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것일수록 사랑에 기대어 산다
민들레 홀씨 한 줌 뜯어다 뿌린 화분
콩나물 음표들이 도레미로 나오더니
어미도 고향도 모르는 아이들이 커가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 답이 없어도
정녕 저들에겐 대답 못할 까닭이 없어
또렷한 초록무늬의 하트 상을 그리며
몸이 생각을 버리면 본색이 드러나고
호기심이 커질수록 그 눈빛이 곱다 했지
선홍색 종아리들이 관절 없이 크듯이
녀석들을 바라볼 땐 숨을 꾹 참아야 해
사유하지 말고 보인 것만 써내라는
저들의 이실직고가 아침 창에 새롭고
인간의 모든 삶에 그 조건을 물었을 때
쉼표 없는 떡잎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초록빛 상형문자에 답을 얹혀놓는다
저 작은 손뼉에도 우여곡절은 있을 거다
탑하나 올리는데 후들댔을 아랫도리며
아득한 별빛을 불러 두 손 높여 받듯이
떡잎 한 장에도 대구법을 지키는 하늘
비상을 준비하는 아기 새의 춤사위처럼
양 날개 어둠의 무게를 털어내고 있었지.
/2013년 고정국 詩
#시작노트
길가에 하얗게 씨방을 펴든 민들레 포기에서 그 씨앗만을 봉투에 담고 왔습니다. 그리고 베란다 한 뼘 크기의 화분에 뿌렸더니 계절과는 상관없이 옹기종기 떡잎들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화분의 고요가 키워내는 떡잎이며 종아리에 소리 없는 모든 것들이 조목조목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꽃으로 화할 유기화합물들이 이 식물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저들이 나를 향해 내뱉는 옹알이 비슷한 음성을 가감 없이 즉흥적으로 받아 적었던 것입니다. 일곱 수首의 장시조를 받아 적고 막 돌아서려는데, 그 중 가장 작은 아기떡잎이 단시조 한수를 전해주었습니다.
작은 것일수록
진실에 기대어 산다
연한 것일수록
사랑에 기대어 산다
화분의 아기떡잎이
젖니처럼 곱듯이
-「아기떡잎」 전문
"작은 것일수록 진실에 기대어 산다"는 것, 거기에다 "연한 것일수록 사랑에 기대어 산다"는 진술만으로도 오늘 이 민들레 아기떡잎들은 꽃보다도 더한 기쁨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