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민원 사주’ 의혹 수사,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은기 기자 2025. 9. 24.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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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사주’ 등 논란을 일으킨 류희림 전 방심위원장이 돌연 사퇴했지만 협조한 책임자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제를 밖으로 알린 직원들만 처벌받을 위기에 놓였다.
9월8일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오른쪽)이 대통령실 앞에서 류희림 전 위원장 처벌과 방심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2024년 9월10일 새벽 6시, 탁동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연구위원은 평소처럼 출근길에 나서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그 앞에 경찰 4명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문을 잡고, 다른 한 명은 탁 위원을 잡고, 또 다른 한 명은 그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생각하는데, 나머지 경찰이 영장을 보여주며 “압수수색 나왔다”라고 알렸다. 집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자고 있었다. 경찰에게 “아이가 학교에 갈 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좋겠다”라고 부탁했다. 자녀가 등교한 뒤, 주거지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같은 날 새벽 6시40분 지경규 방심위 지상파방송팀 차장의 집도, 방심위 직원 A씨의 집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탁동삼 위원, 지경규 차장, A씨의 혐의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었다. 경찰은 방심위 직원인 세 사람이 ‘공모’해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한 사람들의 정보를 언론사 등에 유출했다고 봤다. “피의자들은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 내역 및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그중 위 과징금 부과 의결에 원인이 되는 민원 내역과 민원인의 정보 등을 제3자(성명불상자)나 언론사 등에 제공 또는 누설하기로 공모했다.”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던 세 사람이 민원인 정보 유출을 공모한 혐의로 압수수색까지 받게 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윤석열 정부 2년 차인 2023년 9월로 시간을 돌려보자. 2023년 9월4일 이동관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에 나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두고 “방심위 등에서 엄중 조치 예정”이라고 선언했다. 그날 오후부터 방심위에 내용과 구조, 심지어 오탈자까지 동일한 민원이 쇄도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뉴스타파〉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에게 받은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관련된 가짜뉴스를 보도한 데 대해, 방심위가 심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방심위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다음 날인 2023년 9월5일 방심위 방송소위는 민원 등을 근거로 곧바로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 보도에 대한 ‘긴급 심의’를 의결했다. 그런데 지경규 차장이 보기에, ‘복붙(복사해 붙여넣기)’한 듯한 민원 수백 건도, 민원인 수십 명도 너무 이상했다. 민원인 중 상당수가 류희림 전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 등 직간접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해 9월27일 지 차장은 방심위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류 전 위원장에게 ‘사적 이해관계자의 민원이 포함된 방송 심의를 회피하라’고 요구했다. 몇몇 방심위원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2024년 9월25일 탁동삼 위원(오른쪽 두 번째)이 류희림 당시 방심위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 관련 공익신고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하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두 달 후인 2023년 11월13일, 방심위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4개 방송사에 1억2000만원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탁동삼 위원, 지경규 차장,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은 2023년 12월23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류희림 전 위원장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사실을 신고했다. 탁동삼 위원은 언론 제보를 고민했다. 기관의 장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특정 방송 보도를 심의해달라는 민원을 ‘청부’한 뒤, 본인이 직접 이를 심의해 과징금이라는 중징계를 내린 초유의 사건이었다. 더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윤석열과 관련된 사안을 언론에 제보하면 다칠 수밖에 없다. 좀 더 시기를 봐야 한다’라며 모두 만류했다.

머뭇거리고 기다리다 보면 결국 할 수 없겠다 싶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언론 제보를 결심했다. 탁동삼 위원의 말이다. “개인적인 위험과는 별개로, 우리는 공직 유관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공직자는 비리 행위를 보면 신고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데 대해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2023년 12월25일 MBC와 〈뉴스타파〉가 류희림 전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보도했다. 방심위 내부에서만 공유되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보도 이후 류희림 전 위원장은 도리어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을 문제 삼았다. 보도 이튿날인 2023년 12월26일 “개인정보 불법 유출은 중대 범죄행위로, 특별감사와 수사 의뢰로 범법 행위를 철저히 규명하겠다”라고 주장했다. 그 후 경찰 수사는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류 전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 수사, 다른 하나는 탁동삼 위원, 지경규 차장 등 방심위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의혹 수사였다. 류희림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는 서울 양천경찰서가,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수사는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가 맡았다.

2024년 10월21일 류희림 당시 방심위 위원장이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류희림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

최근 두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연달아 나왔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7월21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류희림 전 위원장 ‘민원 사주’ 의혹에 대해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 제보자 색출을 위해 벌인 특별감사만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겼다. 반면 7월25일 탁동삼 위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지경규 차장과 A씨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류 전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은 규명도 하지 못한 채, 그 문제를 알리려던 방심위 직원들만 처벌받을 위기에 놓인 셈이다.

