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원전 르네상스 거부하는 철 지난 '탈원전 시즌2'

환경부를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하고 산업통상자원부를 ‘산업통상부’로 축소하는 정부 조직 개편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산업부가 전담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을 탄소중립과 함께 환경 정책을 전담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로 넘겨서 태양광·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2년이면 뚝딱 세울 수 있는 재생에너지로 인공지능(AI)과 탄소중립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에너지 정책이 모두 기후부로 넘어가는 것도, 산업부가 에너지·자원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도 아니다. 기후부로 넘어가는 것은 ‘전력’ 부문뿐이다. 산업 현장과 가정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80%를 차지하는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에 관한 업무는 규모가 축소되는 산업통상부에 남는다.
과연 석탄과 LNG로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는 누가 관리하게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업무가 축소되는 산업통상부에게 석연치 않게 남겨지는 화석 연료 업무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원전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원전 관련 업무가 무려 3개 부처로 쪼개진다. 규제를 포함하는 원전 산업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담당하고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 수출 업무는 ‘산업통상부’에 남게 되고 원전의 기술 개발은 AI를 전담하는 부총리 부서로 승격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는다.
원전 산업계는 시어머니만 셋을 챙기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도 부처 간 장벽이 높은 상황에서 원전 관련 업무가 원활하게 수행될 것이라는 기대는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되살아나는 망국적 탈원전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탈원전 시즌 2'에 대한 우려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를 강조하던 이재명 대통령의 원전에 대한 입장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돌변했다. “원전은 짓는 데만 15년이 걸리고 가능한 부지도 없고 안전성도 믿지 못하겠다”는 속내를 확실하게 밝혀버린 것이다.
당대표 시절 신규 원전 2기가 포함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동의했던 것도 “어차피 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털어놓았다.
장관 취임 직후부터 “국민의 공론을 듣고 판단하겠다”는 선문답(禪問答) 같은 발언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의 그런 의중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신규 원전 건설은 반드시 하겠다”던 인사청문회에서의 답변은 심심풀이 말장난이었다. 이제 아무도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게 됐다.
상황은 심각하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원전 생태계를 붕괴시키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재고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 건설·운영을 환경 규제 중심의 부처에 맡기는 것은 필연적으로 원자력산업의 위축을 초래한다”는 것이 원자력학회의 뼈아픈 지적이다. 프랑스·영국·독일이 모두 실제 뼈아프게 경험한 일이다.
정부가 원전을 버리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大)전환’을 밀어붙이면 단순히 원전 산업의 위축을 넘어 고급 원전 인력의 해외 유출도 걱정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인공지능·데이터센터 확충으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원전으로 대응하겠다는 미국에서는 원전 인력의 임금이 우리보다 1.65배나 높은 것이 사실이다.
증시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인공지능 덕분에 전력 기기 관련주(株)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와중에 탈원전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원전주는 지고 신재생주는 뜨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해외에서 원전 르네상스 훈풍 소식이 계속 전해지면서 원전주의 추락은 잠시 주춤하는 형국이다.
● 거꾸로 가는 에너지 대(大)전환
문재인 정부의 망국적인 탈원전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후쿠시마 지진 사태에 따른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며 “새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미래 에너지 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엄혹한 탈원전 선포가 그 시작이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 에너지 정책의 뿌리가 휘청거렸고 한전은 깊은 부실의 늪에 빠져버렸다. 지난 3년 동안 산업용 전기 요금을 70%나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새로 시작되는 '탈원전 시즌 2'는 원전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과 태양광·풍력에 대한 일방적인 집착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 원자로인 APR1400의 실제 건설 기간은 15년이 아니라 6~7년이라는 명백한 팩트도 의도적으로 왜곡했고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한 오해도 심각하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시즌 1’과 닮은꼴이다.
설계 수명이 끝나가는 원전 10기에 대한 대책도 지지부진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비밀이어야 할 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 내용이 공개되면서 원전 산업계의 윤리성까지 흔들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에서 태양광·풍력의 ‘설비 용량’을 '실제 공급량'으로 오해하고 있다. 원전·석탄 화력과 같은 기저(基底) 전원은 실제로 설비 용량에 가까운 전력을 연속적으로 생산한다. 그러나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극심한 간헐성 때문에 연평균 하루 가동 시간이 태양광 4시간, 풍력 5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설비에서 실제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의 총량은 설비 용량의 최대 20%를 넘지 못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5배 이상의 설비 용량을 갖춰야만 한다는 뜻이다.
결국 발전 설비를 설치할 ‘부지’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원전이 아니라 오히려 원전보다 5배 이상의 설비 용량을 갖춰야 하는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다. 정부가 해상풍력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사실은 그런 현실 때문이다. 더 이상 부지를 찾을 수 없는 육지에서 탈출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도 무한정은 아니다.
연안에서 어렵사리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어민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국가 안보를 위해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해군의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 해상풍력 설비와 하루 최대 5시간만 쓸 수 있는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가 모두 연안의 민생과 국가 안보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자원 낭비성 시설이다.
태양광·풍력이 생산하는 전력의 ‘품질’도 걱정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가 단순히 '많은 전력'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전압과 주파수를 비롯한 전기의 '품질'도 중요하다. 더욱이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에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연속적·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극심한 간헐성·변동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재생에너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화재의 위험과 감당하기 어려운 설치·운영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우리가 국제 사회에 약속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도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원전이다. 실제로 재생에너지가 무탄소 전원이라는 인식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맹목적으로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온실가스를 내뿜는 LNG 설비를 대폭 확대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에너지 기술에서 실제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 전원’은 원자력뿐이다. 재생에너지는 '무늬만 무탄소일 뿐'이다.
우리가 세계적인 '원전 르네상스'를 애써 외면해야 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원전 100기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야심차게 밀어붙이고 있고 1980년대에 탈원전을 선언했던 스웨덴도 '원전 복귀'를 선언했다. 탈석탄을 고집하고 있는 영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을 통해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과 함께 AI·양자 컴퓨팅·원자력 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기술 번영 협정’을 체결했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직접 경험한 일본도 원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원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탈원전 시즌 2는 기술의 속성을 무시한 부끄러운 패배주의일 뿐이다.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기술에 대한 지나치게 성급한 투자가 오히려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팩트와 전문성을 무시하고 이념 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탈원전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실용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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