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경영진 논의도 감독…미국 보험부채 평가 핵심”

박성준 2025. 9. 2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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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IFRS17 계리감독 선진화 세미나
“회계는 시작일 뿐” 감독 무게중심 ‘계리’로
PBR은 숫자 아닌 책임…美 감독·평가 시사점
보고서 검토 한 번에 8개월…혀 내두를 디테일
국내 당국도 계리 감독 역량 강화에 집중
22일 오후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국제회계기준(IFRS17) 계리감독 선진화 세미나에서 엄성민 미국 뉴저지 보험감독당국(NJDOBI) 보험계리 최고책임자가 주제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계리 가정 수립은 고위 경영진과 이사회도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22일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국제회계기준(IFRS17) 계리감독 선진화 세미나에서 미국 뉴저지 보험감독당국(NJDOBI)의 엄성민 보험계리 최고책임자는 미국의 보험부채(PBR) 평가 제도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계리 가정이 단순한 계산이 아닌, 전사적 책임 구조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 감독당국은 단순히 계산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보험부채 가정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내부 검증은 어떻게 거쳤는지, 이사회 회의에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까지 확인한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계리감독 선진화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외부 검증과 감리체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PBR은 숫자가 아닌 책임의 문제”…미국式 계리감독 철학

엄 책임자는 이날 발표에서 미국의 보험부채 평가 제도(PBR)를 단순한 계산 규칙이 아닌 ‘책임 있는 의사결정 체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PBR은 보험사가 각자의 경험 통계와 자산 운용 전략에 기반해 계리 가정을 설정하고 책임준비금을 평가하는 구조”라며 “따라서 감독당국은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감독기관은 단순히 PBR 보고서만을 검토하지 않고, 광범위한 증거를 검토해 회사의 가치 평가 프로세스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구축한다. 예컨대 이들은 내부 감사 보고서, 외부 감사 보고서, 다양한 위원회 회의록과 자료, 위험 관리 문서를 모두 검토한다. 이를 통해 단순 수치에 그치지 않고 내부 모델의 구조, 가정 설정 근거, 외부 감사 결과, 리스크 검증 과정 등이 포함된다.

무엇보다 이사회와 고위 경영진이 해당 가정과 모델을 어떻게 논의했는지까지 들여다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PBR 보고서에는 이사회 회의록, 경영진 회의 의제, 주요 질의응답 내용 등이 포함되고, 이런 보고서를 하나 검토하는 데에만 최소 6개월에서 8개월이 걸린다고 엄 책임자는 말한다. 그는 “회사의 자율성과 책임이 전제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감독당국은 단순한 검토가 아니라 전반적인 거버넌스와 내부 통제 체계를 함께 평가한다”고 부연했다.

이런 구조는 단순히 회계 규칙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닌, 보험사 위험 인식을 비롯해 경영진의 개입과 내부 검증의 품질까지 모두 감독 범위 안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엄 책임자는 “단순한 공식이나 일괄된 기준이 아니라, 회사 고유의 리스크 특성과 판단을 존중하되, 그에 걸맞은 책임 구조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 미국식 PBR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발표에 나선 미국 4위 보험사 매스뮤추얼의 권선인 수석매니저는 미국 보험사들이 PBR 체계 아래에서 자산·부채관리(ALM)를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소개했다. 그는 “금리 환경 변화에 따라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갭을 지속해서 조정하고 있고, 1일 단위로도 재조정을 수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가 급격히 변할 경우 파생상품 등을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고, 이사회·내부 위원회를 통해 관련 사항을 논의한다”고 덧붙였다

노건엽 보험연구원 실장은 “IFRS17 도입 이후 회계 투명성은 어느 정도 확보됐지만, 여전히 계리적 가정과 할인율, 사업비 반영 기준 등에 있어 감독 기준이 정교하지 않다”며 “감독당국은 향후 계리감독을 체계적으로 고도화하고, 충분한 검토와 영향 분석을 거친 뒤 시행 시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제도를 설계할 때 업계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내부 시스템 변경 여력 등을 고려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실 맞춤형 계리감독 전환 중”…감독당국에 주어진 숙제
22일 오후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국제회계기준(IFRS17) 계리감독 선진화 세미나에서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금감원은 IFRS17 회계기준의 도입과 안착을 계기로 계리감독 체계 고도화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세훈 수석부원장은 이날 환영사를 통해 “한국은 IFRS17 시행 초기 혼선을 겪었지만, 가이드라인 개정과 보험개혁회의 등을 통해 주요 쟁점을 정리해왔다”며 “이제는 계리감독이 국제 신용평가사와 시장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금감원도 관련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제 발표 이후 토론자로 나선 이권홍 금감원 보험계리상품감독국장은 금감원이 현재 준비 중인 계리감독 선진화 로드맵에 대한 고민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처럼 계리 과정에 대한 운영보고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내 현실에 맞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며 “한 회사의 보고서를 심사하는 데 6개월에서 8개월 걸리는 미국의 감독 방식은 시사점은 크지만, 국내 제도에 맞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외부 검증 주체 활용에 대해 “금감원이 모든 것을 직접 들여다보기보다, 외부 검증 주체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감독 자원을 핵심 리스크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상품별 도입 시점을 달리하거나 유예 조치를 도입해 새 회계 기준 도입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는 방식도 상당히 의미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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