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장자’의 ‘지락’ 편을 읽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2025. 9. 23.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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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해가 다르게 더하는 것 같다. 생존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여름을 맞는 것이 무섭다 못해 거의 공포에 가깝다. 햇볕이 따가운 것을 넘어서다 못해, 숫제 뜨거운 창날이 피부를 휙휙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다. 예전엔 가난한 사람이 여름 지나기가 쉽겠다 여겼는데, 아예 더 어렵고 곤혹스럽기까지 할 것 같다. 겨울 같으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는데, 여름은 최소한의 체면을 지켜야 하기에, 더 이상 벗었다간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술 더 뜨는 것이 웬 부고장이 그리 많이 날아오는지 아연하다. 8월 한 달만 해도 벌써 너뎃 건을 넘어섰다.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그리 급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게 된다. 집에 홀로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책에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읽은 책 중에서는 ‘장자’가 아주 인상 깊었다. 장례식장에 갔다 오면 장자 ‘지락’편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거기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 생각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성맞춤이다.

장자 아내가 죽어 혜자가 문상가니, 장자는 곡은커녕 노래를 부르고 슬픔도 비껴둔 채 초연한 태도로 형이상학적인 말을 한다. ‘그저 흐릿한 어둠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변해 죽음이 된 것인데, 사계절의 흐름과 맞먹는 일’이라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삶은 무에서 나와 무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고인의 영정을 흘깃 볼 때마다 모든 생명이 휘발된 물화(物化)된 존재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고인은 이제 들을 수 없으니 그저 산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이다. 그곳을 나와 걸음을 옮기면 염천인 데도 뭔가 뒷골이 서늘한 느낌이다. 산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데, 고인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상태가 되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문득 차갑고 서늘한 공포가 스윽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잠시 서늘한 느낌으로 망연자실하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때가 언젠가 될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미리 생각하며 걱정할 일이 뭐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살아라’하는 말이 가슴뼈 아래 급소에서부터 스물스물 기어 나오곤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의 한 구절도 어슴푸레 떠오른다. 젊은이가 나이 들면 늙고 늙으면 죽는 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죽음이란 저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올해 떨어진 꽃은 같은 꽃은 아니라도 그 어디쯤에서 이듬해에도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처럼 다시 살아나지는 않겠지만, 뒤에 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해를 거듭해 다시 살아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여름 더위를 피해 읽는 장자는 내게는 아주 완벽한 피서법이다. 앞서 말한 ‘지락’편을 비롯해, 쓸모 있음의 쓸모 없음과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 달려오는 수레를 막는 사마귀, 어부가 배를 골짜기에 감추는 것까지…. 우화 같은 은유가 존재의 그늘을 살피게 하고 삶의 서늘한 부분을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서투른 해석이지만, 한여름마다 자주 읽다 보면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지혜의 알곡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두고두고 읽다 보면 죽음에 대한 면역력을 기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고전을 읽으니 어둡던 눈이 밝아지고 가는 귀도 점점 밝아질 게 아니겠는가.


8월의 부고 가운데에서도 동료 소설가의 죽음이 가장 가슴 아프다. 의사로 계속 남아 있었으면 ‘쓸모 없음의 쓸모 있음’이었을 터인데, 소설가로 남아 ‘쓸모 있음의 쓸모 없음’으로 생을 끝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러면서도 후배 작가가 살아 있음을 돌보고, 곁을 지켜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영원한 휴식에 들었으니 마음껏 소설 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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