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행동강령’ 30주년인데…한국, 성별임금격차 29년째 1위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철폐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강구한다’, ‘모든 형태의 고용차별을 철폐한다’, ‘권력 구조와 의사 결정에서의 여성의 동등한 접근과 완전한 참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1995년 중국 베이징서 열린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한국을 포함한 189개국의 만장일치로 통과한 ‘베이징 행동강령’의 일부 내용이다. 여성폭력, 의사결정, 경제 등 12개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를 규정한 베이징 행동강령이 채택된 지 올해로 30년을 맞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9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은 이전보다 더 많은, 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놓여 있으며, 동시에 정책·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비율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23일 오후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 기념 이행 평가 및 향후 과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경제·빈곤·폭력·의사결정 등의 분야에서 한국의 베이징행동강령 이행과정을 점검하는 발표와 함께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백선희 조국혁신당 의원, 손솔 진보당 의원,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이 참여한 토론이 진행됐다.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도 참석해 “베이징 행동강령의 성주류화 전략은 한국에서도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온 중요한 밑거름이 되어 왔지만 그럼에도 성별임금격차·사회 구조적 영역에서의 차별·교제폭력 등이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며 “여성가족부는 오늘 논의될 제안들이 정책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여성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남성의 65.6%에 불과하며 저임금 노동자의 70.2%는 여성이다. 노헬레나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은 이날 발표에서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일하고 있던 대면접촉서비스업이 타격을 입은 팬데믹과, 공공돌봄을 시장화하고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을 전액 삭감하며 적극적 고용 개선조치(AA)를 후퇴시켰던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성평등이 크게 후퇴했다”며 “우선 극심한 성별임금격차 해소가 시급하다. 지원자 성비 대비 합격자 성비, 고용형태별 성비, 직군별 성비 등 다양한 데이터가 포함된 성평등 공시제가 반드시 도입되고 상벌로 규율하는 방안도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폭력은 스토킹, 디지털성범죄,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범죄, 성폭력 2차 피해와 역고소 등 다변화됐지만, 여성폭력 예산 삭감, 수사기관의 미흡한 현장대응, 범죄 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못하는 관련 법의 한계 등으로 여성폭력에 대한 대응은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베이징 행동강령 이행 가속화를 위해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강간죄 구성요건을 변경하는 형법 개정,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가족폭력처벌법의 전면 개정을 통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입법, 여성살해 등 여성폭력 실태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통계 시스템 구축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행동강령에 ‘권력 구조와 의사 결정에의 여성의 동등한 접근’이 목표로 담겨 있음에도 여전히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지난해 국가성평등지수 보고서에 의하면 교육, 건강, 고용, 성평등 의식, 의사결정 등 분야별 수준 중 의사결정 부분에서의 성평등 수준이 가장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22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도 20%에 불과하다.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베이징 행동강령의 핵심 메시지는 성평등이 모든 정책에서 주류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최근 페미니즘 백래시 흐름과 이에 편승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동조가 맞물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여성 할당제 의무화’ 등 여성 과소대표 문제 해소를 위한 적극적 개선조치 제도가 ‘역차별’ 프레임에 덧씌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성평등을 정책 기조로 확립해 여성 대표성 확대분만 아니라 성차별, 성폭력 해소를 위해 적극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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