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철길숲에 책의 정원을 심자

이다영 포항시의원 2025. 9. 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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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영 포항시의원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말이다. 그만큼 책은 단순한 지식의 수단을 넘어 인간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근본적 기반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과 급격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종이책을 펼치는 습관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독서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개인의 의지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도시 차원에서 책과 시민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포항은 산업과 경제에서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도시이다. 그러나 진정한 미래도시는 물적 성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민들의 내면을 살찌우고 문화적 성숙을 함께 이뤄내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문화의 힘은 결국 책에서 비롯된다. 독서를 생활 속에서 가까이할 수 있도록 도시가 촘촘히 준비할 때, 포항은 산업도시를 넘어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도서관, 학교, 서점 같은 특정 공간 안에만 머물러 있던 독서활동을 시민 생활권으로 끌어내는 '밀착형 독서환경'이 절실하다.

그 대안으로 나는 포항철길숲 공원을 주목한다. 철길숲은 이미 많은 시민이 산책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는 대표적인 생활 속 명소다. 이곳 한켠에 '책의 정원'을 조성해 보자. 책의 정원은 단순히 책을 모아두는 공간이 아니다. 매달 '이달의 책'을 선정하고, 그 중 일부만 발췌해 전시하여 시민들이 걷다가 자연스럽게 눈길을 멈추고 책 속 문장과 마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짧은 문장과 단락이 주는 울림은 더 큰 독서욕구로 이어질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문장이 마음을 흔들고, 그것이 곧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매월 작가를 초청하거나 전문가와 함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더한다면 '책의 정원'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시민과 책이 소통하는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작은 토론회, 낭독회, 시민 참여형 독서모임 등을 통해 책은 더 이상 개인의 고독한 행위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공공의 경험이 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며 독서의 즐거움을 배우고, 청년과 어른들은 책을 통해 세대를 넘어 대화할 수 있다.

특히 철길숲이라는 열린 공간에 책 문화를 심는 것은 상징적 의미도 크다. 과거 산업 발전의 흔적 위에 조성된 철길숲은 이미 시민의 쉼터이자 포항의 새로운 문화적 자산이다. 여기에 책을 더한다면, 산업과 문화, 과거와 미래가 어우러지는 포항만의 독창적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철길이 과거 산업의 길이었다면, 이제는 책이 미래 지성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포항은 지금 '지속 가능한 도시'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속 가능성은 단순히 환경과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하는 힘을 갖추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성장하는 도시만이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책이다. 책을 통해 사고가 확장되고, 사고가 확장될 때 도시의 미래 또한 커진다.

따라서 이제 포항은 독서를 선택적 취미가 아닌 생활문화로 만들어야 한다. 책의 정원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시민이 언제든 산책하다 멈추어 책을 만나고,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며,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지혜를 나누는 도시, 그것이 포항이 지향해야 할 문화도시의 모습이다.

책의 정원이 철길숲에 뿌리내릴 때, 포항은 책을 읽는 도시를 넘어 생각하는 도시, 성장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산업의 강인함과 시민의 지성이 어우러진 포항, 그 미래는 책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