 많이 하신다"라며 "다음에는 말짱해졌다는 내용을 담아달라"라며 웃은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셨다면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다고 말한 유재학 감독이 23일 부친상을 당했습니다.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셨지만 바로 전날까지도 피자, 김치볶음밥 등을 드셨을 만큼 전혀 이상한 기색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KBL 운영을 이끄는 유재학 경기본부장. KBL 제공

유 감독은 지난 주말 프로농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열린 시범경기 참관을 위해 울산, 창원 출장을 다녀온 뒤 월요일 아침 아버지를 찾아뵙고 출근까지 했다가 비보를 접하고 황망히 달려갔다고 합니다.


  빈소가 마련된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농구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학연을 많이 따지는 농구계이지만 평소 출신을 가리지 않는 행보로 유명했던 유 감독이었기에 범 농구계의 추모 물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눈을 감으신 날은 마침 1931년 태어난 아버지의 생신이었다고 합니다. 발인은 24일. 아버지는 경기 광주의 한 가족 봉안당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유재학 감독은 "언제부턴가 잘 걷지 못하시면서 근육이 다 빠져 뼈만 앙상해진 아버지를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다. 더 자주 찾아뵙고 시간도 같이 보내 드렸어야 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습니다. 


  빈소에는 유 감독의 모교인 경복고 농구부 지도자, 선수 약 20명도 단체 문상을 왔습니다. 말끔한 교복 차림을 한 10대 선수들은 이런 자리가 처음인 듯 굳은 표정으로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더군요. "많이 먹어.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고, 그래야 우리 아버지도 좋아하실 거야." 하늘 같은 대선배의 한마디에 선수들은 그에서야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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