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전북 완주 화암사

장갑수 2025. 9. 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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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 위에 핀 ‘잘 늙은 절 한 채’
화암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솔길을 따라서간다. 오솔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17번 국도를 벗어나 화암사 가는 길로 접어들자 사방이 첩첩산중이다.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 논밭이 자리하고, 산자락에는 농가들이 띄엄띄엄 둥지를 틀었다. 길은 자동차 한 대 겨우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구불구불한 시골길이다. 주변 풍경부터가 인간의 마음을 소박하게 한다.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모습이 속세의 번잡함을 훌훌 털어버리게 해준다.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자 길은 아예 숲으로 뒤덮였다. 하늘을 덮은 숲 터널을 지나자 산속에서 주차장이 기다리고 있다. 화암사의 매력은 20분 정도 오솔길을 따라 걷고 난 후에야 사찰을 만날 수 있다는데 있다. 임도를 따라 화암사까지 승용차로 갈 수도 있지만 화암사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솔길을 따라서간다. 오솔길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기 때문이다.

화암사 가는 길은 울창한 활엽수로 뒤덮인 숲 가운데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맑은 공기로 꽉 채워진 숲속에서 새들이 고요하게 노래하면 물 구슬을 만들며 흘러가는 계곡물이 낮은 음으로 반주를 한다. 나는 속세를 등지고 자연이 만들어준 선계(仙界)로 들어간다.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놓은 돌탑들은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선정삼매에 빠졌다. 다람쥐 한 마리가 묵언정진 중인 돌탑 앞에서 재롱을 부려보지만 돌탑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어제 제법 많은 비가 내려 계곡물은 수량이 많아져 곳곳에서 폭포수를 쏟아낸다. 부드러운 흙길과 울창한 숲을 이루던 골짜기는 바위 협곡으로 바뀐다. 파랗게 이끼 낀 바위가 원시적인 느낌을 전해주고,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폭포수는 탐욕을 내려놓게 한다. 계류는 암반위로 굴러가듯 흘러가다가 경사진 바위를 만나면 어김없이 폭포가 된다.

기암절벽을 이룬 협곡을 따라 걷다보니 가파른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벼랑 아래 계곡에서는 2단 폭포가 폭포수를 힘차게 쏟아낸다. 충분히 이름을 가질만한 규모건만 폭포는 이름조차 없다. 인위적으로 붙여놓은 이름이 변화무쌍한 폭포를 일정한 형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뜻일까?
벼랑 아래 계곡에서는 2단 폭포가 폭포수를 힘차게 쏟아낸다. 충분히 이름을 가질만한 규모건만 폭포는 이름조차 없다.

어떻든 화암사로 통하는 골짜기에서 만나는 여러 폭포는 모두 무명(無名)이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폭포수 소리를 들으며 세속에 찌든 마음의 때를 벗는다. 이제 나는 폭포수로 마음을 씻고 아미타부처님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화암사에는 일주문이나 천왕문이 없는데, 협곡에 형성된 폭포들이 일주문과 천왕문을 대신해준다. 폭포수 소리를 들으며 147계단을 따라 오르니 조그마한 평지가 나온다. 험준한 협곡 위쪽 별천지 같은 평지에 화암사가 둥지를 틀었다. 이름 그대로 바위에 핀 꽃이다.
험준한 협곡 위쪽 별천지 같은 평지에 화암사가 둥지를 틀었다. 이름 그대로 바위에 핀 꽃이다.

불명산 화암사(佛明山 花巖寺)라 쓰인 낡은 편액이 붙은 우화루(보물 제662호)가 발길을 멈춰 세운다. 꽃비 흩날리는 누각이라는 뜻을 가진 우화루(雨花樓)는 이름도 예쁘다. 우화루는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법화경의 가르침을 설하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화암사를 품고 있는 불명산(佛明山) 역시 ‘부처님의 밝음의 세계’를 뜻한다. 여기에서 밝음(明)이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를 증득함을 뜻하니 불명산은 부처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산이다. 우화루 앞에는 커다란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서 봄철이면 고매하게 꽃을 피운다.

