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의 마켓잠망경 <65>] 노란 봉투법은 '국가 자본주의' 전환 신호탄… 수혜주 주목해야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2025. 9. 2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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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 봉투법이 재석 186인, 찬성 183인, 반대 3인, 기권 0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 뉴스1

8월 24일 노란 봉투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투자자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입법기관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법의 본질이 노동권 강화를 넘어 국내외 경제구조 변화의 서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탈세계화와 대규모 정부 개입 여파로 글로벌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가운데 우리 정부 역시 산업과 자본 그리고 노동까지 모두 아우르며 개입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노란 봉투법 국회 통과는 우리나라가 국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변화의 한 단면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국가 자본주의란 투자와 자원 배분, 자본 투입, 산업 성장, 고용 등을 시장 중심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를 말한다.

따라서 이 법이 증시에 미칠 단기적 충격보다 향후 산업구조와 투자 전략을 재편하는 근본적 변수로 해석하고 미리 대처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속에서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유럽까지도 이미 국가 자본주의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 국부 펀드 등을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 인공지능(AI) 산업에 국가가 직접 지분 투자에 나섰다. 중국도 CIC(국가외환관리국) 같은 국부 펀드를 중심으로 반도체, 전기차, 로봇, 원자재 공급망을 직접 관리하며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유럽 또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통해 친환경 산업 공급망을 직접 구축한다고 한다.

엄여진 -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전 신영증권 제약·바이오 애널리스트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정부는 이미 반도체, 이차전지, AI, 로봇 등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세액공제, 보조금, 인프라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지출 정책은 이미 파격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2029년 5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미 재정지출을 확대해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을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노란 봉투법 역시 이 같은 국가 자본주의 맥락에서 해석한다면, 기업의 원청 책임 강화를 통해 하청 구조를 투명화하고 노동시장 질서를 재편하는 노력이 노동권 보호를 넘어 장기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강화를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투자, 노동 혁신 위한 통합적 접근 필요

좋은 취지에도 문제는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업투자와 노동시장 개편을 병행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에 부합한다 해도 한국적인 특수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강성 노조와 정규직 중심 노동시장 구조, 급격한 저출산, 높은 청년 실업률이라는 복합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기에, 단순한 재정 확대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결국 정부는 전략산업 투자와 노동시장 혁신을 동시에 달성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국내 고용시장은 전통적으로 유연성이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정규직 해고가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이며 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도 노동자 보호가 우선시된다. 이에 더해 노란 봉투법은 원청 기업의 하청 노동자 집단 교섭 의무를 명시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며, 교섭 범위를 경영 전반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기업 경영 자율성 제한은 피할 수 없고 정부가 더 강력하게 고용 시장에 개입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이번 법안 통과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라기보다 이미 수년간 이어진 정책 흐름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권 강화는 각종 포퓰리즘(popu-lism·대중주의) 정책과 맞물리며 높은 사회적 지지를 받아왔고, 점진적으로 확장돼 왔기 때문이다.또한 노동권 강화의 혜택은 일부에 국한될 뿐 모든 노동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노란 봉투법은 대기업 강성 노조에 강력한 교섭력을 부여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고용자 다수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또한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일부 산업에서는 내국인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다수의 ‘월급쟁이’가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임금과 복지 상승은 제한적인 반면, 특정 노조와 일부 집단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비대칭 구조는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AI 수요 증가로 국내 반도체 기업 입지 강화

그렇다면 앞으로 투자자는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할까. 기업의 노사 리스크를 줄이는 것에 머물지 말고, 경제구조와 사회 전반적인 제도 변화의 수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전략산업으로 분류된 반도체, 배터리, AI, 로봇, 방산, 원전, 조선 등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아 중장기적으로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누릴 가능성이 큰 기업은 수혜가 확실시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AI 수요 증가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국내 기업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전망치가 지속 상향되고 있다. 반면 조선, 철강, 자동차 같은 전통적 노동집약적산업은 원청 책임 강화와 노조 교섭력 확대에 따라 비용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플랫폼 산업과 콘텐츠 산업은 노조 조직화 움직임과 정부 규제 방향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서 아직 시장은 관망 중인 것으로 보인다.

향후 10년은 한국 경제가 국가 자본주의형 거버넌스(governance·지배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산업 전략 측면에서는 반도체와 AI 및 로봇 기술 중심의 첨단 공급망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혁신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정책과 자동화 전략을 결합한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금융정책은 정부 부채 확대와 금리 안정이라는 이중 목표를 균형 있게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노란 봉투법은 결국 한국 경제가 직면한 거대한 전환기의 서막이다. 국가가 전략산업과 노동시장 및 자본시장을 함께 염두에 둔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기업과 투자자는 앞으로의 정책 흐름에 발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노란 봉투법으로 인해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는 노사 분쟁 리스크 그 자체보다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과 얼마나 긴밀하게 호흡하나에 달려 있으며 정책과 일치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 대한 선제적 준비다. 노란 봉투법은 노동시장의 제도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가 산업과 자본 배분을 직접 설계하는 흐름을 가속하는 효과가 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향후 국내 증시에서는 관련 제도 변화에 따라 밸류에이션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 전략산업과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기업은 장기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따라서 규제 혜택을 받는 종목 선별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 산업구조 전환과 정책 방향을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세제 혜택과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반면 노동집약적산업과 일부 내수 기반 기업은 비용 구조 압박과 규제 리스크를 동시에 견뎌야 할 수 있다. 앞으로 투자자는 개별 기업 실적뿐 아니라 정책 방향과 산업별 지원 수준 그리고 노동시장 구조 변화까지 함께 고려하는 다층적 분석이 필요하다.

결국 법과 제도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를 선제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하는 투자자만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 정부가 경제의 ‘보이는 손’으로 자리 잡는 시대에 투자자는 법과 제도의 변화를 투자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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