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오전만 일해" 사장님의 결단…'주 4.5일' 지방 중소기업이 어떻게

유연근무제나 주 4.5일제와 같은 근로시간 단축 제도는 대기업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인력 운용과 회사 경영에 여유가 있고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시행할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회사와의 협업이 중요한 제조업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나선 기업들도 있다. 배터리 안전관리시스템 전문기업 비에이에너지와 제약업체 한독이다.
24일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첫 회의에서는 비에이에너지의 시차 출퇴근과 에너지 위크 제도가 중소기업 근로시간 단축의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광주에 본사를 둔 비에이에너지는 임직원 35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다. 2014년 설립해 회사가 운영된 지 이제 약 10년 남짓이지만 임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실현을 목표로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선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시차 출퇴근 제도는 일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2019년부터 시행됐다. 업무 특성에 맞춰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해 8시간 근무를 채우는 방식이다. 제도를 이용한 임직원들의 업무 집중도와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자 회사는 지난해 4월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시차 출퇴근제를 적용했다.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에너지 위크는 매월 첫번째와 세번째 주 금요일에 오전에만 근무하는 제도다.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자기 계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일종의 변형된 주 4.5일제다.
이는 주 4일제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방식이다. 비에이에너지는 2022년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시범적으로 주 4일제를 실시했다. 근무시간 단축 없이 주 4일제를 운영하다보니 개인이 연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회계상 비용 처리의 문제도 발생했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마감해야 하는 업무를 할 때는 초과근무를 하기도 했다. 고객사와의 협업이나 긴급 업무 대응 등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일부 직원들도 불만을 제기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자격을 갖춘 일부 기업만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많았다. 하지만 비에이에너지는 근로시간을 다시 늘리기보다 '격주 금요일 오전 근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단순히 직원 복지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고 이직률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박민선 비에이에너지 인사팀장은 "다양한 제도를 통해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업무 몰입도가 높아졌다"며 "복지가 단순한 복리후생이 아닌 실질적으로 직원들의 삶과 업무의 균형을 맞추는 제도로 자리 잡아 조직의 신뢰와 유대감이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대외 이미지가 개선되고 고객사나 투자사 등에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71년 전통의 제약사 한독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한 모범사례로 꼽혔다. 한독은 노동시간의 양보다 성과에 집중했다.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보다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과 향상의 핵심은 디지털화와 AI의 활용이다. 생산공장에서 불필요한 종이 사용을 줄이기 위해 2019년부터 페이퍼리스(Paperless)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수기로 기록했던 업무 대부분을 전자 기록으로 자동화하면서 종이 사용량이 96%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서류 작성과 보관 등에 소요되는 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3년 전부터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다양한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견적서 자동 생성 △동향 기사 정보수집 자동화 △회의록 자동요약 △이메일 발송 자동화 등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공유했다.
그 결과 생산공장에서 초과 근로시간은 2023년 3만2000시간에서 올해 2만2000시간(예상치)으로 31%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대로 이 기간 생산량은 12억2100만정에서 12억7300만정(예상치)으로 4.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의 업무량은 최소 50%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도 충분히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한독은 1998년 제약회사 최초로 주 5일 근무를 시작했으며 2002년 시차 출퇴근제, 2018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한독의 기본 연차휴가는 법정휴가 15일보다 7일 많은 22일이다. 신입사원부터 22일의 기본 연차를 부여한다. 여성 직원은 한 달에 1일씩 1년에 총 12일의 유급 생리휴가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근속 5년마다 최대 1개월의 리프레시 휴가를 제공하고 20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는 공가 3일과 해외 연수 자금을 지원한다. 이는 직원들의 장기근속 유인으로도 작용한다. 전재영 한독 인사팀 대리는 "회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11.2년이고 10년, 20년, 30년 근속하신 분들이 매해 60여명씩 나온다"고 설명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보다 많은 사업장에 확대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 팀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서 대부분 기업이 도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며 "각 기업의 업무 스타일과 여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제도의 설계와 이를 조정하고 승인할 수 있는 심사기관 등 전담 부서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노사정이 참여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운영을 통해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노동시간 단축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추진단을 이날 회의를 시작으로 앞으로 3개월 간 다양한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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