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시대, K-제작 노동자들은 쿠팡으로 떠났다
[토론회] K영상콘텐츠산업과 노동 진단...표준계약서 통해 사회보험 적용 확대부터 제작비 현실화까지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열풍으로 정부에서 연일 'K콘텐츠' 육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그 이면의 'K영상콘텐츠' 제작 노동자 위기를 직면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글로벌 OTT로 제작이 쏠리면서 그 밖의 제작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듦에 따라, 현장에선 기존에 쌓아왔던 근로표준계약서 작성, 근로시간 준수 등의 사항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같은 지적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엔딩크레딧,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전국영화산업노조, 민주당 이기헌·이용우 의원이 공동주최한 22일 'K영상콘텐츠산업 진단과 노동, K콘텐츠 강국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나왔다. 이날 발제를 맡은 권순택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제가 2~3년 소통해 온 한 드라마 스태프가 있는데, 만날 때마다 일이 없다고 말한다. 같이 일했던 친구들은 뭐하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일이 없어서 다 쿠팡에 가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며 “이 상황이 왜 비롯됐는가를 얘기해보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토론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방송시장 규모는 역성장 추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8004억 원 감소했는데 방송산업 매출 감소는 10년 만의 일이었다. 한국 드라마 제작 편수도 크게 줄었다. 하나의 방송 채널에서 '월화', '수목', '주말 혹은 금토', '아침 일일-저녁 일일'을 기준으로 편성해왔던 과거의 기준도 깨진 지 오래다.
현재 방송사에서 편성해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는 총 14편으로, SBS는 1편, MBC·JTBC는 2편의 드라마만 편성하고 있다. 2019년 9월 편성된 드라마가 총 24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하락세다. 영화산업 또한 다르지 않다. 안병호 전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2023년부터 급격하게 콘텐츠 제작 현장이 줄었다. 드라마를 늘 찍던 사람들이 6개월 이상씩 쉬었고, 고향으로 돌아가 전업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며 “나가면 당장 일자리가 없으니 하루 12시간이 넘어도, 주 52시간이 넘어도 참여할 수밖에 없고, 드라마 현장은 전보다 더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사무처장은 “K콘텐츠 제작 편수가 줄었다면, 콘텐츠 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글로벌 OTT로 재편된 미디어 환경에서 제작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2024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를 보면, '근로표준계약서 작성' 비율은 2022년 조사에 비해 22.7% 감소했다. '일반 근로계약서 작성' 역시 12.6% 줄었다.
반면 노동시간은 늘어났다. 1일 작업 시간은 전체 평균 11.8시간으로, 1일 8시간 근로기준을 봤을 때 3.8시간 초과했다.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협상력 또한 떨어졌고 무리한 요구도 거절하지 못하게 됐다는 현장 우려도 나왔다. 드라마 스태프들의 경험 또한 다르지 않다. 권 사무처장은 “OTT 드라마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OTT는 편성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방송사에서 줄어든 만큼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며 “그 인력들은 릴스, 쇼츠, 유튜브 등의 노동 감시의 사각지대로 더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사무처장은 정부가 K영상콘텐츠 제작이 실제로 얼마나 위축되고 있는지 조사하고 노동 현장에서 떠나고 있는 노동자들을 파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노동자성마저 인정받지 못해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방송 비정규직에 대한 '노동자성' 논쟁을 중단하고, 표준계약서 작성을 통해 사회보험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권 처장은 “이재명 정부가 공약했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터 권리 보장 강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보호대상의 명확화와 적용 범위 확대 등을 왜곡없이 지켜야 한다”며 “정부는 '영상콘텐츠 산업적 위기'를 중심으로 제작사, 노동자를 다 포괄하는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안병호 전 위원장은 “결국 방송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비슷한 조건 하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단단하게 만들어져야지만 스태프들도 권리의 보장에서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부분의 일자리에서 근로감독이 명확히 이뤄져야 근로계약부터 제대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콘텐츠 산업을 이끌어갈 고급 인력들이 10년, 20년 일하고 비숙련 노동으로 다 사라지고 있다”며 “근로계약서와 표준보수지침, 노사정위원회 등에 대한 법적 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국 콘텐츠 산업은 몇 군데 제작사 빼놓고는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제작비가 현실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사무총장은 “플랫폼이나 방송사로부터 받는 제작비가 총액만 정해지고 세부 항목은 불투명하게 진행되다보니 실제 현장의 처우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며 “제작비 항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적정 제작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태프 인건비도 연차와 경력에 따라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며 “경력별 인건비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제작사도 예산 책정에서 분명한 기준을 가질 수 있고 스태프도 공정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내부 스태프 계약 관계와 노동 환경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종임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강사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 시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데, 내부적인 계약 관계 관련 정보는 잘 공개되지 않고 있다. 스태프들의 계약 관계도 공개될 필요가 있고 관련 논의를 넓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배우를 포함해 한국 스태프가 많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계약 등에 대한 개입 혹은 제한이 어느정도 이뤄지고 있는지 정부 주도 하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엔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강은영 문체부 방송영상광고과 과장은 “표준계약서 개정, 표준계약서 사용 기업에 대한 지원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며 “종사자 처우를 절대 가볍게 보지 않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인재 양성 사업을 통해 이탈되지 않게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배인 고용노동부 미조직근로자지원과 사무관은 “근로기준법상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근로자 추정제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근로자들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게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며 “직업이나 계약의 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권리 보장 기본법'도 올해 발의를 목표로 전문가 회의를 추진하고 있다. 오늘 말씀해주신 다양한 내용들을 법안에서 더 촘촘히 반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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