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위대한 경지, 들국화 40주년…“1년 뒤 봅시다”

이정국 기자 2025. 9. 2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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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에서 말총머리를 한 백발의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하얀 칠판 앞에 섰다.

들국화는 1985년 9월10일 발표한 데뷔 음반 '들국화'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이정표가 됐다.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선정 사유에는 "들국화 1집은 한국 대중음악이 도달한 가장 위대한 경지로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왔다"는 문장이 적혔다.

"1년 뒤에 봅시다." 그 한마디는 40주년을 맞은 들국화의 새 시작을 말하는 약속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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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돌 콘서트 ‘마지막 울림’ 현장
밴드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이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들국화 전인권 40주년 콘서트―마지막 울림’에서 열창하고 있다. 드림어스컴퍼니 제공

무대 뒤에서 말총머리를 한 백발의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 나와 하얀 칠판 앞에 섰다. 그는 펜을 들어 조심스럽게 이름을 적었다. ‘전인권’. 이어 계속 이름을 써내려 갔다. ‘허성욱, 주찬권, 조덕환…’, 40년 전 함께 첫 음반을 만들었으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이들이다. 별도의 기념사도, 추모도, 화려한 장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들국화 40년의 무게와 부재의 공백은 충분히 전해졌다.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린 ‘들국화 전인권 40주년 콘서트―마지막 울림’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전날에 이은 둘째 날 공연이었다.

들국화는 1985년 9월10일 발표한 데뷔 음반 ‘들국화’로 한국 대중음악사의 이정표가 됐다.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 ‘매일 그대와’, ‘세계로 가는 기차’,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로 이어지는 트랙은 포크의 체온과 록의 추진력, 블루스의 서늘함을 한장에 응축했다. 무엇보다 전인권의 포효와 최성원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교차하며 밴드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전자가 거친 울분으로 청춘을 일깨웠다면, 후자는 잔잔한 위로로 삶을 붙들었다. 이 상반된 축이 동시에 존재했기에 들국화는 세대를 넘어선 울림을 가질 수 있었다.

들국화의 전인권(왼쪽)과 최성원. 을유문화사 제공

들국화는 당시 텔레비전 방송 중심의 가요계에서 이례적으로 공연과 음반을 통해 성장했다. 1985년 겨울부터 반년 가까이 이어진 장기 공연은 들국화를 ‘무대의 밴드’로 각인시켰고, 청중은 ‘행진’의 박동을 거리의 리듬처럼 받아들였다. 군사정권 하에 검열과 제약이 일상이던 시대, 들국화의 노래는 청춘의 항변이자 희망을 바라는 기도가 됐다.

들국화 데뷔 음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등에서 여러 차례 1위에 올랐다. 2021년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선정 사유에는 “들국화 1집은 한국 대중음악이 도달한 가장 위대한 경지로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왔다”는 문장이 적혔다. 단순한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형으로 호명되는 고전이라는 뜻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희윤은 말했다. “인디펜던트의 태도, 프로페셔널한 음악, 쉽사리 섞이기 힘든 두 요소를 마그마처럼 녹여 활화산처럼 뿜어냈던 밴드. 여기에 비범한 선율, 정서, 스펙트럼까지 담아 피워낸, 한국 대중음악사의 선구자적 그룹. 심지어 그 분출의 시점은 한국 인디 음악이나 케이(K)팝이 태어나기 무려 10년 전이었다.”

1985년에 나온 들국화 1집 앨범 ‘들국화’ 표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인권(보컬), 조덕환(기타), 최성원(베이스), 허성욱(건반).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40년은 늘 평탄하지 않았다. 키보디스트 허성욱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드러머 주찬권은 2013년, 기타리스트 조덕환은 2016년 세상을 떠났다. 잇따른 상실에도 남은 이들은 노래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들국화의 이름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로 되살아났다.

특히 2004년 전인권 솔로 4집 수록곡 ‘걱정말아요 그대’는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재발견되며 전인권과 들국화의 부활을 알렸다. 가수 이적이 부른 커버 버전이 차트를 석권했지만, 원곡의 진정성은 전인권의 목소리에 있었다.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라는 노랫말은 세대를 초월한 언어가 됐다.

밴드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이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들국화 전인권 40주년 콘서트―마지막 울림’에서 열창하고 있다. 드림어스컴퍼니 제공

공연장을 찾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은 ‘행진’과 ‘걱정말아요 그대’를 목청껏 ‘떼창’했다. ‘돌고 돌고 돌고’에선 객석 앞줄부터 일어나 몸을 흔들었고, 관객 전체가 파도처럼 움직였다. 전인권이 두 눈을 질끈 감고 마이크를 움켜쥘 때, 관객의 함성은 그 포효와 한 덩어리가 되었다.

앙코르 마지막 곡은 들국화 2집 앨범에 파격적 편곡으로 실려 화제가 됐던 건전가요 ‘우리의 소원’이었다.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노랫말은 단순히 민족적 염원만이 아니라, 떠난 동료들에 대한 추모와 관객 각자의 삶에 대한 위로로 겹쳐졌다. 객석은 합창으로 화답했다.

밴드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이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들국화 전인권 40주년 콘서트―마지막 울림’에서 열창하고 있다. 드림어스컴퍼니 제공

공연 말미에 전인권은 마이크를 내려놓으며 짧게 말했다. “1년 뒤에 봅시다.” 그 한마디는 40주년을 맞은 들국화의 새 시작을 말하는 약속처럼 들렸다. 들국화의 노래는 그렇게 무대를 넘어, ‘마지막 울림’이 아닌 다시 시작하는 울림이 됐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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