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스플레이, 특별법이 생존선"…산·학·연 국회서 한목소리
삼성·LG "세제 구조부터 고쳐야…기술유출 차단 시급"
세제·재정·R&D·인력 일괄지원 요구…국회도 공감대 형성

"지원의 속도와 범위를 넓히지 못한다면 한국 디스플레이의 미래는 없다."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전례 없는 변곡점에 섰다.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과 롤러블TV를 내놓으며 '초격차' 기술을 과시했지만 중국의 보조금 공세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스플레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정부·기업·학계·협회가 같은 결론을 공유했다. 해법은 각기 달랐지만 위기의식만큼은 하나였다.
"中 거대 보조금, 초격차만으로는 못 버텨"
전문가들은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최대 위기로 중국을 지목했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자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BOE가 받은 보조금만 7800억원에 달한다. 중국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한국 기업의 절반 수준 원가로 패널을 공급하며 글로벌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박진한 옴디아 이사는 "LCD 시장은 이미 중국이 독점한 상태"라며 "삼성·LG도 TV용 패널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LCD 중심에서 OLED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지만 지금의 추세라면 2028~2030년경 중국이 한국의 점유율을 추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지니고 있음에도 중국의 양산 속도가 워낙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박 이사는 "2030년 이후 본격화할 마이크로LED 시장에서도 선제적인 R&D와 양산 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준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중국은 전방위적 보조금으로 글로벌 1위에 올랐다"며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휴대폰·TV 등 든든한 수요 산업이 뒷받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세트 시장이 위축되면서 판로 자체가 축소, 중국과 정면으로 맞붙을 경우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그는 "기술 초격차만으로는 부족하고 산업 정책과 글로벌 연합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의 제도적 뒷받침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장기간·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세제 지원 제도는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현재 국가전략기술 투자는 세액공제를 받을 순 있지만, 기업이 적자를 내거나 최저한세율(17%)이 적용되면 혜택을 온전히 활용하기 어렵다. 남은 금액은 다음 해로 넘길 수 있으나 기간이 10년에 불과해 장기 투자를 제약하는 구조다.
박준영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은 "디스플레이는 장치 산업 특성상 한 번 투자에 15년 이상이 걸린다"며 "세액공제 유효기간이 10년으로 묶이면 투자 유인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최대 20년, 독일·영국·호주는 사실상 무제한"이라며 "한국도 최소 20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구 LG디스플레이 그룹장은 제도의 틀 자체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 제도는 기업이 이익을 내야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적자를 기록하면 혜택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며 "미국처럼 투자액을 직접 환급해 주거나 활용하지 못한 공제 권리를 다른 기업에 팔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술 인력 보호의 시급성도 거론됐다. 국정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산업기술 유출 105건 중 21건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나왔다. 또 2003년부터 2023년까지 집계된 첨단 기술 탈취 피해 규모가 100조원을 넘지만 2021년 기준 유기징역 처분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박 부사장은 "미국은 경제스파이법을 적용해 최고 30년형까지 선고한다"며 "한국도 재발 방지를 위해 대폭 강화된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부장 "국내산 사용 인센티브·예타 패스트트랙 시급"
소재 기업들은 국산 사용을 늘릴 유인책을 요구했다. 김병욱 동진쎄미켐 사장은 "국산화율이 70%를 넘지만 정작 핵심 원천 소재는 여전히 일본과 미국에 의존한다"며 "국내산 소재·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쓰는 기업에는 세액공제를 주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익이 나야 재투자할 수 있고 안정적 수익 기반이 곧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장비 업계는 제도의 속도를 문제 삼았다. 문성준 HB테크놀로지 대표는 "디스플레이는 세대 교체가 빠르고 투자 규모가 방대하다"며 "지금처럼 예비타당성 조사(예타)가 길어지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략산업에 한해 예타 패스트트랙을 도입하는 한편 고위험·고난도 원천기술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세트기업·패널사·소부장이 컨소시엄을 꾸려 기업 중심 과제를 추진하면 양산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장혁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 회장은 인재 유출을 가장 큰 위기로 꼽았다. 권 회장은 "반도체·배터리에 비해 디스플레이 인력 지원은 항상 뒷순위"라며 "특성화 대학·대학원 설립과 1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장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많은 우수 인력이 결국 반도체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기업들이 처우 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인재 풀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업계의 마지막 요구는 '특별법' 제정이었다. 이상진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무는 "한국 조선업은 1970~80년대 '조선공업진흥법'을 토대로 세계 1위로 도약했지만, 일본은 재팬디스플레이·J-OLED를 뒤늦게 지원하다 끝내 몰락했다"며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일본처럼 뒤늦은 대응으로 시장을 잃어서는 안 되고 조선업처럼 선제적 지원으로 성장 궤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미래 시장의 주도권은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세제·재정·R&D·인력을 포괄 지원하는 특별법 제정이 K-디스플레이의 생존 조건"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정부도 보완 의지를 내비쳤다. 유재호 산업부 디스플레이가전팀 과장은 "중국은 패널 원가의 40% 이상을 보조금으로 메우지만 한국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디스플레이는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 자산이고 몇 년 뒤에는 대미 협상서 전략 카드가 될 수 있기에 시설투자 세액공제 이월 기간 연장 등 제도 보완을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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