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어 외환위기까지... 이 대통령의 한미 관세협상 '센 발언' 배경 있나
외신 택한 이유 "미국 겨냥 메시지" 해석
'트럼프발 관세전쟁 비판' 국제 여론 환기
가이드라인 제시해 관세협상 지렛대 확보

이재명 대통령이 연일 외신 인터뷰를 통해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한 고강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8일 공개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선 "(미국 요구 조건을 그대로 수용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 하더니, 22일 보도된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선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다.
외신을 적극 활용해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비판적인 국제사회를 향해 '미국 요구가 공정하지 않다'는 여론전을 벌인 것이다. 아울러 우리에게 트라우마와 같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거론하는 등 국내 여론 결집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내외 여론전을 펼쳐야 할 만큼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 협상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길에 오르기 전 공개된 로이터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를 현금으로 미국에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외환보유액의 약 84%에 달하는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출자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한국은 환율 급등에 따른 충격 완화를 위해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을 제안했지만, 미측이 비기축통화국인 한국과의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도 강조했다. 미국이 한국에 일본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지난 7월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한 일본과 다르다"며 "일본은 한국의 외환보유액 4,100억 달러의 두 배 이상을 보유 중이고 미국과 통화스와프도 체결 중"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3,044억 달러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대미 현금 투자 규모를 따지면, 한국이 일본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요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혈맹 간 합리성 믿는다"며 수위 조절
이 대통령은 한미 관세 협상 자체에 대해선 "이 불안정한 상황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고 했다. 현금 투자와 같은 방식은 최대한 방어하면서도 자동차 산업 등 국내 기업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 타결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유엔총회 기간 한미 정상회담이 불발된 만큼,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협상 타결 목표 시한으로 잡고 있다. 이 대통령이 협상 포기 의향에 대한 질문에 "혈맹 간에 최소한의 합리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국민 감정을 자극한 미 조지아주 한국 근로자 구금 사태도 언급했다. 미 이민당국의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에 우리 국민들이 분노했고,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다만 "이번 일이 한미 동맹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며 수위를 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근로자 체류 허용 조치를 평가하면서 "이번 단속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법 집행의 결과로 믿는다"고 했다. 같은 날 공개된 BBC 인터뷰에선 "대통령으로서 우리 국민이 겪은 가혹한 처우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미 관계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믿는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합의문 필요 없는 잘된 협상" 입장과 상반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외신 발언에 대해 "의도된 발언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외신을 메시지 창구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미국을 겨냥하면서 동시에 국내에도 엄중한 협상 상황을 정확히 알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 "합의문을 작성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된 협상"(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라고 평가했던 것과도 사뭇 달라진 태도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 정부 협상팀에도 힘을 실어주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그어줌으로써 정부 협상팀의 '국익 방어' 노력에 명분을 부여했다는 해석이다.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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