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 적어가며 일했는데"···퇴직금 안주려 근로기간 '지우기'에 노동부 "위법성 검토"

송주용 2025. 9. 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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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CFS, 일용직 퇴직금 기준 초기화 도입
중간 한달 60시간 미만 시 근로기간 초기화
노동계 "대법원 판례 어긋나는 꼼수" 분노
노동부 "위법사항 검토 후 행정명령" 답변
지난달 서울의 한 쿠팡 물류센터를 오가는 차량. 연합뉴스

"4주 60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말에 (근로시간을) 노트에 적어가며 일했는데 퇴직금 대상이 아니라고 해 황당했습니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 꼼수를 부린 거죠."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이전에 일한 근로시간이 인정되지 않고 리셋(초기화)돼서 퇴직금을 받지 못하게 된 한 일용직 노동자의 하소연이다.

쿠팡풀필먼트(CFS)가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지급 기준에 이전 근무기간을 지우는 리셋 조항을 설정한 것과 관련, 고용노동부가 위법성 검토에 나섰다. 노동부는 위법성이 확인될 경우 취업규칙을 바꾸도록 행정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쿠팡CFS는 쿠팡의 물류 자회사다. 물류센터 운영과 상품 보관, 포장, 출고 등을 담당한다.


한 달 60시간 미만 일하면, 1년 일해도 근로기간 '없음'

쿠팡 물류센터 내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페이스북 캡처.

24일 노동계에 따르면 쿠팡CFS는 2023년 5월과 지난해 4월 일용직 노동자 취업규칙을 변경했다. 기존 취업규칙은 '처음 일한 날부터 마지막 일한 날까지 근무일이 1년 이상이고, 계속 근로기간 산정 시 4주 평균 주당 15시간 미만은 제외'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변경된 취업규칙은 4주 평균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일할 경우 근로기간을 1일 차로 '리셋'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중간 한 달 근로시간 기준을 채우지 못해도 추가로 한 달 더 기준에 맞게 일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다시 근로기간을 쌓아야 한다.

노동계는 이런 취업규칙 변경이 대법원 판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법원은 지붕 공사업체에서 1년 7개월간 일용직으로 일한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되, 1주간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으로 인정되는 기간은 제외하라고 판결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쿠팡은 단기 일용직을 고정화해 업무 안정성은 높이고 비용은 줄이려 하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1년 넘게 근속한 노동자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용직 쥐어짜기로 운영하면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경기 화성시 쿠팡 동탄물류센터를 찾아 노동자 작업 환경을 점검하는 모습. 고용노동부 제공

쿠팡은 전국적으로 50개 이상의 대형 물류센터에서 하루 수만 명의 일용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가 발간한 '경기지역 물류단지 노동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을 비롯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임시직과 일용직 비율은 57.7%에 달했다. 이들은 하루 단위로 정해지는 '출근 확정' 통보를 받기 위해 휴식 시간 부족이나 고강도 노동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절차적 문제도 제기됐다. 회사는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노동자 과반 동의 절차를 받지 않았고, 향후 노동자가 문제제기를 할 경우 '건별로 대응한다'는 내부지침을 세웠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공간에는 아직까지 새로운 근로기간 산출 규정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이처럼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이 충분한 설명과 동의 절차 없이 개정됐지만 당시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은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취업규칙 변경을 승인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노동청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도현 노동부 부천지청 근로감독관은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관할 노동청은 새로운 취업규칙에 내용상 다툼의 여지가 있고 절차적 하자가 있는데도 수리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 "위법 여부 판단 후 변경명령 검토"

이에 노동부는 쿠팡CFS의 새로운 취업규칙에 위법성이 없는지 검토하기로 했다. 노동부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법률자문 결과 취업규칙의 강행규정(당사자 합의와 상관없이 반드시 지켜야하는 규정) 위반으로 판단될 시 향후 유사 문제 재발 방지를 위해 (취업규칙) 변경명령 등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은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어긋나는 취업규칙에 대한 변경을 명령할 수 있다. 김주영 의원은 "대법원 판례가 기업의 취업규칙으로 무시되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시되선 안 된다"고 지적했고, 공공운수 노조는 "쿠팡은 당장 일용직 노동자에게서 빼앗은 퇴직금을 돌려주라"고 요구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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