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커크 암살이 드러낸 미국 양극화의 민낯 [아침을 열며]
피로 얼룩진 미국의 암살 역사
과거와 다른 '커크 암살' 이후
미국, 공감·자제 사라질 우려

미국은 250년 남짓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지만, 피로 얼룩진 암살의 역사는 켤코 짧지 않다. 재임 중 암살당한 대통령만 네 명에 이르며, 미수 사건까지 포함하면 정치 테러의 빈도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미국의 정치 테러는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시기마다 되풀이됐는데, 1960~1970년대는 그 절정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미국은 소수 인종의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찬반으로 사회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존 F. 케네디 대통령, 마틴 루서 킹 목사,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잇따라 흉탄에 쓰러졌다. 조지 월러스 주지사는 총격에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한 달 사이 두 차례나 암살 시도를 겪었다.
이에 비해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정치 테러가 다소 잠잠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암살 미수가 있었지만, 이는 사회적 갈등보다는 미수범의 개인적 집착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했고, 국제적 위협이 감소하면서 국내 정치의 갈등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IT 산업의 성장과 세계화의 긍정적 효과가 맞물려 경제는 활기를 띠었고, 중산층의 확대와 함께 사회적 안정감도 커졌다. 민권운동도 법적·제도적 성과로 정착되었고,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논의 역시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며 거리의 충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인종·계층·이념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으며, 오랜 시간 잠복해 있었다. 이러한 갈등이 폭력적 형태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2010년대 들어 온라인 공간에서 점차 증폭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20년대에 들어서며 오프라인에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를 겨냥한 암살 시도가 두 차례 발생했고, 올해에는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관저 방화 사건과 멜리사 호트먼 민주당 의원 부부 총격 사망사건이 잇따랐다. 급기야 지난 10일, 보수 청년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찰리 커크가 정치 테러의 희생자가 되면서, 그 여파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확산된 정치적 극단주의가 이제는 물리적 폭력 사태로 번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며, 미국 사회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커크의 암살은 과거 미국 정치 테러와는 사회적 반응의 결이 확연히 다르다. 예전에는 주요 인물이 암살당하면 정치적 입장을 초월한 애도와 폭력에 대한 규탄이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미국 사회의 극단적 양극화로 인해, '공감의 붕괴'라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커크의 죽음을 "폭력화된 급진 좌타 탓"이라고 비난했고, 일부 보수 단체들은 "좌파에 대한 복수"를 외치며 시위를 조직하는 등 이번 사건을 정치적 결집의 계기로 삼고 있다. 반면에 일부 진보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커크의 죽음을 두고 "혐오가 혐오를 부른 결과"라며 공개적으로 조롱하거나 축하하는 분위기도 포착됐다. 공화당의 요청으로 의회에서 커크를 추모하는 묵념이 진행됐지만, 민주당 의원 중 절반 이상은 이에 참여하지 않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며 침묵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이 장면을 두고 "애도의 순간조차 정치적 전선이 되어버린 미국 의회의 민낯"이라 표현했다.
1968년 4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로버트 F. 케네디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유세 중이었고, 그 자리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소식을 접했다. 청중 대부분은 흑인이었고, 킹 목사의 죽음은 폭동으로 번질 수 있는 극도로 긴장된 상황이었다. 측근들은 유세를 중단하자고 했지만, 케네디는 연설을 강행하며 킹 목사의 암살을 청중에게 직접 전했다.
"우리는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킹 목사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평화를 위해 살다 갔습니다. 우리가 킹 목사를 기리려면, 증오와 복수가 아닌, 그가 믿었던 방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의 형 존 F. 케네디도 암살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그 연설 덕분에 그날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의 인간적 공감과 자제의 분위기는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런 미국을 우리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일까.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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