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전자’와 가속노화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5. 9. 2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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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쉴 곳을 찾고 있는 전자에 불과하다."

수년 전 대사의 생화학을 다룬 책을 읽다가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출신 미국 생화학자 센트죄르지 얼베르트가 짧은 한 문장으로 내린 생명의 정의(위 문구)를 보고 무릎을 쳤다.

잠이란 길 잃은 전자가 만든 활성산소가 많이 축적돼 피해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진화한 현상으로 대사 활동을 줄이고 생성된 활성산소를 없애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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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생명은 쉴 곳을 찾고 있는 전자에 불과하다.”

수년 전 대사의 생화학을 다룬 책을 읽다가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출신 미국 생화학자 센트죄르지 얼베르트가 짧은 한 문장으로 내린 생명의 정의(위 문구)를 보고 무릎을 쳤다. 아마 독자들은 무슨 말인가 싶을 텐데 같은 맥락에서 네덜란드의 생화학자 알베르트 클라위버르가 내놓은 아래 설명은 이해하기 좀 낫지 않을까.

“살아 있다는 것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세포 내부에서 지속적이고 방향성이 있는 전자의 움직임이다.”

전자는 물리학과 화학에서나 다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생체 반응이라는 게 결국 각종 분자의 전자가 이동하고 재배치되며 새로운 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므로 이들의 정의 또는 설명이 그렇게 과격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몸의 생체 반응 대부분은 세포호흡을 맡은 세포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난다(양의 측면에서). 세포호흡이란 포도당 분자에 있는 고에너지의 전자를 산소를 향해 흘려 보내 안정한 물 분자를 만드는데, 그때 나오는 에너지로 아데노신 삼인산(ATP)이라는 분자를 합성하는 과정이다. 어찌 보면 수력발전과 비슷하다. 아데노신 삼인산은 다른 생체 반응의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그런데 세포호흡 과정에서 고에너지 전자의 일부가 ‘길을 잃어’ 엉뚱한 곳에서 산소를 만나면 물이 아니라 초과산화물 같은 활성산소를 만들어 문제를 일으킨다. 즉 방향성이 없는 전자의 움직임으로 세포 손상이 누적되면 우리 몸은 늙고 병들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老病死).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이런 맥락에서 수면압력의 기원을 제시한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논문이 실렸는데 꽤 그럴듯하다. 수면압력이란 졸음을 느끼는 정도로, 깨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커져 어느 선을 넘으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잠을 안 재우는 게 고문인 이유다.

초파리 수면 조절 신경회로에 있는 뉴런의 미토콘드리아는 깨어 있을 때 나온 방황하는 전자에서 활성산소가 만들어지도록 해서 수면압력 신호를 내보낸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아데노신 삼인산(ATP)을 덜 만들어 미토콘드리아 내막(IMM)에 갈 곳을 잃은 전자(흰 점)가 쌓이며 활성산소(O₂-)가 많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신호도 강해진다. ‘신경생물학 최신 견해’ 제공

연구자들은 초파리의 뇌에서 수면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에 있는 뉴런(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가 수면압력 신호를 내놓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깨어 있는 시간이 길수록 이 뉴런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잠을 유도하는 신호가 강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잠이란 길 잃은 전자가 만든 활성산소가 많이 축적돼 피해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진화한 현상으로 대사 활동을 줄이고 생성된 활성산소를 없애는 시간이다.

연구자들은 오래 깨어 있을 때 수면 조절 뉴런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억제하는 처리를 하면 수면 시간이 줄고 깊이가 얕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즉 이 뉴런의 미토콘드리아에서 수면압력 신호가 제대로 오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자 피로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호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해로운 활성산소를 만들 뿐 아니라 그 정도를 살펴 부작용이 커지기 전에 잠이라는 해독 과정을 유발하는 ‘결자해지’를 실천하는 셈이다.

최근 저속노화 열풍이 일고 있는데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다. 저속노화를 위한 생활 습관 가운데 숙면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부적절한 시간대의 카페인 섭취나 밤늦은 에스엔에스(SNS) 활동 등은 뉴런 미토콘드리아의 수면압력 신호를 방해해 잠의 질과 양을 떨어뜨리고 결국 가속노화와 대사질환을 불러온다. 숙면에 해로운 행동을 계속할 때 내 세포 안에서 ‘방황하는 전자’를 떠올린다면 멈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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