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전 스타, 프로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는가?

올가을에도 어김없이 ‘정기 고연전(연고전)’이 치러졌다. 60년의 전통을 이어온 정기전은 19~20일 이틀간 농구·축구·야구·빙구·럭비 5개 종목에서 양교가 자존심을 걸고 맞붙었다. 이 가운데 농구는 19일 고양체육관에서 치러졌다.
‘정기 연고전(혹은 고연전)’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맞대결이란 역사적 의미를 넘어 이제는 대학 스포츠를 대표하는 범문화적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재학생들만의 무대가 아니라 프로 구단 스카우트, KBL 팬, 언론, 일반 관중까지도 이 경기에 주목한다.
당연히 선수들에게는 남다른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는 특별한 무대다. 특히 드래프트를 앞둔 이들에게 정기전은 자신의 이름을 프로 구단에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다. 수천 명의 관중과 언론의 시선 앞에서 치러지는 단판 승부는 압박감 속에서의 정신력, 리더십, 스타성을 증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다.

KBL 드래프트 자료를 집계해 보면, 최근 10년간 연세대·고려대 출신으로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는 총 40명. 이 가운데 올스타에 선정되거나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 부문에서 리그 상위 5위권에 든 선수는 13명에 불과하다. 성공률로 따지면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점은 13명 가운데 양준석을 제외하면 모두 정기전에서 두드러진 활약(10점·5리바운드·5어시스트 이상 중 하나)을 선보였다는 사실이다. 정기전에서의 성과가 곧 프로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프로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은 정기전에서도 확실히 빛났다는 이야기다.
대표적 사례가 연세대 출신 이정현(소노)이다. 그는 2021년 KB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고양 오리온에 지명됐다. 데뷔 시즌 평균 9.7점 2.7어시스트로 무난히 출발한 그는 단 2년 만에 정규시즌 평균 22.8점 6.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현재 KBL을 대표하는 가드로 평가받는 이정현의 활약은 사실, 대학 시절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2018년 정기 연고전에서 신입생 신분으로 13점을 올리며 팀의 2연승을 이끌었을 때부터 ‘슈퍼 루키’의 등장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 양준석(LG)은 연세대 20학번으로 2020~2021년 코로나로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고, 2022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했다.

반면 대학 무대에서 ‘차세대 스타’로 불리던 선수들이 프로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9년 정기 연고전에서 고려대 주장으로 나섰던 박정현은 연세대 빅맨들을 상대로 19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을 지배했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그는 같은 해 KBL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창원 LG에 지명됐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대학 무대만큼의 임팩트를 이어가지 못했다.
조성원 감독 체제에서는 평균 15분 가량을 뛰며 5점 3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쏠쏠한 백업 센터로 활약했지만, 상무 복무 이후 팀이 조상현 감독 체제로 바뀌면서 입지는 급격히 줄었다. 2024-2025시즌에도 그는 평균 8분 출전에 그쳤다.
이처럼 정기전의 반짝임이 곧바로 프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기전의 ‘스타 탄생’이 일종의 착시효과를 불러와 팬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심어주기도 한다. 결국, 그 진가는 프로 무대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기 연고전이 남기는 것
이쯤 되면 ‘무용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정기전은 여전히 의미 있는 무대다. 드래프트와 프로 성적에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수천 명의 관중 앞에서 긴장감을 견디며 리더십과 잠재력을 드러내는 경험 자체가 선수의 가치에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특히 구단 입장에서는 정기전 같은 압박 속에서 흔들림 없는 멘탈을 보여주는 선수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정기전이 사실상 선수들의 ‘무대 적응력’을 검증하는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점에서 존재 의미는 여전히 크다.

올해 정기 고연전 역시 많은 구단 관계자들의 관심 속에 열렸다. 특히 얼리 엔트리로 2025-2026 KBL 신인드래프트 참가를 앞둔 문유현, 윤기찬(고려대), 강지훈, 이유진(연세대)이 주목받았다. 문유현이 16점으로 기대에 부응한 반면, 다른 선수들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정기전은 선수들의 평가를 새롭게 바꾸는 무대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또 다른 발견도 있었다. 신입생 양종윤(고려대)은 정확한 3점슛과 안정적인 리딩으로 16점을 기록, 고려대의 57-48 승리를 이끌며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앞으로도 우리는 환호와 착시 사이에서 수많은 ‘스타의 순간’을 목격할 것이다.
물론 연고전의 반짝임이 프로 무대의 성공으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연고전이 한국 농구에서 몇 안 되는 ‘스타 탄생의 장’이라는 점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 이 무대에서의 기억은 선수들의 커리어 출발점이자 팬들에게는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는다.
#사진_점프볼DB(유용우,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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