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싸우자” 외친 트럼프, 곧장 ‘안티파’ 테러 단체로 지정

안준현 기자 2025. 9. 2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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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국 세력 제재는 사상 처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반(反)파시즘 좌파 운동 ‘안티파(Antifa)’를 국내 테러 단체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이 자국 내 세력을 공식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트럼프는 안티파를 “미국 정부와 법치 시스템 전복을 노리는 군사주의·무정부주의 집단”으로 규정했다. 그는 모든 연방 기관에 안티파의 활동을 ‘국내 테러 행위’로 간주해 수사·해체할 것, 자금 지원자를 조사·기소할 것 등을 명령했다.

지난 9월 보스턴에서 열린 안티파 시위 현장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가 전날 청년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추모식에 참석해 ‘좌파 척결’을 외친 뒤 하루 만에 ‘척결 1호’ 대상을 지정한 셈이다. 트럼프는 9만여 지지층이 결집한 커크 추모식에서 급진 좌파를 “미치광이들의 네트워크”라고 규정했고, “법무부가 이들의 조직적 폭력 자금 지원과 정치 폭력 행위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관련, “찰리 커크 피살도 안티파 폭력의 연장선”이라면서 최근 ICE 요원 공격, 조직적 폭동, 정치인 신상털이 등이 안티파의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안티파’는 알카에다나 IS처럼 명확한 실체를 가진 일반적인 테러 조직과는 다르다. 지도자도, 회원 명단도, 중앙 본부도 없이 ‘파시즘·인종주의·극우 반대’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느슨한 모임이다. 뿌리는 1920년대 무솔리니와 나치 독일에 맞선 반(反)파시즘 운동에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유럽에서 부활한 극우 집회와 맞서 거리 시위를 이어왔다. 미국에는 2007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결성된 ‘로즈 시티 안티파’, 중서부 도시에서 활동하는 ‘반인종차별 행동’, 2016년 트럼프 1기 출범 후 결성된 ‘파시즘 거부’ 등이 대표적인 안티파 단체로 꼽힌다.

문제는 안티파가 극우 단체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검은 옷과 모자, 마스크로 전신을 가린 ‘블랙 블록(Black Bloc)’ 복장을 하고 기물 파손, 폭행뿐 아니라 방화, 폭탄 공격까지 감행한다는 것이 트럼프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 찰리 커크에게 총을 쏜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의 탄피에는 ‘Hey, fascist! Catch(어이, 파시스트! 잡아봐)’ 같은 안티파를 연상케 하는 문구가 쓰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YONHAP PHOTO-0027> U.S. President Donald Trump looks on next to Erika Kirk, during a memorial service for her husband, slain conservative commentator Charlie Kirk, at State Farm Stadium in Arizona, U.S., September 21, 2025. REUTERS/Carlos Barria/2025-09-23 00:04:51/<저작권자 ⓒ 1980-2025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안티파가 미국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건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우월주의와 네오 나치 집회였다. 당시 민병대를 동원한 극우 집단과 안티파 시위대가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양쪽 시위대 모두 경찰 폭행, 차량 파손, 방화 등 폭력을 행사했다. 당시 백인 우월주의자의 차량 돌진으로 반대 시위 참가자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시절부터 안티파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려 했지만 못 했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전국적 시위의 배후에 안티파가 있다고 믿었다. 당시 1년여간 전국 도시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에선 폭행, 상점 약탈, 방화 등 폭력적인 시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안티파의 테러 단체 지정에는 법적 근거가 없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해외 기반 조직에 대해서는 미 국무부가 ‘외국 테러 단체(FTO)’로 지정할 수 있고, 이 경우 자산 동결·지원 금지·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알카에다, IS, 하마스, 헤즈볼라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내 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는 법적 근거는 없다. 미국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결사의 자유 때문이다. KKK 같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도 ‘범죄 조직’으로만 감시해 왔을 뿐, 테러 단체로 규정하진 않았다.

다만, 이번 행정명령을 근거로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DHS)가 안티파 활동을 ‘국내 테러 수사’ 대상으로 격상할 수 있게 된다. 연방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 조직적 수사·잠입·감시를 강화하고, 자금 지원 흐름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과거 KKK도 연방 정부의 장기간 주요 감시 대상이었다. FBI는 1900년대 초부터 KKK의 폭력 사건을 수집했고 광범위한 잠입·감시·방해 활동을 벌였다. 안티파 역시 KKK와 같은 ‘폭력적 극단주의자’ 범주에 묶이게 된다.

다만, 이번 조치가 트럼프가 반대파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대두된다. 뉴욕타임스는 “커크 피살과 안티파의 직접적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이번 조치로 정치적 반대파 탄압을 공식화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백악관은 “지금은 두려움이 아닌 용기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며 강경 대응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가 안티파를 테러 단체로 지정할 뜻을 밝힌 지 이틀 뒤인 지난 19일, ‘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도 “안티파는 실제 테러 조직”이라며 자국에서도 테러 단체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르반은 202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극우 행사에서 반파시스트 활동가들이 폭행 사건을 일으킨 사례를 언급했다. 다만 헝가리에서는 반파시스트 단체들의 정치적 활동이 미미해, 실제로 왜 이런 조치가 나왔는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안티파

‘안티 파시스트(Anti-Fascist)’의 줄임말로 파시즘·인종주의·극우 세력에 반대하는 급진 좌파 운동과 그 세력을 뜻한다. 1920년대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독일 나치에 맞서 등장했으나, 최근엔 검은 복장으로 신원을 가린 뒤 폭력 시위를 벌이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다만 지도자나 본부, 회원 명단 없이 활동해 자금 출처나 조직 체계를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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