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하면 정말 성장 둔화할까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5. 9. 2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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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마켓톡톡
대한상의 ‘근로시간 단축’ 보고서
노동생산성 낮아 단축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 입장과는 정반대
저임금→근로시간↑→노동생산성↓

대한상의는 지난 22일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고용과 투자가 줄고, 성장이 둔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사망 산재가 발생한 SPC를 방문해 임금이 낮아서 근로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지적한 것과도 대조된다. 그럼 노동생산성이 낮아서 근로시간이 길어지는 걸까, 근로시간이 길어서 노동생산성이 낮아지는 걸까. 답은 당연히 후자다. 더스쿠프가 노동생산성 논쟁을 취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SPC 삼립 시흥 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임원진에게 사고 경위와 근로 환경을 묻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독일 정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국영 철도회사 '도이체반'이 통계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독일 매체 슈피겔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민영화를 준비하는) 도이체반이 부실한 재무제표를 개선하기 위해서 지연이 예상되는 열차를 아예 취소해 정시 도착 비율의 급락을 방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등 유럽 열차는 제때 도착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 사건은 독일 녹색당이 올해 2월 도이체반 장거리 열차 취소율이 최근 몇년 사이 상승한 점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도이체반은 최근 "올해 8월 승객용 장거리 열차의 정시 도착 비율이 66.7%로 1년 전 64.0%보다 상승했다"고 홍보에 나섰다.

특히 승객용 장거리 열차의 정시 도착 비율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70%를 훌쩍 넘겼다. 슈피겔은 취소율 상승과 열차 정시 도착 사이의 관계에 집중해 꼼수를 밝혀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단축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한 대한상공회의소의 '임금과 노동생산성 추이,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 보고서는 어떨까. 몇가지 중요한 연결고리가 삭제됐다는 점에서 도이체반 사태와 비슷한 면이 있다.

국내총생산(GDP)을 총노동시간으로 나눈 값이 노동생산성이다. GDP가 증가하면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 임금과는 한 다리 건너서 관계가 있다. 근로자는 임금이 줄어들면 노동시간을 늘려서라도 이를 유지하려 들고, 특정 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는다면 아예 일을 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특성을 임금의 하방경직성이라고 한다.

■ 근로시간 단축의 함의①=이쯤에서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 그리고 임금의 상관관계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 노동생산성이 낮은 국가 순위는 대체로 최장시간 근로국가 순위와 유사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2년 근로자당 실질 근로시간을 국가별로 보면 한국은 1901시간으로 38개 회원국 중에서 5위였다. 최장 근로시간 국가는 2405시간의 콜롬비아다. 멕시코가 2226시간으로 2위, 코스타리카가 2149시간으로 3위, 칠레가 1963시간으로 4위다. 대한상의가 제시한 노동생산성 국제 비교에서도 취업자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였다.

[자료 | 도이체반·슈피겔, 사진 | 뉴시스]

이같은 노동생산성 감소를 노동자 개인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저임금이 장시간 근로를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시간 근로는 '치명적 산업재해'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근래 들어 이 관계를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인물은 이재명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사망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SPC를 찾아가 사고의 근본 원인을 이렇게 표현했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12시간 맞교대를 하는 것보다 8시간씩 3교대로 일을 시키는 것이 유리한데도 맞교대가 유지되는 것은 기본임금이 매우 낮아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 같다."

그래서 SPC는 이재명 대통령의 방문 이틀 후에 야간 8시간 초과 근무를 없앤다고 발표했다.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감축을 통해서 3교대로 전환하겠다는 말이다. SPC가 임금 감소 없는 3교대 전환을 위해서 고용한 인원은 전체 생산 인력의 4%인 250명이다. 이는 연간 약 120억원의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잡코리아 등).

이 정도 비용의 증가는 정부가 강제하지 않으면 실행에 옮기기 힘들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8월 발표한 '한국의 노동시장 개혁 진전' 보고서에서 "시간당 임금을 인상한 프랑스·포르투갈의 근로시간 감소 정책은 물론이고, 시간당 임금 인상이 없는 일본의 근로시간 감소 정책도 근로자들의 삶의 만족도를 향상했다"며 권장했지만,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기업들이 '장시간 근로'를 단위당 임금 상승의 대안으로 언제까지나 쓸 수는 없다. 한국의 장시간 근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8~2021년 한국 노동시간 개혁 평가'에서 지적한 치명적 산업재해 발생의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10만명당 치명적 산재 발생 건수는 5건 이상인데, 이는 10만명당 7건 이상 치명적 산재가 발생한 멕시코와 터키를 제외하면 미국과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시간 근로가 실제로는 노동생산성의 감소를 부채질하는 행위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언급했듯 노동생산성을 즉각 늘릴 수 있는 것은 근로시간의 단축과 GDP 증가밖에는 없다. IMF 보고서도 "무척 긴 근로시간은 노동생산성을 끌어내려 기업의 노동 시간당 수익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근로시간 단축의 함의②=노동생산성을 즉각적으로 늘릴 수 있는 또 다른 변수인 GDP는 어떨까. 대한상의는 "근로시간 단축이 제도화할 경우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에 따라 고용과 투자가 위축되고, 전반적인 경제성장 둔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저성장은 대한상의의 지적처럼 노동생산성의 감소와 근로시간 단축 때문이 아니다. 저성장은 오히려 기업, 그중에서도 자본이 집중된 대기업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저성장은 노동·자본생산성 감소가 아닌 기업 경영과 관련된 총요소생산성의 감소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더스쿠프 7월 9·10일자 '한국 저성장 진짜 이유').

독일 국영철도 도이체반 열차가 프랑크푸르트 기차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우리나라 GDP 연평균 증가율이 2001~2010년 4.7%, 2011~2019년 3.1%, 2015~2024년 2.5%로 꺾였는데, 이 기간 경영 능력과 관련된 총요소생산성(TFP)은 1.9%포인트, 0.8%포인트, 0.6%포인트로 대폭 줄었다.

반면 노동 추가 투입의 성장 기여도는 0.8%포인트, 0.9%포인트, 0.6%포인트로 비슷했고, 자본 투입의 성장 기여도는 2.0%포인트, 1.4%포인트, 1.3%포인트로 완만히 줄었다. 노동생산성이 감소한 게 노동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참고: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 자본 투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생산성의 향상을 말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29일 '산업별 자원배분의 비효율성과 생산성' 보고서에서 "총요소생산성 증가세 둔화는 기술 진보의 둔화뿐만 아니라 자원배분 비효율성 증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자본을 많이 보유했지만, 생산성은 낮은 기업을 중심으로 비효율성이 확대했다"고 분석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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