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별세…DJ ‘고난의 동지’ 떠나다

박형주 기자 2025. 9. 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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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의 숨은 공로자·정권교체의 전략가
향년 75세, 평화·인권·화해 협력의 유산 남기다
故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연합뉴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2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다.

김 이사장은 1950년 7월 29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직후 방공호에서 태어났다는 그의 출생 배경은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사가 겪은 시대의 격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삶은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여정과 길게 맞물렸다. 중앙정보부 감시 속에 젊은 시절부터 평범한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고,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때는 이희호 여사와 함께 구명운동에 나섰다. 검은 테이프를 입에 붙인 침묵시위도 그의 기획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국면에서는 수배와 체포, 고문을 겪었다. 이후 미국 체류 시기에는 미주인권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해외에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귀국 뒤에는 정치 전략가로도 존재감을 보였다. 1987년 '평화기획'을 세웠고, 1995년 설립한 '밝은세상'을 통해 1997년 대선에서 과학적 여론조사와 홍보 캠페인을 이끌며 정권교체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밝은세상을 언급했다는 평가도 전해진다.

정치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말기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고, 이후 2007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복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뒤에는 아버지의 정신과 유산을 잇는 데 여생을 쏟았다. 김대중기념사업회 설립에 힘썼고, 2019년부터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평화와 인권, 화해 협력의 가치를 전파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선련 씨와 두 아들 종대, 종민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김대중평화센터와 김대중재단이 주관한다. 장례위원장은 남궁진 전 문화부 장관, 집행위원장은 배기선 김대중재단 사무총장이 맡는다.

김 이사장의 주요 약력은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ROTC 10기 육군 중위 전역, 미주인권문제연구소 이사,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 제17대 국회의원, 김대중재단 부이사장,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등이다. 민주주의의 그늘진 현장에서 아버지와 시대를 함께 버틴 동반자로 기억될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