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유세 도입' 놓고 세계 5위 부호와 경제학자 간 정면충돌
"연구 정당성에 대한 공격"

프랑스의 긴축재정을 둘러싼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급부상한 부유세, 일명 ‘주크만세’ 도입을 놓고 이를 주도한 경제학자와 유럽 최대 부호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프랑스 유명 패션 브랜드인 루이뷔통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욕구를 명확히 표현한 것”이라고 직격하자, ‘주크만세’를 만든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이 “억만장자들이 다른 시민들과 동일한 비율로 공공지출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아르노 회장은 21일(현지시간) 영국의 ‘더 선데이 타임스’에 실린 성명서에서 주크만세를 주도해 만든 주크만 파리경제학교(PSE) 교수를 “극좌 활동가”라고 평가하며 “사이비 학문 역량을 동원해 자유경제 체제를 해체하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자신을 “프랑스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개인이자 가장 많은 법인세를 내는 기업인 중 한 명”이라고 강조하며 “부유세 논의는 단순 재정 문제를 넘어 프랑스 경제를 파괴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주장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의 순자산은 지난 19일 기준 1,690억 달러(약 235조4,000억 원)로 추정된다. 지난 4월 포브스 집계 기준 세계 5위이자 유럽 최대 부자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정부의 예산 삭감 계획과 공공서비스 축소, 세출 절감 등의 긴축재정 조치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노동자와 공공부문 종사자, 노조 등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더 부유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 부담을 더 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육, 의료 등 공공서비스 지출을 삭감하는 대신 부유세를 도입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사회당 등 좌파 야권에서는 초고액 부유층의 자산 중 1억 유로(약 1,634억8,000만 원) 초과분에 대해 2%의 재산세를 매기는,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부유세는 설계자인 주크만 교수의 이름을 따서 '주크만세'라고도 불린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프랑스 정부는 매년 1,800가구로부터 연간 200억 유로(약 33조 원)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긴축재정의 일환으로 ‘공휴일 이틀제 폐지’를 내걸었던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물러나고 수립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내각은 좌파 야권의 협조를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부유세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소속된 현 집권당인 르네상스도 부유세를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노 회장의 저격에 주크만 교수는 엑스(X)에 올린 글에서 “나를 겨냥한 당신의 발언은 근거가 없다”며 “나는 어떤 운동이나 정당을 위해 활동해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자유로운 연구의 정당성을 공격하고 있다”며 “점점 더 많은 국가에서 학문의 자유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세계 최대 부자 중 한 사람의 이런 발언은 매우 불쾌하다"고 맞받았다. 주크만 교수는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공공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제자로도 유명하다. 피케티가 그의 박사논문을 지도했다.
베를린=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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