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데, 어쩌지 [씨네뷰]

최하나 기자 2025. 9. 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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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자수성가해서 산 집에서 토끼 같은 아내, 자식들과 함께 사는 삶. 정말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도끼’를 들어 모가지를 자르기 전까지는. 인생의 절반을 바친 회사에서 만수(이병헌)는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는다.

3개월 안에 호기롭게 재취업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제지업이 아닌 다른 일자리는 죽어도 싫다. 어느 날 면접을 앞두고 “다 죽여버려”라는 아내의 응원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튄다. “어쩔 수가 없다”고 한 백만 번 중얼거린 끝에, 만수는 경쟁자들을 죽여 재취업의 확률을 높이겠다는 위험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긴다. 만수는 그토록 원한 재취업을 이루고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집을 지킬 수 있을까.

24일 개봉되는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세계적 거장인 박찬욱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약 3년 만에 내놓는 신작으로 제작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여기에 배우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박희순 차승원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로 채운 캐스팅 라인업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베니스와 토론토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기대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박찬욱 감독이 오래전부터 영화화하고 싶었던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를 어떻게 자기만의 세계로 변주할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기대감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막상 베일을 벗은 ‘어쩔수가없다’는 왜 베니스에서 무관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만들 정도로 곳곳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원작의 힘은 1인칭 시점의 서술에 있다. 독자가 주인공의 왜곡된 논리와 광기를 서서히 납득할 수 있게 주인공의 시선으로 소설 속 세계를 좁혀둔 것이다. 독자는 주인공의 시선에 몰입하며,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위가 그의 내면에서 어떻게 ‘논리화’되는지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에게 만수의 살인을 납득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만수의 감정과 사고의 층위를 치밀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즉, 위기에 몰린 만수가 극단적 폭력으로 비약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데 실패한 것이다. 1년 간의 재취업 실패나 가장으로서의 체면, 어렵게 지킨 집에 대한 집착 같은 동기들은 결국 ‘살인’이라는 극단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기에는 그 지점이 영화를 밀고 나가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에 쉽게 흘려보낼 수 없다.

이 설득의 부재는 평범한 가장인 만수가 왜 폭력의 극한으로 내딛게 되었는지를 끝내 납득하지 못한 채 서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문제는 단순히 개연성의 문제가 아니다. 작품의 장르인 블랙코미디가 성립하려면, 만수의 광기가 서서히 관객의 생각을 파고들어 설득력을 얻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쩔수가없다’는 오히려 정반대다. 만수의 행동은 낯설고 납득되지 않았으며, 웃음 대신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관객은 만수를 이해하기보다는 판단하게 되고, 이로 인해 영화는 코미디도 비극도 아닌 어정쩡한 불편함에 갇혀버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장센도, ‘어쩔수가없다’에서는 기대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은 늘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웠고, 동시에 서사와 맞물리며 그의 세계관을 한층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의 미장센은 서사를 보완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화려하기만’ 했다. 강렬하고 화려한 화면이 인물과 서사를 가렸고, 영화 전체가 미장센에 잡아먹힌 듯한 느낌이 강했다.

화면뿐만 아니라 음악 역시 서사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가수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김창완의 ‘그래 걷자’ 등 대중가요를 삽입한 것은 인물의 상황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관객의 몰입을 깨뜨리는 불협화음으로 작용했다. 이 외에도 음악은 이야기의 리듬과 충돌하며, 장면 전환과 연출의 호흡까지 깨뜨렸다. 웃음을 유도하려던 장치가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면서, 영화는 블랙코미디 특유의 긴장감을 잃고 산만함에 갇혔다.

배우 캐스팅 역시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이병헌, 손예진,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 주연급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분명 ‘천만 영화’를 목표로 한 박찬욱 감독의 야심 찬 한 수였을 터다. 하지만 모두가 주연급 배우들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배우들 사이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밸런스가 흔들렸고, 캐릭터보다 배우들의 존재감이 먼저 다가왔다. 결국 제한적인 캐릭터의 분량과 존재감에 비해, 배우들이 지닌 압도적인 존재감이 더 크게 부각되며 영화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와 별개로 배우들의 연기력은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또 훌륭했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렇듯 미장센의 과잉, 산만한 리듬, 캐스팅의 역효과가 겹쳐지면서 영화가 내세운 블랙코미디의 칼날은 무뎌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속에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을 예리하게 녹여내며 사회적 메시지와 완성도를 동시에 인정받았다면, ‘어쩔수가없다’는 그 지점에서 한참 모자랐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 보다 인물을 비난하게 만드는 구조 속에서 영화는 웃음도 풍자도 아닌 불편만을 남겼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그간 마니아들의 열광을 얻는 동시에 대중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어쩔수가없다’는 대중성을 의식한 듯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소재나 배우 등 여러 요소들에서 진입장벽을 대폭 낮췄지만, 아이러니한 건 그렇다고 완벽하게 대중의 취향이나 눈높이로는 나아가지는 못했다. 동시에 마니아들이 기대해 온 특유의 색채와 밀도는 대폭 희석돼 결과적으로 ‘어쩔수가없다’는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지점에 머물렀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 기대감을 잔뜩 안고 봤지만, 영화는 결국 제목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아쉽다. ‘어쩔수가없다’, 정말 어쩌지.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영화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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