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2025 [더 나은 경제, SDGs]

두 정상은 이번 APEC을 무대로 공식 또는 비공식 담판을 지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통상·기술 규제·반도체·안보 문제 등이 협상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시진핑 회담 가능성이 주목받는 무대가 될 2025 APEC 정상회의는 내달 31일 오전 9시부터 경부 경주에서 본회의(AELM)가 열릴 예정이다.
이번 APEC 2025에서는 경주 외에도 제주(제2고위관리 회의 등), 인천(디지털 장관 회의·여성경제포럼 등), 부산(해양·에너지 장관 회의) 등지에서 다양한 부대회의들이 동시다발로 열린다. 공식 슬로건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 연결, 혁신, 번영(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 Connect, Innovate, Prosper)이다. 연결·혁신·번영을 축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구축이 주제인 셈이다.
APEC 사무국도 올해 의제를 “푸트라자야 비전(Putrajaya Vision) 2040의 세 축-연결·혁신·번영”에 맞춰 정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푸트라자야 비전은 2020년 11월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성명으로, 현재 APEC의 최상위 장기 목표이다. 한국이 제시한 3대 우선 과제와 관련해 디지털 혁신·포용성·지속가능성 중심의 성장을 강조하면서 푸트라자야 비전에 연동시켰다.
APEC은 공식적으로는 각 국가수반이 아닌 21개 경제권 회원의 지도자가 그 중심이다. 다만 대만은 관례상 장관급 특사가 참석하고, 홍콩은 행정장관이 나서고, 유럽연합(EU) 같은 역외 조직은 참여 대상이 아니다. APEC은 자발적·비구속·콘센서스를 원칙으로 하므로 주요 20개국(G20)과 달리 ‘구속력 있는 합의’보다 공동 선언·원칙 채택과 정책 협력 프레임 설정에 방점을 둔다.
APEC의 의장국은 해마다 회원국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맡는 구조로 선정된다. 한국은 2005년 부산 대회 후 정확히 20년 만에 다시 의장국을 맡아 연중 회의들을 주재하게 되었다. 의장국은 의제 설정 주도권, 국내 산업·지역 홍보, 양자외교 레버리지 확대라는 세 가지 전략 효과를 동시 확보하게 된다.
한국 정부는 준비사무국을 설치하고, 지난 7월부터 20개 회원 대표단 120여명이 참여한 현지 사전답사(Advance Visit)를 통해 경주 정상회의 및 연계행사의 안전·동선·프로토콜을 점검했다. 연중 각종 장관 회의와 포럼도 순차적으로 치르면서 구체적인 성과(합의문·이니셔티브)를 축적 중이다. 예컨대 지난 5일 제주에 열린 중소기업(SME) 장관 회의에서는 ‘APEC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를 포함한 ‘제주 이니셔티브’가 채택돼 스타트업·벤처 생태계 연결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서울에서는 15∼16일 보건·경제 고위급회의(HLMHE)가 개최돼 고령화·청년 정신건강·디지털 치료제 등 보건경제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앞으로 정상회의 주간에는 통상 △CSOM(각료급 회의 전 최종 고위관리 회의) △AMM(외교·통상 장관 회의) △AELM(정상회의) 3단계가 연쇄적으로 열리는데, 이 기간 최고경영자(CEO) 서밋, 기업자문위원회(ABAC) 대화, 분야별 장관 회의·포럼도 동시다발로 열린다.
한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다양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개최지 다변화(경주·제주·인천·부산)로 지역균형형 MICE(회의·관광·컨벤션·전시) 전략을 구사하는 한편 의장국으로서 디지털·혁신·포용이란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연중 다수의 장관 회의에서 공동 성명·실행계획을 축적하고, 스타트업·바이오헬스·디지털 무역·여성경제·식량 안보 등 부문별로 협력 성과를 쌓는다는 전략이다.
경제적으로는 △CEO 서밋·ABAC 연계 투자 유치, 공급망 파트너십 구축 △지역산업(관광·K벤처·에너지·해양 등) 글로벌 네트워킹 확대 △회원 21개 경제권 대상 정책 세일즈를 추진할 예정이다.
APEC은 1989년 출범한 지역경제 포럼으로, 아시아태평양의 상호의존 심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주도로 첫 정상회의가 시애틀 인근 블레이크 아일랜드에서 개최되면서 정상급 협의가 정례화됐다. APEC은 자발적·비구속·콘센서스 원칙을 핵심 운영철학으로 삼고, 무역·투자의 자유화와 경제통합 촉진을 목표로 한다.
다른 정상회의와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G20이 거시금융 안정·글로벌 거버넌스 전반을 다루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안보 이슈까지 폭넓게 포괄하는 데 비해 APEC은 경제협력에 특화된 데다 민·관 연계(CEO 서밋·ABAC)의 제도화가 특징이다. 합의는 공동 선언·원칙·실행계획의 형태로 축적되며, 회원 각국의 자발적 이행에 의존한다.
이번 APEC 2025는 단순한 정상회의 개최를 넘어 한국이 글로벌 외교·경제 무대에서 의제 주도국으로 위상을 재확립할 기회다. APEC은 지난 30여년간 보고르(인도네시아) 목표와 푸트라자야 비전으로 이어지는 개방·혁신·포용의 궤적을 그려왔는데, 이번 회의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강제 대신 설득으로 합의하게 된다면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주도적인 의제 설정 하에 공급망·기술 규제·반도체 시대 질서를 재편하는 핵심 사안이 논의될 가능성도 높다.
이와 함께 CEO 서밋·ABAC 대화, 장관급 회의 라운드가 연쇄적으로 개최되며, 한국 기업·기관은 맞춤형 투자 유치·공동 연구·표준화 협력을 설계할 수 있다. 제주의 SME 장관 회의 성과(제주 이니셔티브)처럼 각 의제에서 실행을 기대할 수 있는 로드맵을 남기는 것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특히 CEO 서밋에서는 오픈에이아이(OpenAI), 엔비디아(NVIDIA)와 같은 글로벌 기술 선도 기업과 한국 대기업 간의 협업 구도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고, 이것이 정상 선언 후 실제 경제적 실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의 염원을 담아야 할 때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금융투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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