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주5일 일해도 ‘4일제 국가’의 절반… 韓 노동생산성 민낯
OECD 전체 36개국 중 22위
임금 4% ↑… 생산성 1.7% ‘찔끔’
노동집약·중소기업 타격 커

주 4.5일 근무제 도입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의 총파업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재계는 금융계를 시작으로 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까지 근무시간 단축 요구가 거세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까지 주4.5일제를 본격화 하겠다고 나서면서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노사 자율로 이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기업들은 이 대통령의 언급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재계에서는 노동생산성을 먼저 끌어올리지 않는 한 섣부른 주 4.5일제 도입은 경제 성장 동력만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중하위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와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22일 공동 발표한 ‘임금과 노동생산성 추이,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생산성은 6만5000달러로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2위에 머물렀다. 노동생산성은 취업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계산했다.
SGI 등은 2018년 이후 우리나라의 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을 크게 앞서면서 노동생산성을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7년 동안에는 연간 임금(명목)과 노동생산성(명목) 증가율이 각각 연평균 3.2% 늘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8~2023년 기간엔 임금이 연평균 4.0% 오른 데 비해, 노동생산성은 1.7% 상승하는데 그쳤다.
그 결과 국내 노동생산성은 주 4일제를 도입한 벨기에(12만5000달러)·아이슬란드(14만4000달러)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마찬가지로 주 4일제를 시범 운영 중인 프랑스(9만9000달러)·독일(9만9000달러)·영국(10만1000달러)보다도 낮다.
경기침체에 비해 가파른 임금 상승세가 노동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박 교수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초과수당 증가, 통상임금 판결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상승해 온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수준을 유지한 채 주 4.5제가 도입될 경우 국내 노동생산성을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대미 관세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수출 경쟁력을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고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방안으로 “첨단산업에 대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 등 근로시간의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며 “직무·성과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취업규칙 변경절차 개선 등 인력 활용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중소·중견기업 도약을 위한 연구개발 인센티브 확대, 불합리한 규제 개선, 맞춤형 금융·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천구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속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경기 둔화기에는 생산성과 임금간 격차가 확대돼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회복기에도 인건비 증가로 경영 애로가 가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 대비 낮고 향상 속도마저 정체된 현실을 고려할 때 기업 경영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국경영자총협회 역시 우리나라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44.4 달러로 OECD 평균인 56.5달러에 못 미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77.9달러, 독일은 68.1달러, 프랑스 65.8달러, 영국 60.1달러, 일본은 49.1달러였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제조 대기업 임원은 “주 4.5일제를 도입하면 당연히 생산성이 떨어질텐데, 그 만큼 임금도 삭감하겠다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는가”라며 “이 와중에 노사간 단체협상(단협)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1호 기업’이 되는데 누가 이 멍에를 쓰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한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은 임금·단체협상을 놓고 오는 26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주 4.5일제 전면 도입과 함께 임금 5% 인상, 정년 연장, 신규 채용 확대 등을 제시했다. 사실상 임금은 증가하되, 근무시간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4.5일제를 도입하는 대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창구 영업시간을 오전 9시30분에서 오후 4시30분으로 지금보다 30분 늦추면 고객 불편이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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