누각이라면 2층 아래를 통과해 안마당으로 들어서야 마땅하지만, 화암사 우화루는 진입공간인 1층에 앞쪽만 기둥을 세우고 뒤편에는 막돌을 쌓았다. 그래서 절 안마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까 머뭇거리는데 왼쪽 문간채에 붙은 대문이 손짓한다.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서 우화루 옆 문간채 대문위에 매달린 분홍색 연꽃이 중생을 맞이한다. 문간채 대문을 통과해 우화루와 적묵당이 만나는 모퉁이를 돌아서서야 안마당에 진입한다. 화암사는 ‘ㅁ’자형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극락전, 적묵당, 우화루, 불명당 등 네 채의 당우가 처마에 닿을 듯 오순도순하게 앉아있다. 그 옆과 뒤로 명부전, 철영재, 산신각 등 작은 건물이 비켜 서 있다.

화암사는 번지르르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작고 소박한 절이다. 진입로에서부터 시작해 예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까지 화암사의 모습은 요즘 세상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소박한 사찰이다. 안도현 시인의 표현대로 ‘잘 늙은 절’이다. 화암사는 이렇게 비바람 속에서도 꼿꼿하게 세월을 견디면서 당당히 늙어가고 있다.
화암사는 번지르르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작고 소박한 절이다. 진입로에서부터 시작해 예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까지 화암사의 모습은 요즘 세상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소박한 사찰이다.

우화루와 마주보고 있는 극락전(極樂殿, 국보 제316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백제계 건축양식인 하앙구조(下昻構造)를 가지고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여러 차례 중창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백제 때의 하앙양식을 살려왔다. 하앙이란 기둥위에 중첩된 공포와 서까래 사이에 끼워진 긴 막대기 모양의 부재를 가리킨다. 이 구조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우화루와 마주보고 있는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백제계 건축양식인 하앙구조(下昻構造)를 가지고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극락전 편액은 각각의 글자를 나누어 걸었는데, 하앙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목재로 인해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고, 편액 위에 그려진 불화를 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각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불단 위에는 지붕모형의 화려한 닫집이 있고, 나한도와 화조도 등의 벽화와 단청이 화사하게 그려져 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우화루는 높낮이가 다른 땅에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앞에 기둥을 나란히 세워 대청마루를 놓았다. 땅의 높낮이가 달라 절 입구에서는 2층 누각으로 보이지만 극락전 앞마당에서는 단층으로 보인다. 우화루에는 오래 된 목어가 걸려있다. 목어도 극락전이나 우화루 같은 당우들과 마찬가지로 잘 늙어가고 있다. 넓은 마루가 깔린 우화루에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세 개가 있는데, 창문을 통해서 바깥풍경이 액자 속 그림처럼 다가온다.
우화루(보물 제662호)는 높낮이가 다른 땅에 돌로 축대를 쌓고 그 앞에 기둥을 나란히 세워 대청마루를 놓았다.

극락전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서 적묵당 마루에 앉으니 화암사 안마당에 햇볕이 내려앉는다. 부처님이 밝혀준 반야의 세계가 작은 마당에 스며든 것 같다.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읊은 선시를 음미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장갑수·여행작가>

※여행쪽지
▲완주 화암사는 폭포가 즐비한 협곡을 통하여 20분 정도를 걸은 후에야 만날 수 있는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절이다. 작고 소박하지만 ‘잘 늙은’ 선비처럼 곱고 당당한 사찰이다.
※코스 : 화암사주차장-오솔길-화암사(왕복)
※거리, 소요시간 : 편도 800m(왕복 1,6㎞), 1시간 소요(관람시간 포함)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화암사주차장(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112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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