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만찬 장소, 국립경주박물관서 라한호텔로 변경…지역사회 논란
신라 역사성 살린 대안 공간 아쉬움, 경주 정체성 반영 부족 비판 확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공식 만찬장이 국립경주박물관 신축 건물에서 경주 라한호텔 대연회장으로 변경됐다. 행사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이뤄진 장소 변경에 대해 행사 준비 과정의 현실성과 경주의 정체성 반영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19일,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를 통해 "보다 많은 인사가 초청될 수 있도록" 만찬장을 박물관에서 호텔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박물관 중정에 마련된 신축 건물은 수용 인원이 제한되고, 비상시 대피나 동선 관리 등의 측면에서 제약이 있었다는 지적이 내부적으로 꾸준히 제기돼왔다.
또한 건물 구조상 화장실 등 부대시설 접근이 떨어지고, 날씨에 따라 우산을 쓰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어 외빈 의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만찬장으로 계획됐던 국립경주박물관 중정 내 신축 건물은 실내외 구분이 모호하고 외부 조망이 부족해, 경주의 고유한 역사문화적 이미지를 체감하기엔 다소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행사 준비 과정에서 일부 제기돼왔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신축 박물관 공간은 현대적이긴 하나 경주의 고유한 색채를 드러내기엔 상징성이 부족했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신라 천년'의 역사성을 강조해온 APEC 개최 취지와 비교하면, 장소 선정의 기획 방향에 일관성이 부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사회 일각에선 장소 변경보다 오히려 당초 장소 선정 자체가 적절했는지를 되짚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주에는 실제로 신라 시대에 외빈 접대를 했던 동궁과 월지나, 전통 건축물과 야경이 뛰어난 월정교 등 역사성과 시각적 상징성을 갖춘 장소들이 존재한다.
이들 장소는 관광지로 활용 중이지만, 야외 조명 시설과 연계하면 충분히 국제행사에 맞는 연출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물론 보존 상태, 접근성, 경호 요건 등을 감안할 경우 기술적·행정적 제약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PEC 정상회의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개최 도시의 역사·문화적 위상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경주는 통상 '신라 천년의 수도'로 불리며, 고도(古都) 브랜드를 가진 대표 도시다.
그러나 이번 장소 변경으로 인해 "정작 경주의 정체성이 행사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채, 행사 운영의 효율성만 고려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지역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다. 라한호텔은 경주의 대표 호텔 중 하나지만, 실내 연회장이라는 특성상 지역 문화적 상징성이 부각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행사 개최 시점이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의 장소 변경은 경호, 의전, 동선, 식음료 준비 등 실무 운영 전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국제정상이 참석하는 만찬인 만큼 경호와 의전의 세밀한 조율이 필요하며, 이로 인한 준비 시간 부족은 일부 참가국에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변경된 장소에서의 만찬 준비에 문제가 없도록 일정 조정을 마쳤다"며, 각국 대표단에 관련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국립경주박물관 신축 건물은 APEC CEO 서밋과 연계한 네트워킹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행사 기간 기업인과 일부 정상 간 교류 장소로 이용되며, 행사 자체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CEO 서밋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되는 일정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 미디어를 통한 도시 이미지 확산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장소 변경 논란은 단순한 실무상의 조정이 아닌, 국제행사 유치 과정에서 장소 선정 기준, 지역 정체성 반영 방식, 운영 실효성 간의 균형이 충분히 고려됐는지를 되묻게 하고 있다.
경주는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13년 만에 미중 정상 등 주요국 정상이 동시 방문하는 국제무대가 마련된 도시다.
이를 통해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지역 문화 콘텐츠를 세계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향후에도 반복될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