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 떠나 인연 찾아왔지만… “42평 자가 보유” “코인 고수”[직접 가봤습니다]
△ “마포 선녀님? 전 송파 바위요”
사찰행 버스에서부터 자기소개
직장·연봉까지 공개하며 어필
△ 눈치싸움 뜨거운 ‘차담 데이트’
한명씩 저녁식사할 상대 지목
게임 점수 내기로 야간산책도
△ 아침 공양 후 ‘최후의 결정’
6개 커플 탄생 ‘50% 성사율’
‘인기남’이 혼자 남은 반전도

속초=박동미 기자
“도반(道伴·함께 도를 닦는 벗)과 함께하시겠습니까?”
사락사락 부슬비가 내렸던 지난 13일 저녁. 강원 속초 설악산에 자리한 신흥사 대강당엔 30대 남녀 20여 명이 동그랗게 모여앉았다. ‘○○바위’가 ‘○○선녀’에게 손을 내민다. 모두 숨죽여 선녀의 답을 기다린다. 5초쯤 고민하고 나온 답은 “아니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른 선녀(여성)와 바위(남성)들이 재빨리 자리를 바꾼다. 사람은 24명, 방석은 23개. 결국 한 명은 덩그러니 남게 된다. 이 단순한 게임은 사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제자리를 못 찾은 바위(혹은 선녀)는 이른바 자신의 ‘티엠아이(too much information·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정보)’ 중 하나를 공개한 후,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답을 해야 한다. “오늘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나요?” “지금 맘에 둔 사람은 몇 명인가요?” “그분과 충분히 대화를 했나요?”…. 그런데 질문도 ‘빈익빈 부익부’다. 누구는 넘치게 받고, 누구는 단 한 개도 받지 못한다. 어쩌겠나.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눈 밝은 이들은 이미 눈치챘을 터, 여기는 템플스테이 미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 현장이다. 사찰에서 ‘짝짓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끄는데, 커플 성사율이 무려 60%에 달해 더욱 화제다. 직접 가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수행의 공간을 연애의 공간으로 허했는가. 청춘들은 인연을 만들 수 있을까. ‘나이 제한(30∼39세)’으로 참가하지 못한 기자가, 1박 2일간 이들을 초근접 거리에서 관찰했다.

◇버스에서부터 치열한 탐색전= “어디 사시죠?” “저, 마포….” “아, ‘마포 선녀’시군요.” 이날 오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 1박 2일간 본명은 금지. ‘닉네임’은 거주지에 ‘선녀’(여성) 혹은 ‘바위’(남성)를 붙이는 식이다. ‘강서 선녀’ ‘송파 바위’ ‘동대문 선녀’ ‘원주 바위’ ‘광명 선녀’ ‘속초 바위’…. ‘나는 절로’ 총책임자인 유철주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홍보위원이 명찰을 나눠주고 있다. “저 진짜 참가 못 해요? 깍두기라는 게 있잖아요!” “춤추고 노래하시면 생각해볼게요.” 마음을 비운다. 불교의 핵심은 ‘비움’이니….
속초 신흥사까지는 3시간 30분. 선녀와 바위들을 태운 버스는 중간에 두 번 휴게소에 들를 예정. 그동안 참가자들은 세 명의 이성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제비뽑기와 소지품 고르기로 자리를 이동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당 1시간 정도. 다소 산만한 듯도 한데, 1박 2일이라는 촉박한 시간 동안 ‘내 짝’을 알아보려면, 어쩔 수 없다. 밀도를 높여,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옆자리 이성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맨 앞에 나가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 유 위원은 출발 전 경고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찾는다’ 같은 식상한 멘트는 지양하라는 것.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라는 주문이다. “20대에 1억 모았습니다!” “42평 아파트 있습니다” “비트코인 투자 조언 가능합니다” “장거리 연애도 자신 있어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이 누군가. 전 세계가 연일 분석하는 MZ세대이고, 동시에 여기저기 넘치는 ‘연프(연애 프로그램)’로 단련된 세대다. ‘나는 솔로’ 출연자들 못지않은 입담에 버스 안이 후끈 달아오른다.
참가자들의 ‘필사의 몸부림’이 구경꾼에겐 마냥 재밌다. 어떤 선녀와 바위가 이어질까, 누가 인기녀·인기남이 될까. 이름만 숨겼을 뿐 사는 곳부터 직장, 연봉까지 속세의 모든 것이 낱낱이 공개되는 걸 보니, 성사율이 높았던 이유를 알겠다. ‘나는 절로’는 철저히 ‘세속적’이다. 참가자들은 수행자가 아니며 연애란 종종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채우는 행위다. 속세의 중생들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 더욱이, ‘나는 절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이라는 슬로건 아래,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는다. 현실적이 되라는 진행자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비움이 아니라 채움이다. 참가자들은 이를 빨리 인정하고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다. 그것은 그대로 순수한 것인지도 모른다. 설악산이 가까워질수록 버스 안은 점점 더 시끄러워져 갔다.

