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건축 이야기(13) 美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①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김원 건축가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4/yonhap/20250924084928385lrey.jpg)
미국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는 여러 가지로 뭐라 말하기가 참 복잡하다. 우선 그 명칭부터 '비'(碑)라는 말을 붙일 수가 없다. 영어로는 'memorial'이라고 하면 간단하다. 기념하고 되새긴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말은 적당하게 들린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 [마야 린 스튜디오 홈페이지 캡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4/yonhap/20250924084928644pjga.jpg)
그러나 우리말로 '비'란 말은 '비석'이란 말로 들리고 한자의 뜻도 '돌기둥 비'(碑)다. 그런데 이 '기념비'는 우뚝 서 있지 않고 땅 밑으로 내려가 있으니 그 말이 적당치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좀 설익은 표현 같지만 '기념물'이라고 쓰기로 하자. '기념 조형물'의 준말로서다.
왜 이 기념물은 세워져 있지 않고 땅 밑으로 내려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기념물을 세울 때 거의 확실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우선 멀리서 잘 보이도록 높이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뚝 솟은 수직의 기념비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높이 우러러보며 기념하고 잘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기념물은 멀리서 보이지도 않고 땅 밑으로 걸어 내려가게 만들어졌다. 사실 이것 때문에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고 그 건설의 과정에서 미국이라는 큰 나라의 그 많은 국민 전체가 엄청난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은 미국의 얼굴과도 같은 장소이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새겨진 참전 용사 명단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4/yonhap/20250924084928839loya.jpg)
백악관과 의회 등 중요한 정부 건물들과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많은 기념물이 있다. 거기에 미국 사람들이 미국의 상징처럼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두 사람의 기념탑과 기념관이 있다.
이 워싱턴 모뉴먼트(Washington Monument)와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 사이를 헌법광장(Constitutional Garden)이라고 하는데 이 기념물은 그사이에 놓여 있다.
125도 각으로 만나는 두 개의 직선이 V자형의 뾰족한 날개 모양을 만들고 있고 두 직선은 각각 위의 두 기념물을 향해 250피트(약 70미터) 길이로 뻗어 있다. 두 직선은 꼭짓점을 향하여 지면으로부터 점점 낮아져서 가장 낮은 곳에서 3미터 정도의 깊이가 됐다가 다시 지면으로 올라오게 된다.
낮아질수록 벽이 높아지니까 이 수직의 옹벽은 기다란 직삼각형을 이루는데 그 두 개의 직삼각형 벽은 완전히 새까만 화강석으로 돼 있다. 거울처럼 반짝이도록 광을 낸 화강석의 검은 표면에 월남전쟁에서 죽거나 실종된 5만7천939명의 이름이 1957년의 첫 전사자로부터 연도별로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 [마야 린 스튜디오 홈페이지 캡처]](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4/yonhap/20250924084929006nzfa.jpg)
이 기념물은 차라리 미니멀한 현대조각이나 설치예술이라고 말하는 편이 가깝다.
다시 말하거니와 높이 올려다보고 우러러 기념하자는 뜻이 아니라 땅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숙여 더 낮은 곳으로 걸어 내려가면서 검은 벽에 새겨진 죽은 자들의 이름들을 본다는 사실은 사람들을 종교적인 제의에 참여한 것처럼 슬프게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장치다.
벽은 통곡의 벽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아 거의 절망감에 가까운 막막함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여기 와서 아는 이들의 이름을 찾고 새겨진 이름의 글자들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입 맞추고 종이를 대고 연필로 문질러 탁본하듯 베껴내어 간직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꽃을 가져다 그 이름 위에 붙이기도 하고 죽은 이들에게 주고 싶은 물건들을 산 사람에게 바치듯이 갖다 놓기도 한다.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헌화하는 방문객 [연합뉴스 자료 사진]](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4/yonhap/20250924084929230snno.jpg)
이것은 우리가 산소에 가서 절을 하거나 제사상을 차리고 술을 올리는 것과 같은 제사 의식이다. 많은 사람은 이 설치예술 작품 앞에서 이런 의식을 행함으로써 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로 참여한다.
이것은 현대적인 공공미술의 훌륭한 전범이다.
많은 사람은 개개인의 슬픔을 되새기며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추억과 명상에 잠기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미국인 모두가 함께 겪은 국가의 힘겨웠던 역사를 동시에 반추한다. 개인의 감동이 공공의 감동으로 공유되면서 공공미술의 존재 의미가 확실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기념물이 갖던 공통된 속성, 즉 직설적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 추모하고 기억하게 했던 일방적 요구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유가족과 전우를 기억하러 찾아온 방문객과 관광객 모두 함께 역사에 참여하고 국가를 생각하고 전쟁과 평화를 사색한다. 그냥 바라보는 기념조각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그 모든 사람의 의사를 소통케 하는 장소를 만들었다.
월남 전쟁이 미국인에게 무엇이었던가를 진심으로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묵상의 장소이다. 그래서 지금, 이 작품은 아주 성공적인 사례로 거론되며 크게 칭찬받고 후배들에게 훌륭한 교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에는 소설을 써도 충분할 감동적인 비화가 숨어 있다.
1980년 미국 재향군인회가 월남전을 기억하는 기념물을 세우려고 계획을 세울 때까지도 미국민들에게는 5년 전에 끝이 난 월남전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였고 전쟁의 의미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미국인들은 가치관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의 종말은 미국인에게 수치스러웠다. 영광스러운 승리를 자랑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수치스러운 전쟁이었고 거기 가서 죽은 자는 왜 자기의 고귀한 생명을 바쳐야 했었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전쟁 종반의 치열했던 반전 여론은 전쟁의 의미를 무한정 퇴색하게 했고 미군은 전쟁광이며 살인자라는 국제여론 앞에 반론을 제기할 논거를 잃었다.
어쨌든 악몽 같던 전쟁이었지만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전쟁이 끝난 것과 죽은 자들을 기억하자는 작업을 시작했다.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설계작품을 현상 공모하기로 한 것이다.
주최 측이 내세운 중요한 조건 중의 한 가지가 '비정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시의 복잡했던 미국인의 심정을 보여 주고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응모안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오시마의 해병들'처럼 강하고 확신에 가득 찬 승리의 기념비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국에서 모인 1천400여 점의 응모 가운데서 뽑힌 당선작은 희한하게도 '땅 밑으로 기어들어 가는' 모습의 가장 단순한, 더 뭐라고 첨언을 할 수가 없는 당돌한 스케치였다.
그리고 밀봉된 당선자의 이름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선자는 당시 스무살의 중국계 미국인 그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 예일대학 건축과 3학년 학생, 마야 린(Maya Lin)이었다. (2편에서 계속)
김원 건축가
▲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광화문시민위원회 위원장.
* 더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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