지경규 차장은 “수사 단위부터 시작해 류희림과 우리에 대한 수사가 불공정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이가 났다. 류희림은 ‘봐주기 수사’를 하고, 우리를 향해서는 과도한 수사가 이뤄졌다”라고 이야기했다. 류희림 전 위원장이 고발한 지 보름 만인 2024년 1월15일, 서울청 반부패수사대는 사무실 등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1차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같은 해 9월10일에는 주거지 등 2차 압수수색이 추가로 이뤄졌다. 류 전 위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세 차례 모두 반려됐다. 탁동삼 위원은 “경찰이 2024년 1월부터 8월까지 사실상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다가, 그해 8월이 되어서야 영장을 처음 신청했다. (영장 반려는) 처음부터 ‘봐주기 수사’로 시작한 양천경찰서가 자초한 결과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류희림 전 위원장의 ‘민원 사주’가 없다고 본 건 아니다. 양천경찰서는 수사 결과 통지서에 “피의자(류희림)의 관계인들이 2023년 9월4일부터 18일까지 민원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송치 이유’로 이런 점을 들었다. “사주된 민원이라 해도 사주를 받은 피사주인이 피의자의 의견에 동조해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면 해당 민원을 진정한 민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일부 민원 내용이 유사해 민원 사주 의혹이 있으나 사주된 민원 외에 진정한 민원이 존재하는 이상, 일부 사주 의혹 민원과 긴급 안건 상정 사이, 사주 의혹 민원과 방송 심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도 어렵다.”

방심위 노조(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시사IN〉에 ‘진정한 민원’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2023년 9월4일 오후부터 ‘긴급 심의’를 결정한 방송소위가 시작되기 전인 9월5일 아침 10시까지 들어온 민원 70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모두 ‘사주 의혹 민원’이 강하게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70건 중 류희림 전 위원장의 관계자로 확인된 민원이 36건(14명)이고, 나머지 34건(12명)은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내용과 형식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밝혔다.

9월2일 지경규 방심위 차장(왼쪽)과 탁동삼 연구위원이 방심위 노조 사무실에서 <시사IN>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지경규 차장은 “민원은 기본적으로 시청자가 자발적으로 문제의식을 느껴서 넣는다. ‘민원 사주’는 특정 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전체 민원을 왜곡시키고, 실제 그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부풀린다. 공적제도가 유지되는 건 절차가 공정하다는 사회적 신뢰 때문이다. 류희림이 제대로 처벌받아야 우리 사회 공적제도의 근간이 바로 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8월25일 이들은 류 전 위원장 무혐의 처분에 대해 서울경찰청에 수사 심의를 신청했고, 경찰은 현재 해당 사안을 검토 중이다.

같은 날 방심위 노조는 탁동삼 위원, 지경규 차장 등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검찰 불기소 처분을 요구하면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경찰은 류희림 전 위원장 ‘민원 사주’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행위가 방심위 공정성 훼손을 막기 위한 공익적 목적이라는 점을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탁동삼 위원 피의자 조사에서, “방심위원장의 위원회 운영 과정 등에 불만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민원 정보를 언론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용마상’을 수상한 거 맞느냐”라며 개인적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탁동삼 위원은 검찰에 송치된 방심위 직원 3명이 “공익 신고자라는 점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기관이나 부정부패가 있을 수 있다. 외부에서는 내부의 사정을 알기 어렵고, 그렇다면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내부고발이라는 게, 절차 안에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부에 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공익 제보라는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원 사주’ ‘가짜뉴스 센터 설치’ 등 각종 논란을 일으킨 류희림 전 위원장은 4월25일 돌연 사퇴했다. 그 후 5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방심위 직원들은 여전히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류 전 위원장 사퇴로, 당초 방심위원 9명으로 굴러가는 방심위가 ‘2인 체제’가 됐다. 사실상 모든 심의가 중단돼 바깥으로 크게 문제가 노출되지는 않지만, 방심위 상황은 “류희림 때 그대로”라는 게 탁동삼 위원과 지경규 차장의 이야기다.

류희림 전 위원장의 운영에 적극 협조하거나 방조한 책임자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탁동삼 위원은 “류희림 체제 때의 과오를 청산하거나 반성하거나 해결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조직 자체가 완전히 붕괴돼 있다. 가짜뉴스 ‘긴급 심의’ 절차 폐지 등 과제가 많지만, 일단은 방심위 기구 정상화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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