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첨단’서 LGBTQ 사목 앞장 신부로···‘성소수자의 강력한 옹호자’ 제임스 마틴

김종목 기자 2025. 9. 22. 18: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와튼 스쿨 졸업, GE행···금융 자회사서도 일해
‘엄청나게 잘 벌던 직장인’서 종교의 길로 귀의
올랜도 총기 난사 계기로 성소수자 사목 시작
프란치스코 이어 레오 14세 교황의 신임 받아

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소수자(LGBTQ) 포용과 환대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전한 대상인 제임스 마틴 신부는 가톨릭교회에서 성소수자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성소수자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뉴스 사이트 ‘아웃리치(Outreach, 손을 내밀다는 뜻)’를 설립했다. 가톨릭 주간지 <아메리카> 기획, 편집 위원으로도 오래 일했다.

신부님은 성소수자의 강력한 옹호자

마틴 신부는 1960년 12월 2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플리머스 미팅에서 태어났다. 1982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 “탐욕의 시대를 향해 질주”하던 제너럴 일렉트릭에 들어갔다. 금융 부문 자회사인 제너럴 일렉트릭 신용(GE캐피털 전신)에서도 근무했다.

레오 14세 교황(왼쪽)과 제임스 마틴 신부. 마틴 신부 페이스북

마틴 신부는 “(돈을) 엄청나게” 잘 벌던 직장인이었다. “부유하고 젊은(그리고 풀이 죽은) 청년”이었다. “빛바랜 송장과 재무보고서에 파묻힌” 삶을 회의했다. “아무 의미 없이 바쁘게만 흘러가던 직장 생활”에 “비참하다는 것과 떠나고 싶다는 것뿐”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스물여섯 살 때 공영 방 PBS에서 우연히 본 게 트라피스트회 수도사이자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1915~1968)의 삶과 종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머튼 : 영상 자서전>이다. 머튼은 신앙을 지닌 사람과 다른 신앙을 지닌 사람, 신앙이 없는 사람 모두에게 열린 종교인이었다.

마틴 신부는 머튼과 종교에 관한 책을 찾아 읽다가 사제의 길을 고민한다. 스물여덟 살 때인 1988년 한 달 생활비 70달러를 주던 예수회에 들어갔다. 서품 준비 과정 중 시카고 로욜라 대학교, 웨스턴 예수회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992년에서 1994년까지 만 2년 동안. 예수회 난민 봉사회 소속으로 케냐에서 난민들과 함께 지냈다. “도움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곳에 달려가라”고 했던, 예수회 창설자 성 이냐시오 데로욜라의 가르침에 따라 1980년 당시 페드로 아루페 예수회 총장이 만든 단체다.

사제 수련기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병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원에서도 일했다. 미국 시카고에서 길거리 갱 단원들을 선도했다. 1999년 6월에 사제 서품을 받고도 빈민 등을 위한 사목을 벌였다. 그는 “사람들이 왜 가난한지를 묻는 게 사회 정의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라고 하셨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이 왜 가난한지를 묻는 게 사회 정의

마틴 신부가 성소수자 사목에 본격적으로 나선 계기는 2016년 플로리다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클럽 펄스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다. 범인 오마르 마틴이 쏜 총에 49명이 사망했다.

마틴 신부는 당시 “마땅히 있어야 했지만 끝내 들리지 않았던 어떤 소리에 마음이 쓰였다”고 한다. 미국의 수백만 명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 모든 성소수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250여 명의 주교 대부분이 침묵한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주교 몇 명만이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LGBT)라는 표현을 쓰며 성소수자 공동체를 지지하고, 동성애 혐오를 경고했다.

마틴 신부는 교회 여러 지도자가 성소수자나 동성애자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그 사건을 언급한 일이 문제라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이 공동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본보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 심지어는 사회에서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까지도 알아보시고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분은 특히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마틴 신부는 “특히 주변으로 밀려났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길”이라고 했다.

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를 연결하는 다리 놓기

마틴 신부는 이후 성소수자 가톨릭 신도를 위한 사목에 들어간다. 그들을 대변하던 단체 뉴 웨이즈 미니스트리로부터 ‘‘빌딩 어 브리지’ 상을 받는다. 상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제도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를 이어주는 ‘양방향 다리’를 구상한다. “교회의 어느 한 부분이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복음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과 “성소수자 공동체와 제도교회 사이에 엄청난 단절이 생겨났고, 이제 이 단절을 연결해줄 다리를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과 같은 제목의 책을 교회 정식 출판 허가를 받아 냈다. 한국에도 번역본 <다리 놓기>(심종혁 옮김, 성서와함께)가 나와 있다.

