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들의 삶의 태도와 정신 담아낸 ‘호모 세라미쿠스’展

"이게 아니야!"라며 소리치며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바닥에 내던지는 괴팍한 인상의 도예가.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도예가들에게는 깐깐하고, 고지식하고, 괴팍하다는 고정관념이 있기도 하지만 이 모습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도예가들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집념과 고뇌, 겸손과 성찰이 담겨 있다.
이러한 도예가들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고, 우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인내의 힘을 불어 넣어줄 전시 '호모 세라미쿠스'가 여주 경기도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의 제목 '호모 세라미쿠스'는 '흙을 다루는 인류'라는 뜻으로, 도예를 행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기술적 행위자를 넘어 흙을 매개로 삶의 태도와 정신을 드러내는 도예가의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전시에는 국내외 작가 18명이 참여해 오브제, 영상, 설치작품 등 43점을 선보이고, 경기도자미술관 소장품 24점까지 만날 수 있다.
전시는 '겸손하게 호흡하다', '견디며 위로하다', '성찰하며 살아가다' 등 총 3부로 구성돼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도예가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미술관 1층 로비에서는 이번 기획전을 기념해 영국 현대미술 작가 안토니 곰리의 대표 설치작품, '아시아의 땅'(Asian Field)이 일부 공개된다. 작품은 지난 2003년 곰리가 중국 시양산 마을 주민 440명과 함께 약 1만9천여 점의 자화상 토기 인형을 만든 것으로, 미술과 사회, 공동체 의식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본격적 전시가 시작되는 3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니일 브라운스워드 작가의 영상 작품 '마알 홀, 이회토 채취장'을 만날 수 있다. 작품 속 작가는 산업환경의 변화로 쇠락해 버린 흙 채취장에서 손으로 흙을 만지고, 뒹굴기도 하며 온 몸으로 흙을 느낀다. 작품은 도예가가 가진 '노동'의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흙과 인간의 관계를 느끼게 하고, 한 시대를 이끈 도자 산업 자체에 대한 노동자들의 헌신을 기억하게 한다.
사이토 유나 작가는 'Drawing by Ceramic', 'Dyed structure' 시리즈를 내놨다. 이 작품 시리즈들은 무유도자기(유약처리가 되지 않은 도자기)에 염료를 붓고, 3~10일에 걸쳐 새어나오게 한 흔적이다. 작품은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의 섭리를 떠올리게 하며, 자연의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도예가들의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2부 공간에 들어서면 공간에 가득찬 녹차향이 관람객을 반긴다. 평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보는 흔한 받침대에 놓인 도자기가 아니라 녹차잎으로 채워진 받침대에 올려진 다양한 다기(茶器)들을 만날 수 있다.
도예가에게 차(茶)는 자신이 만든 다기에 차를 따르고 입으로 마시는 순간 느껴지는 촉각으로 작품에 무엇이 잘못됐고, 보완점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매개임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문찬석 작가가 은은한 달빛을 표현한 '달빛 다기 시리즈', 박성극 작가의 새로운 조형적 실험이 담긴 '자연스러운 선에 대한 연구', 강영준 작가의 '분청다기 시리즈' 등을 통해 도예가들의 사색과 자기 성찰의 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마지막에는 '질문의 방'이 마련돼 관람객 스스로가 전시와 관련된 8가지 질문에 답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한정운 학예연구사는 "우울한 시대에 관람객들이 도예가들의 '견딤'의 마음가짐을 느끼고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임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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