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美 희생자 보답 위해"...5년간 50개주 도서관에 '기부' 대장정 마친 노부부
광복절에 알래스카주서 마지막 기부
7만 마일 운전하고, 호놀룰루 원정도

"한국을 위해 싸워준 참전 용사들에게 아직도 참 고마운 마음입니다."
구성열씨
지난 8월 15일. 한국에서 광복 80주년 행사들로 들썩였던 시기,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서쪽에 위치한 노스우드 초등학교(Northwood Elementary School)의 도서관에선 올해 82세인 구성열씨가 이 학교에 다니는 100여 명의 미국 어린이들 앞에서 고마움의 큰절을 올렸다. 2020년 자신이 사는 지역인 버몬트주 어린이들 앞에서 시작해, 이날까지 50번째 큰절을 올린 것이었다. 그러곤 앞선 49차례와 똑같이, 도서관 발전을 위한 기부금 5,033달러(약 700만원)와 작은 기념패를 그들에게 건넸다. 기념패엔 1953년 2월 한국전쟁에 참전한 존 바이런 휘트슨 주니어(당시 20세)를 비롯한 10명의 알래스카 출신 미군 전사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구성열씨는 이렇게 아내 구창화(78)씨와 함께 50개주마다 학교 도서관 한 곳을 선정해 5,033달러씩 기부한 ‘땡큐 아메리카(Thank you America)’ 프로젝트를 5년 만에 마무리했다.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아내와 함께 서울을 찾은 성열씨를 지난 18일 만났다.
성열씨는 “학교 도서관에 기부할 때마다 행사에 앞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큰절을 먼저 올렸다”면서 “한미 동맹의 뿌리를 찾고, 그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을 후대에게 직접 전할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하와이(호놀룰루)와 알레스카를 제외한 미국 48개주 여정을 직접 운전해 이동했다. 그렇게 내달린 거리는 약 7만 마일(약 11만3,000km)을 넘었고, 기부금액은 약 30만 달러(약 4억 원)에 달했다.
여행지 충혼비에서 만난 'KOREA'

시간도, 돈도, 체력도 많이 드는 이 프로젝트에 노부부가 뛰어든 계기는 미국 내 어느 지역을 여행 가도 눈에 띈 ‘코리아(KOREA)’의 흔적들 때문이다. 아내 창화씨는 “작은 마을에 있는 충혼비에도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이들의 이름이 꼭 하나씩은 새겨져 있었다”며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을 청춘들이 우리나라에 파병돼 숨졌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졌고, 그 희생에 보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들(전사자) 고향의 낙후 도서관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미군은 한국전쟁에 유엔 연합군으로 참전해 3만6,000여 명이 전사하고 9만여 명이 다쳤다. 7,000여 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다.
처음엔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되리라 생각 못 했다. 성열씨는 “다니던 교회에서 기부금을 모아 버몬트 학교에 처음 기부한 게 5,033달러였다”며 “첫 기부가 지역신문 등에 크게 보도되면서 ‘의미 있는 일을 이어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전국을 누볐다”고 밝혔다. 그는 후원을 위해 ‘6·25 재단’을 만들었고, ‘리버티 워크(Liberty Walk)’를 통해 후원금을 모았다. 성열씨가 1마일을 걸을 때마다 후원자들은 일정 기부금을 내기로 약속했고, 그는 매년 6월 25일마다 태극기를 가방에 꽂고 종일 걸어 후원금을 모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하던 중 이 소식을 접한 김인경(37) 등도 그들의 여정에 큰 후원을 보탰다고 한다.
화냈던 유족, 나중엔 기부금 보태

창화씨는 “남편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프로젝트에 매달렸다”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우리도 참 많은 걸 얻었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찾아 온 전사자 유족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교사와 학생들은 희생자와 유족, 우리에게 서로의 고마움을 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도울 줄 알고, 도움을 잊지 않고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은 이제 학교에서도 배우기 어려운 일”이라며 “그런 것들을 함께 해냈다는 마음이 기뻤다”고 했다. 성열씨도 “메사추세츠주 도서관에 후원하는 과정에선, 아직도 한국에 대한 원망이 풀리지 않은 전사자의 형제가 우리 부부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면서 “나중엔 우리의 뜻과 취지를 듣고 도서관에 자신의 돈 2,000달러를 함께 기부하겠다고 해 더 뜻깊었다”고 했다.
이들은 이제 한국에서 ‘자유의 길(Liberty Trail)’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벌어졌던 8개 광역시도를 추리고, 각 시도마다 한 학교를 선정해 한국전쟁을 주제 한 문예 대회를 열어 시상할 계획이다. 이들 학교들을 연결해 참전군인들이 걸었던 길을 구현해 보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이미 이들은 최근까지 서울 이대부중, 강원 태백중, 경기 오산중, 전남 매산중에서 시상을 했다. 성열씨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한국전쟁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했는데, 학생들의 글을 보며 우리가 감격할 때가 많다“며 “학생들의 글을 보며 우리나라가 왜 문화강국이 됐는지 알게 됐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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