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안전한 나라] 반복되는 방음터널 화재…화염·유독가스에 시민 안전 무방비
한 번 화재 나면 걷잡을 수 없어 유독가스 사망 치명적
정부 기준 부재…지자체가 먼저 안전 대책 마련해야
[아이뉴스24 정재수 기자] 최근 수 년간 이어진 대형 안전사고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 인식과 제도적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붕괴, 화재, 폭발 등 재난 사고는 한 순간에 수십 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시민들에게 큰 충격과 불안을 남긴다. ‘안전한 나라’ 기획을 통해 우리 주변에 도사린 위험 요인을 짚어보고 제도적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첫 번째로 살펴 볼 곳이 바로 ‘방음터널 화재’다.
도심 고속도로 곳곳에 설치된 방음터널은 소음을 줄이는 장치이지만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죽음의 덫’으로 변한다.
![지난 2022년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3/inews24/20250923130626445fpux.jpg)
2005년 이후 전국에서 크고 작은 방음터널 화재 사고가 최소 10건 이상 보고됐다. 대표적으로 2022년 12월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다. 이 화재로 5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연기를 흡입해 부상을 입었다. 차량 또한 수십 대 전소됐다.
당시 불은 방음터널 내부에 설치된 폴리카보네이트(PC·Polycarbonate) 재질 방음판에서 순식간에 확산됐다. 현장 목격자들은 “불길이 마치 기름을 부은 듯 삽시간에 번졌다”고 증언했다.
또 2020년 수원과 용인을 지나는 광교 방음터널에서 차량화재가 방음판으로 연소 확대되면서 수백미터 구간이 전소됐다. 인명 피해는 적었지만 구조물이 소실 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5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불연성 강화유리로 시공 완료됐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19일 영동고속도로 용인 수지구 상현동 인근 광교 방음터널에서 인천방향으로 주행하던 8.5t 화물차에 불이 나 양방향 모두 통제되기도 했다. 40여분 만에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방음터널 화재 사망 원인은 대부분 유독가스 흡입과 고온 연기에 의한 질식사였다. 방음판이 타면서 발생한 독성가스(특히 시안화수소, 일산화탄소, 염화수소 등)가 좁은 터널 내부에 머물러 대피 시간을 극도로 줄였던 것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와 화재조사 결과 등에 따르면 최근 20년 내 방음터널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15명, 부상자는 100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방음터널은 구조상 폐쇄성이 강해 작은 불씨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쉽다”며 경고한다.
◆여전한 가연성 자재 사용…더 위험한 건 유독가스
방음판은 크게 폴리카보네이트(PC), 아크릴(PMMA), 강화유리, 알루미늄 복합재, 투명 강화유리+난연 필름 복합재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는 방음터널이나 방음판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메타크릴레이트(PMMA·아크릴), 강화유리를 살펴보자.
![지난 19일 영동고속도로 용인 수지구 상현동 인근 광교 방음터널에서 인천방향으로 주행하던 8.5t 화물차 화재 진압 모습.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3/inews24/20250923130627681gfbq.jpg)
PC는 충격강도와 투명성 덕에 널리 쓰이는 재료지만 불에 타는 가연성 재료다. 연소 시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 유독가스를 방출한다. 특히 치명적 독성가스이자 1급 발암물질인 페놀까지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널 천장에 설치될 경우 불길이 천장을 타고 퍼지면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PMMA는 발화점이 낮고 열방출률이 커 가장 위험한 재질로 꼽힌다. 용융 방울이 떨어져 2차 화재를 일으키며 유독가스를 발생시킨다.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이후 PMMA 소재 방음판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학계와 업계 모두 사용 금지를 강력 권고하고 있다.
강화유리의 경우 불연재로 화재 시 타지 않으며 유독가스도 거의 발생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가장 안전한 재질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눈 여겨볼 점은 바로 유독가스 배출량이다.
방음터널 화재 발생시 480~3400℃까지 치솟는 상황을 고려하면 PMMA나 PC는 순식간에 녹아 내려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안전 및 방재대책수립연구’ 자료에 따르면 인화점이 280℃인 PMMA는 화재시 일산화탄소 322ppm, 이산화탄소는 368ppm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PC의 경우 인화점이 450℃이지만 화재시 일산화탄소 578ppm, 이산화탄소는 1204ppm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C가 인화점은 PMMA보다 높지만 유독가스 발생량은 3배 가까이 발생하는 것이다.
방음터널 화재시 사상자 대부분이 유독가스 흡입과 고온 연기에 의한 질식사인 점을 감안하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대목이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PC재질은 화재 발생 후 90초 내 인계점(불길 확산이 제어 불가한 상태)에 도달하는 반면, 강화유리는 화재 확산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렴한 비용이 시민들 안전 책임지지 않아
문제는 여전히 많은 도로에서 PC재질 방음판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시공 비용이 저렴하고 가공이 용이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PC는 화재 시 불길과 유독가스를 동시에 발생시키며 좁은 방음터널 구조 특성상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2022년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3/inews24/20250923130628924ihuq.jpg)
실제 학계와 업계 전문가들은 “PC재질 방음판은 더 이상 사용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건설안전학회 관계자는 “화재 취약 자재임이 명확히 드러났는데도 예산 문제로 현장 적용이 이어지는 것은 심각한 안전 불감증”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2023년 ‘제설작업과 강풍 등에 의한 방음벽 파손방지 방안’ 자료에서 불연·난연 성능을 확보한 금속 및 강화유리 계열 자재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투명형 재질의 경우 ‘강화접합유리 대비 3배 강도의 화학강화접합유리’ 적용을 명시했다.
여기에 서울시는 ‘방음벽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안전성과 미관을 동시에 고려해 불연성 또는 난연성 자재를 사용하도록 원칙을 제시했다. 특히 시각적 개방감을 유지하되 화재 시 연소 확대가 불가능한 재질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가이드라인에서 변색 등 도시미관, 화재, 파손, 교체용이에 대한 지침으로 PMMA, PC, 일반강화유리는 사용을 지양하고 하단부 2m에는 화학적 강화접합유리 사용 지침을 정했다.
학계에서는 이미 수 차례 “PC재질 방음판은 화재에 취약하다”는 경고를 내놨다. 한국소방안전학회는 “유독가스 배출량이 인명 피해의 주원인인데 PC는 극히 치명적”이라며 “국가 차원의 자재 사용 금지 지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은 비용 아닌 생명과 직결…전 과정 점검 필요
하지만 정부 차원의 명확한 기준은 아직 없다. 국토부는 현재 ‘불연·난연 성능 강화’라는 원칙적 방향만 제시했을 뿐 어떤 자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구체적 규정은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앙정부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지자체별로 제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현장 혼란이 크다”며 “결국 예산 압박으로 값싼 PC가 여전히 쓰인다”고 꼬집었다.
![지난 2022년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진화 모습.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3/inews24/20250923130630163sszm.jpg)
전문가들은 방음터널 안전 강화를 위해 PC 방음판 전면 교체와 불연·난연 자재 사용 의무화, 화재 발생 시 자동 차단·환기 시스템 설치, 지자체 차원의 선제적 대책 마련을 제언한다.
정부가 명확한 규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기초 지자체가 시민 안전을 위해 독자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안전은 비용 문제가 아닌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안전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방음터널이 ‘죽음의 터널’로 변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 모두가 자재 선택부터 관리, 화재 대응까지 전 과정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다.
/용인=정재수 기자(jjs3885@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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