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종의 클로즈업] 계엄의 그림자가 삼킨 軍 명예

경기일보 2025. 9. 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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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신의 계시가 진리로 군림하던 시대,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들었다.

그는 스스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집요한 회의를 통해 인류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다.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계엄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그 언급이 충분한 증거와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드리울 계엄의 그림자는 군이 아닌 민주주의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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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사태 이후 군 신뢰도 15% 하락
군의 정치적 중립, 법으로 보장해야
명예 회복하고 민주주의 지키는 길
이만종 호원대 명예교수·한국테러학회장

“그래도 지구는 돈다.” 신의 계시가 진리로 군림하던 시대,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들었다. 그는 스스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집요한 회의를 통해 인류의 세계관을 뒤흔들었다.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진실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더 이상 유령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추측과 의혹으로만 회자되던 계엄이 실제로 발령됐고 해제 과정에서 정치와 사회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전직 대통령은 탄핵 후 구속됐고 장성들은 법정에 섰다. 국가 권력의 최후 수단이 현실에서 작동한 순간 한국 사회는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게 됐다.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계엄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계엄 사태 이후 군 신뢰도는 15% 가까이 하락했고 특히 20, 30세대의 신뢰 회복은 더디다. “군도, 민주주의도 믿을 수 없다”는 회의가 젊은층에 퍼지며 정치 냉소주의를 키우고 있다.

가장 깊은 상처는 군에 남았다. 군은 헌법상 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른 것뿐이었지만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민 신뢰를 일부 잃었다. 한 장성은 간담회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군은 국민 신뢰 위에 존재합니다. 신뢰가 의심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존재 이유를 되묻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군 전체가 짊어진 집단적 상흔을 대변한다.

정치와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계엄은 정쟁의 도구로 소환됐고 일부 언론은 속보 경쟁에 치우쳐 사실 확인보다 의혹 증폭에 몰두했다. 그 결과 ‘군의 정치 개입’이라는 불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됐다. 영국 철학자 스티븐 툴민은 “증거는 해석의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에는 그런 공동체적 해석이 실종됐다. 같은 사건이 진영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로 소비되고 민주주의는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계엄제도는 본래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한 합법적 장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제도가 악용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제도의 본래 취지는 훼손됐고 그 부담은 군과 국민에게 전가됐다. 이는 군의 명예와 사기 훼손을 넘어 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불길한 신호다.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군이 다시는 정치의 도구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법으로 확실히 보장하고 권력의 의도나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이 흔들리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국회와 국방부가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하며 군의 작전권과 지휘 체계가 국민적 신뢰 속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언론도 책임 있는 보도를 통해 사실에 근거한 공론장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아렌트가 말했듯 “행동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증거 없는 주장과 무책임한 언사는 결국 군과 국민 모두를 해치는 칼날이 된다.

며칠 뒤면 국군의 날이다. 올해 국군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상처 입은 군의 명예와 사기를 회복하고 국민과의 신뢰를 다시 세울 소중한 기회가 돼야 한다. 화려한 열병식보다 중요한 것은 군 내부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국민에게 군이 ‘국민의 군대’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정치는 언제든 계엄을 언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언급이 충분한 증거와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다음에 드리울 계엄의 그림자는 군이 아닌 민주주의 그 자체일 것이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세상을 확인했듯 우리 역시 근거 없는 의혹이 아니라 증거 위에 민주주의를 세워야 한다. 그것이 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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