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두테르테 기소장엔… "마약전쟁 살인 최소 76건 연루"

허경주 2025. 9. 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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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단 등 동원해 마약 복용·밀매자 사살
변호인 "인지 장애로 재판 못 받아" 주장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마닐라 상원에서 열린 '마약과의 전쟁'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수감 중인 로드리고 두테르테(80) 전 필리핀 대통령을 반인륜 범죄 혐의로 공식 기소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주도했던 그는 국제 사법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ICC는 22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두테르테 전 대통령 기소 사실을 밝히고 기소장을 게재했다. 문서는 지난 7월 4일 작성됐으나 이날 처음 외부에 공개됐다. 기소장에는 그가 마약 범죄 소탕 과정에서 최소 76건의 살인에 연루됐다는 혐의가 담겼다.

이에 따르면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 시장(2013~2016년) 시절, 자경단 ‘다바오 데스 스쿼드’를 동원해 마약 사범 약 19명을 사살하도록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조직적·계획적인 살인 지시가 이뤄졌다. 취임 초기인 2016~2017년에는 암살 조직 ‘국가 네트워크’에 대규모 마약 범죄자 14명의 살인을 지시한 혐의가 적시됐다. 임기 후반(2016~2018년)에는 필리핀 전역에서 진행된 마약 복용·밀매자 정화 작전에서 의심 인물 45명의 살인에 관여하기도 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6년 9월 마닐라 북부 케손시에서 경찰이 마약상 용의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마닐라=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마메 만디아예 니앙 ICC검찰관은 살인 대부분은 경찰이나 다른 집행자들이 수행했지만, 두테르테 전 대통령 역시 ‘간접적 공동 정범’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또 기소장에 적시된 사망자 76건은 전체 희생의 일부일 뿐이며, 실제 피해는 수천 명에 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소장에는 검찰 측 구형은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필리핀 언론은 재판부가 기소된 혐의를 모두 인정할 경우 종신형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다바오시 시장 시절부터 마약 범죄 소탕 작전을 벌였고, 2016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마약 복용자나 판매자가 투항하지 않으면 경찰이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해 최소 6,200명이 사망한 것으로 필리핀 정부는 집계했다. 인권단체는 최대 3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2016년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경찰의 마약 사범 단속 과정에서 숨진 이들의 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닐라=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ICC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두테르테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고, 필리핀 정부 협조 아래 지난 3월 체포했다. 네덜란드 헤이그로 압송된 그는 현재 ICC 구금센터에 수감 중이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ICC에 기소된 첫 아시아계 전직 국가원수다. 다만 건강 문제 등의 이유로 실제 재판에 서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변호인인 니콜라스 카우프만은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여러 영역에서 인지 장애를 겪고 있어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면서 법적 절차를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FP통신은 그가 지난 3월 화상 심리에 출석했을 당시에도 멍하고 허약해 보였으며 말도 거의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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