◇12명 모두와 나누는 차담= 점심 무렵 신흥사에 도착하니 폭우다. 다시 긴장감이 감돈다. 버스에서 내리자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무리를 짓는다. 진행자의 ‘잔소리’가 사라지면, 어색해지는 분위기. 유 위원은 “매번 그렇다. 그래서 자꾸 독려해야 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섞여 말을 걸고, 서로를 알아가는 일이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점심 공양(식사) 때 주최 측은 반강제로(?) 남녀를 섞여 앉혔다. 버스에서의 기세는 어디로 갔지. “저기, 설거지 여기서 하는 거 맞아요?” 사찰에선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씻는다. 기자를 조계종 직원이라 착각한 한 바위가 말을 건다. 그래, 그거. 저기 저 선녀에게 물어보면 어떻겠니. 식사 후 조계종 직원들이 다시 끼어든다. “남자분들은 여성분들 설거지 좀 대신해주세요. 아휴, 답답해.”
참가자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탐색전에 나선다. 사찰 인근 해변의 한 카페에서 릴레이 차담 데이트가 이어지는 것.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두 시간가량 진행된 차담은 모든 이성과 최소 10분씩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추후 참가자들은 대부분 “이때 마음속 이성의 순위가 정해졌다”고 했다.
버스에서 겉모습과 세속의 삶을 살폈으니, 이제 자신과 잘 맞는 성격의 소유자를 알아볼 차례다. 버스에서와는 또 다르다. “밥은 맛있게 드셨어요?” “아까 그 춤 멋졌어요.” “어제 저녁 잘 주무셨어요?” “직장생활은 몇 년 되셨어요?” …. 12명과 계속해서 비슷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참가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표정을 관찰자들에게 들키고 있었다. 아, A 선녀는 바위 B에게 함박웃음을 짓네, C 선녀는 지금 상대방이 지루한 것 같네, D 바위를 만나면 다들 좋아하는군…. 이쯤 되니, ‘대세’가 보인다. 차담 후엔 선녀들의 선택의 시간. 하지만 TV 속 ‘연프’와는 다르다. 순서를 정해, 한 명씩 차례로 저녁 식사를 같이할 바위를 지목하고, 바위는 이를 거절할 수 없다.

◇사찰에서 야간 데이트라니= 앞서 ‘도반 게임’은 저녁 식사 후 이어진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진행됐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온 개그맨 이은지가 합류했다. “어우 너무 재미없어요. 좀 더 도파민 나오게 해주세요!”라며 이은지는 계속 흥을 돋웠다. 모든 게임이 종료된 후엔 바위들이 게임에서 얻은 점수순으로 야간 데이트할 선녀를 선택했다. 이때부터 정말로 ‘연프’를 생방송으로 보는 느낌.
하루종일 선녀와 바위를 지켜보니, 관찰자도 ‘응원 커플’이 생겨난다. 음, A 선녀와 C 바위랑 잘 어울렸는데, D 바위가 꼭 짝을 찾았으면…. 협업 기관으로 들어온 강원관광재단 직원들도 간절했다. 지역특화팀의 박정현 팀장은 “강원 홍보를 위해 협력했으니, 강원권 참가자 중에서 커플이 꼭 나왔으면 한다”고 했다. 조계종은 이번 신흥사편에 속초, 양구, 고성, 정선, 원주 등 강원권 참가자들을 일정 비율 이상 선정했다. 그나저나, 신흥사 참 넓다. 커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숨었지.
14일 오전 아침 공양 후 참가자들은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경내를 산책했다. 차담에 끌린 마음은 야간 데이트 때 바뀌기도 했을까. 결전은 오전 10시. 주최 측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이성을 문자로 보내면 끝. ‘연프’가 주는 도파민을 원했지만, ‘나는 절로’ 팀은 참가자들이 받을 상처 때문에, 성사된 커플만을 발표했다. 아, 조금은 싱거운 화면인데….
6커플이 탄생했다. 50%의 성사율. 이 정도면 ‘결혼정보회사’보다 낫다. 레크리에이션 때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E 바위가 명단에 없다. 가장 인기가 많아 보였는데, 결국 짝을 못 찾았다.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인연을 만나려면 조금 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유 위원의 전언. 그렇게 참가자들의 욕망을 부추기더니, 다시 ‘비움’인가. 어쩌면 바위 E에겐 ‘세속적’인 ‘나는 절로’가 맞지 않는 것일지도. 기자가 응원했던 바위 D는 커플이 됐다. 괜히 뿌듯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연프’를 보나.
서울로 향하는 버스. 꼭 붙어 앉은 여섯 커플은 질투 나게 다정하다. 인연을 못 만든 12인은 남남/여여로 앉았다. 울적할 것 없다. 방송팀의 어수선한 촬영, 기자의 집요한 질문, 조계종 직원들의 ‘닦달’ 속에서도 1박 2일 자신을 잘 지켰다. 곧 좋은 짝이 올 것이다. 덧붙여, ‘나는 절로’의 기획자인 묘장 스님의 책을 추천한다.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 절찬리 판매중.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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