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서 태국 대신 베트남 간다”... 바트화 ‘이상 급등’ 여행객 발길 ‘뚝’
관광·수출 산업 ‘복합 위기’ 초래
金 거래세 부과 등 안정 대책 검토
한국 원화를 비롯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 통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유독 태국 바트화 가치가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나 홀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서만 달러 대비 8% 가까이 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금(金) 거래 급증이지만, 그 이면에는 약 5000억 바트(약 20조원)에 달하는 ‘검은 돈(grey money)’이 국경을 넘어와 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화가치가 너무 오른 탓에 태국 핵심 산업인 관광업과 제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23일 로이터와 현지 매체 더 네이션에 따르면 바트화는 이달 들어 4년 만에 고점을 찍을 만큼 강세를 보이고 있다. 태국 중앙은행(BOT)은 바트화 강세 원인으로 금 거래와 경상수지 흑자를 꼽았다. 태국은 개인 간 금 거래가 활발한 시장이다. 금 세공 기술도 발달해 금을 중요한 수출품처럼 거래한다. 올해처럼 금값이 치솟으면, 태국 내 개인과 상점들은 보유하던 금을 국제시장에 팔아 달러를 번다. 이렇게 확보한 달러를 태국 내에서 사용하기 위해 바트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바트화 가치가 올라가는 구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 거래만으로는 이례적인 바트화 강세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바트화 급등 진짜 원인으로 ‘돈세탁’을 지목했다. 동남아시아에 거점을 둔 초국적 범죄 조직들이 불법적으로 얻은 암호화폐를 태국으로 들여와 바트화로 바꾼 뒤, 금이나 부동산 같은 안전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디지털 자산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세탁된 자금이 5000억 바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캄보디아와 금 거래가 이례적으로 폭증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태국 국제수지 통계에서 드러난다. 국가 외환 거래 장부에 해당하는 국제수지에는 ‘순오차 및 누락(Net Errors and Omissions·NEO)’이라는 항목이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자금 흐름을 보여주는 일종의 ‘조정 항목’이다. 이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크면 지하 경제나 불법 자금 유입을 의심할 만 하다. 태국 NEO는 2023년 1804억 바트에서 2024년 5308억 바트(약 21조원)로 세 배 가까이 폭증했다.
수파웃 사이츠아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NESDC) 의장은 “이 돈은 회색 사업에서 나온다. 우리는 돈이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며 “중앙은행은 온라인 금 거래가 아닌 이 문제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한 바트화’는 태국 경제를 지탱하는 두 축 수출과 관광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태국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18%가 관광 산업에서 나온다. 3% 남짓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통화 가치가 오르면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여행 경비 부담이 커진다. 수출 부문에선 태국 제품 가격이 비싸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카시콘뱅크 컵싯 실파차이 연구원은 로이터에 “바트화 강세가 여름 관광 성수기를 앞두고 좋지 않은 시점에 찾아왔다”며 “휴가철 관광객들은 더 나은 가치를 찾아 다른 국가로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올해 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태국 관광청(TAT)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9월 21일까지 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약 2345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4% 줄었다. 특히 미국 달러 약세와 맞물려 미국인 관광객은 5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TAT는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관광 수입이 목표치보다 15~17%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태국이 바트화 강세로 고전하는 사이 관광객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인접국 베트남은 저렴한 비용을 무기로 태국 입지를 일부 차지했다. 베트남은 저가 항공편을 늘리고 비자 정책을 완화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연간 1400만명에 가까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상대적으로 비싸진 태국을 여행하려던 관광객들이 베트남이나 일본,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가 이끄는 태국 새 정부는 ‘바트화 강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재무부, 중앙은행, 증권거래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다부처 대응팀을 꾸려 바트화 강세에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앙은행은 금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금을 거래할 때 달러로만 결제하게 해 바트화 환전 수요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차야와디 차이아난 중앙은행 부총재보는 “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바트화 강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통화에 대한 상승 압력을 줄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검은 돈’ 유입을 막지 못하면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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