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김정은·트럼프’ 세 남자의 고차방정식 ‘외교 밀당’

변문우 기자 2025. 9. 22. 21:0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金, ‘비핵화 포기’ 조건으로 북·미 대화 가능성 높여…“트럼프에 좋은 추억”
트럼프도 ‘비핵화’ 명시 無…李대통령, ‘핵동결’ 대안 던지며 존재감 어필
‘손익 주판알’ 튕기는 3국…일각선 깜짝 ‘남·북·미 정상회담’ 열릴지 관심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한반도 정세를 놓고 이재명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빠르게 주판알을 튕기며 '밀당(밀고 당기는) 외교전'을 치르는 모습이다. 일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아직도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회동 가능성을 직접 높였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도 외신 인터뷰를 통해 '비핵화'보다 낮은 수위인 '핵동결'을 화두로 던지며 북미 외교 판에 직접 뛰어들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만수대의사당에서 지난 20~21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연설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조건부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구체적으로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직접 언급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첫 사례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미 '깜짝 회동' 가능성을 열어두는 취지로 발언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은 2019년 문재인 정부 시절 싱가포르와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1·2차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6년 만에 김 위원장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미국과의 훈풍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손익계산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달 초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첫 다자외교 데뷔 무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동북아 핵보유국으로서 위상을 보여준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음을 다시금 각인시키는 취지에서다.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과 대화 물꼬를 트는 것만으로 큰 수확이다. 특히 이번 경주 APEC을 계기로 양대 패권국인 '미·중 정상회담'도 윤곽이 드러난 상황에서 '북·미 정상회담' 대형 이벤트까지 더해질 경우 트럼프 리더십을 입증할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전면 비핵화' 키워드를 전제 조건으로 명시하지 않고 최대한 양측 대화를 성사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로이터와 인터뷰하는 이재명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李대통령 "완전한 비핵화 대신 현실적 목표도 대안"

이 같은 이해관계 속 경주 무대를 본진으로 둔 이 대통령 역시 비핵화 대신 '핵동결'을 임시방편 화두로 던지며 외교전에 가세하려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매년 15~20개의 핵무기를 생산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현 상태에서 멈추는 것에는 유익한 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 성과 없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그 목표를 이뤄낼 것이냐가 문제일 것"이라며 "일종의 잠정적 응급조치이자 실현 가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장기적 비핵화를 위해선 북한과 미국이 우선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핵동결' 카드가 이해 당사자들의 절충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 직접 끼어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한국과의 대화 가능성은 전면 차단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도 우리 정부와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설파하며 "우리는 한국과 마주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히 이질화됐을 뿐 아니라 완전히 상극인 두 실체의 통일이란 결국 하나가 없어지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재명 정부도 직접 거론해 "대한민국에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권과) 본질상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현 집권자의 이른바 '중단-축소-비핵화'라는 '3단계 비핵화론' 역시 우리의 무장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정부에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앞으로 국제 정세 흐름에 따라 어떤 '예상치 못한 그림'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았어도 공식 외교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다.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판을 형성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경주 APEC을 비롯한 외교 무대를 계기로 북한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 정상까지 한 자리에 마주한다면 '신(新)냉전' 상황에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장면이 될 전망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