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공평한 어리석음]부쳐지지 않은 편지, 카프카가 트럼프에게
저는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제 소설 하나쯤은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아마 <변신>은 아시겠지요. 다만 제가 생각하기엔, 당신에게는 오히려 <심판>의 풍경이 더 친숙하겠습니다. 그 끝의 외침 “개 같군”은 당신이 즐겨하는 표현과도 닮아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치열하게 불화했습니다. 사사건건 부딪쳤고, 삶의 중요한 길목에서 날카롭게 대립했습니다. 마흔 즈음, 뒤늦게 화해를 시도하려 했습니다만, 사람이 쉬운가요. 말로는 못하고 결국 한 통의 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차마 직접 전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해달라 부탁했지요. 어머니는 그 편지를 남편에게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곧 세상을 떠났으니, 그 편지는 ‘부쳐지지 않은 편지’가 되었습니다.
그 편지를 오래 묵혀 두었는데, 이제 놀랍게도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느꼈지요. 세상에, 나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내가 비록 저세상에 있지만, 묵혔던 글을 꺼내어 당신께 보내드립니다. 제목은 그대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몇가지 요점을 적어두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당신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두려움은 어린 방 안의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녔고, 지금도 제 마음을 짓눌러옵니다. 당신의 몸은 크게 보였고, 목소리는 공간을 넘어 세상을 흔들었지요. 그 앞에서 저는 늘 작아졌습니다. 작아짐이 마치 제 잘못인 양 느껴졌습니다.
당신은 유난히 규율을 강조하셨습니다. 식탁에서는 빵을 반듯하게 잘라야 하고, 바닥에 부스러기가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지요. 그런데 부스러기가 쌓여 있던 곳은 늘 당신의 자리였습니다. 당신이 강조한 질서는 오직 타인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그걸 알지 못한 저는 그 규율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빵을 삐뚤게 자르면, 포크를 잘못 쥐면, 당신의 눈빛은 늘 저를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기준은 끝없이 높았고, 저는 결코 닿을 수 없었습니다. 그 앞에서 죄책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러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늦게나마 알려드릴 뿐입니다.
무도하고 시끄러운 당신,
당신의 재능은 넘쳤지만, 남을 모욕하는 능력이 유독 빛났지요. 그것을 당신은 솔직함이라 부르셨고, 많은 이들은 용기라 칭송했습니다. 고백건대, 제게는 단순한 폭력이었습니다. 모욕의 순간마다 저는 작아졌고, 제 말은 얼어붙었습니다. 침묵은 제 유일한 방어였지만 동시에 굴종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당신의 신념을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강해야 한다는 것,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 신념은 모순이었지요. 강함은 약함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었고, 질서는 당신 스스로에 의해 무너졌으며, 보호는 곧 거래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은 값이 매겨졌고, 충성은 계산의 단위가 되었습니다. 가족은 돌봄의 공동체가 아니라 권위를 확인하는 장치였습니다.
다시 위대해지자고 외치는 당신,
저는 오랫동안 제 자신을 탓했습니다.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제가 너무 약한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당신의 과도한 목소리, 모순된 행위, 끊임없이 굴종을 요구하는 태도가 제 영혼을 짓눌렀다는 것을. 불일치는 곧 반역이었습니다.
당신은 가족과 나라를 위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늘 흥정 대상이었습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으로, 오늘의 충성이 내일의 배신으로 바뀌는 세계에서 우리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은 말해졌지만, 언제나 조건부였습니다. 당신이 가장 싫어한다는 모순이라는 말, 당신의 일상이기도 했지요.
나는 나입니다. 나는 새장입니다. 오랫동안 당신의 목소리가 철창이 되어 나를 둘러쌌지만, 이제 새장이 문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 감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열릴 수 있는 문이라는 것을. 나는 문을 열고 다른 새를 기다립니다. 자유롭게 날아와 이 세계를 같이 열어젖힐 수 있는 새를.
당신과의 화해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불가능이 저를 해방합니다. 그 불화의 말은 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빵 부스러기가 흩어진 마룻바닥을 다시 보게 된다면, 당신의 손가락이 나를 거칠게 가리킬 때면, 나는 포크를 들어 당신의 우그러진 입을 가리키며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즐겨하던 바로 그 말, “개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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