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불완전해… 타인을 항상 ‘오독’ 한다”

인지현 기자 2025. 9. 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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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 구병모 신작 ‘절창’ … 읽기의 본질을 파고든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자와
읽히고 싶어하는 인물 이야기
복잡한 변화와 주관적 해석 탓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 메시지
작가는 끊임없는 시도를 강조
‘파과’(2013) 등의 작품으로 대중에 알려진 구병모 작가는 신작 장편소설 ‘절창’ 출간 후 23일 문화일보와 진행한 서면, 전화인터뷰에서 “인간이라는 텍스트를 온전하게 읽는 것이 가능한지 탐색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작가는 2008년 등단 후 활발한 활동을 펼쳐 오늘의작가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았다. 구병모 작가 제공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내세운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그런 사람의 ‘읽기’조차도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말하고 싶어서예요. 읽은 내용에 자기 해석과 판단이 섞여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조차 달라지죠. 인간이 상대라는 텍스트를 온전히 읽게 되는 날은 결국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소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소설 ‘파과’ 등으로 사랑받은 구병모(49) 작가가 4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절창’(문학동네) 얘기다. 작가는 소설 속에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사람’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이라는 텍스트를 오해 없이 마주 보고 읽어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을 나누기 위해 23일 전화와 이메일로 작가를 만났다.

소설 속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생각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제목인 절창(切創)은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를 뜻한다. 왜 상처를 통한 읽기일까. 작가는 “누군가를 들여다보거나 파고드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상처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감수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에 대한 비유”라고 말했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어렵게 생활하다가 우연히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사업가 문오언에게 도움을 구한다. 오언은 호텔을 경영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범죄 조직에 연루된 인물. 오언은 그녀에게 새 삶을 주고 극진히 대접하면서도, 세상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때로 그녀의 능력을 이용한다. 한 사건을 계기로 오언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낀 그녀는 “세상의 모든 인간을 읽어줄 수 있지만, 당신만은 절대로 안 읽는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아가씨에게 전해 듣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입주 독서교사가 있다. 이들 세 명의 기묘한 관계 속에서 이야기는 점차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오언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인물이다. 사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정도로 아가씨를 아끼고 보살피지만, 때로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 몰아넣는다. 작가는 “오언의 행동은 보는 사람에 따라 아가씨를 구조한 것으로도, 더 깊은 수렁으로 떨어트린 것으로도 다르게 해독할 수 있다”며 “우리가 사람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경험의 데이터베이스와 자의적인 필터를 거친다는 점에서 몰이해 혹은 오해로 끝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인간과 텍스트는 ‘오독(誤讀)’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고도 말했다.

그런 오언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가씨에게만큼은 직접 ‘읽히길’ 소망한다. 그러나 아가씨가 설사 오언의 마음을 읽는다 하더라도 답답한 마음의 출구를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작가는 “아가씨가 오언의 마음을 읽은 결과가 바늘 한 개 꽂을 데도 없이 완벽한 진실이냐고 한다면, 누구도 그렇게 확신할 수 없다”면서 “그 역시 아가씨의 필터를 거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읽기의 대상이 되는 인간이 가진 마음의 복잡성과 가변성도 이에 한 몫 더한다.

작가는 “소설에도 오독의 가능성을 전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당사자가 아닌 독서교사에 의해 대체로 전달되는데, 파편적이고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 있다. “교사가 필요에 따라 이야기를 취사선택하거나, 변형 혹은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읽을 수 없는 것들의 틈바구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 독서교사는 책을 이해하지 못해 “책이 이상하다”라고밖에 평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 말한다. “이상함의 원인 따위는 결국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이상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 읽는 사람의 일”이라고 말이다. 작가는 이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인간이 타인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비록 불가능하다고 해도 예정된 실패를 거듭하면서 계속 시도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고 말이다.

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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