부제는 ‘가톨릭교회와 LGBT 공동체가 존중, 연민, 배려의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마틴 신부는 “교회는 상호 존중과 공감, 민감함이라는 덕을 체화할 때 가장 훌륭하게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함께 겪다’ 또는 ‘함께 고통을 겪다’라는 어원 뜻을 지닌 ‘공감(compassion, 그리스어 paschó 어원)’을 소개하며 “제도교회가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을 존중할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공감은 호명이기도 하다. 마틴 신부는 ‘동성을 향해 끌리는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 같은 표현을 경계했다. 그는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단체를 그들이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당사자들이 선택한 호칭으로 불러주는 것이 바로 존중의 표시”라고 했다.

공감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경청’이다. 경청은 ‘민감함(sensitivity)’과 이어진다. “‘타인의 느낌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만나고’, ‘동반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도 연결됩니다.”

공감, 경청, 호명, 민감함

마틴 신부는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만난 일도 <다리 놓기>에서 전한다. 성적 지향성을 ‘본래 문란하다’라고 정의하는 등의 일을 두고 이 어머니는 “열네 살 아이에게 그런 표현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람들이 도대체 알기나 할까요? 그런 말이 그 아이를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라고 했다. 마틴 신부는 이렇게 썼다. “민감함은 바로 이런 영향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민감함입니다.”

제임스 마틴 신부가 2019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프라이드 행진 뒤 페이스븍에 ‘LGBT 신도와 친구들’이란 이름으로 올린 사진들. 제임스 마틴 신부 페이스북

마틴 신부는 이 책에서 10대 성소수자들의 자살 예방을 위한 비영리단체 트레버 프로젝트의 통계도 인용한다. 즉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젊은이의 자살 시도율은 평균보다 5배나 더 높고, 가족으로부터 심하게 배척당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젊은이들이 그렇지 않은 성소수자들보다 무려 8.4배나 많이 자살 시도를 했다는 내용 등이다. 마틴 신부는 이 통계를 두고 “곧 ‘생명의 문제’”라고 했다.

책은 “대화와 기도,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둔 사목 활동을 향한 초대”다. 이런 사목의 대표적 인물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이가 자신의 성적 성향과 관계없이 그 존엄을 존중받고 사려 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마틴 신부도 거듭 전한다.

모두, 모두, 모두를 위한 교회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마틴 신부를 신임했다. 재임 12년 동안 여러 차례 만났다. 마틴 신부를 교황청 공보부 자문위원 등으로 임명했다. 레오 14세도 지난 1일 마틴 신부를 만나 성소수자 사목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마틴 신부는 2일 아웃리치에 올린 글에서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열림과 환대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제게 전했다. (성소수자 사목의) 연속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고 했다. 마틴 신부는 “레오 교황은 자신의 메시지가 더 경청하고, 환대하며, 포용하는 교회가 되려면 LGBTQ 신자를 포함해 다양한 삶의 배경을 지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공동합의성’(synodality)과도 이어진다고 여긴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하며 여러 차례 말한 “todos, todos, todos(스페인어로 모두, 모두, 모두)”라는 표현도 레오 14세 교황이 인용했다고 마틴 신부가 전했다.

제임스 마틴 신부가 성소수자를 상징한 무지개를 배경으로 ‘LGBT 사목에 관한 5가지 공통 질문’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예수회 리뷰 유튜브

마틴 신부는 이날 교황에게 교회가 LGBTQ를 환대하는 5단계 방법도 제안했다. <다리 놓기>와도 이어지는 내용이다. 1. LGBTQ 사람들이 교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2. ‘공동합의성’의 일환으로 교회 모든 부문에서 목소리 ‘경청’하기 3. LGBTQ 신자들을 위해 마련한 사목 돌봄 프로그램으로 ‘환대’하기 4. 본당과 다양한 사역에 ‘함께’하기, 5. 폭력, 괴롭힘, 괴로운 상황이 발생할 때 교회가 나서서 ‘지지·보호’하기다.


☞ 마틴 신부 만난 레오 14세 “성소수자 옹호 활동 이어가겠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021609021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