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고숙련 퇴직자를 ‘시니어 인턴’으로…“경험은 늙지 않아요”
⑰노인일자리, 단순노무직 말고 없을까(하)
‘시니어 인턴’ 병수·종수씨의 노년
주된 일자리 더 오래 머무르도록 하고,
60살 이후 계속고용 사회적 합의 필요

‘경험은 나이 들지 않는다.’ 영화 ‘인턴’(2015)의 홍보 포스터 속 문구다. 70살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30살 사장 줄스(앤 해서웨이)의 비서로 일한다. “노인은 별로”라는 줄스에게 그의 동료는 “평생 경험을 지닌 인턴을 상상해보라. 지난 4년을 비어퐁(술자리 게임)이나 하며 보낸 청년보다 낫다”고 설득한다. 벤은 40년간 쌓아온 직장생활의 노하우와 인생 경험을 줄스에게 전수한다. 연령 차별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시니어 인턴’은 아직 낯설다. 고령 취업자가 늘고 있지만 경험을 전수할 일자리는 많지 않다. 여기,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시니어 인턴들을 따라가 봤다.
#65살 병수씨의 경우
지난달 19일, 화학섬유 소재를 생산하는 휴비스 전주공장에서 이병수(65)씨가 입사 3년차 최성민(30)씨와 중압반응설비를 둘러보고 있었다. 공장에서 병수씨는 “가장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분”으로 통한다. 그는 1984년 휴비스 전신인 삼양사로 입사해 정년을 맞았다. 이후 회사가 진행하는 국외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가 지난해 5월부터 청년 직원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민간형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는 60살 이상 고령자 고용 촉진을 위해 인건비를 지원하는 시니어 인턴십 제도(열쇳말 참조)를 운영하고 있다. 전주공장에는 시니어 인턴 19명과 이를 통해 18개월 이상 근속으로 이어진 고령자 40명이 일하고 있다. 월 급여는 평균 350만원 안팎이다.
중압반응설비는 섬유 소재의 반죽을 만드는 일종의 압력솥과 같다. 설비가 가동되다가 문제가 생기면 원인 진단과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을 일러주는 것이 병수씨의 임무다. 그의 또다른 젊은 동료인 국진호(36)씨는 “입사 10년차이지만 공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전부 파악할 수가 없다”며 “신속하게 원인을 찾아 손실을 줄이려면 내공이 쌓인 선배님의 도움이 필수”라고 했다. 얼마 전에도 진호씨는 원료가 반응설비로 송액되지 않는 문제가 생겨 당황했는데 병수씨의 도움으로 복구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올해 만 65살이 된 병수씨는 아직 자신을 노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받는 것조차 불편하다. 중압반응설비는 기본적으로 고열이 필요하다. 연일 이어진 폭염에 설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더해져 공장 내부는 무더웠고 소음도 컸다. 그는 “대부분 업무는 호출룸(제어실)에서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67살 종수씨의 경우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협력사인 하이서비스는 울산조선소 사무동의 시설관리를 맡고 있다. 이곳에도 시니어 인턴 15명이 근무한다.
현대중공업 퇴직자 출신인 김종수(67)씨도 그중 한명이다. 조선업 경기가 안 좋았던 2018년에 정년퇴직을 했다. 재고용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입사 동기들은 각자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에는 낚시도 다니고 산악자전거도 탔지만 마냥 쉴 수는 없었다. “체력은 펄펄 나는데” 점차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밀려왔다. 다른 회사를 거쳐 하이서비스 인턴(월 급여 300만원 안팎)으로 들어왔다.
종수씨는 전기 파트의 업무를 맡고 있다. 퇴직 전 직장에서 하던 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현대중공업의 시설관리 업무가 하이서비스로 외주화됐기 때문이다. 종수씨도 오랜 기간 축적해온 경험치로 해결하는 일들이 적잖다. 하익석 하이서비스 대표는 “전기가 갑자기 나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전기배선 도면을 보고 천장을 뜯어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도면과 안 맞는 경우가 있으면 젊은 직원들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했다.

73살까지 일하고 싶은데, ‘주된 일자리’ 53살에 밀려나
고령자 고용을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된 일자리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병수·종수씨의 경우처럼, 퇴직한 이후에도 연관 업무로 재취업하는 것이 좋다. 인적자원 활용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큰데다, 노동소득과 업무 만족도를 모두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정 정년인 60살 이전에 ‘하던 일’에서 밀려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주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연령은 52.9살(올해 5월 기준)에 그친다. 같은 조사에서 고령층이 평균 73.4살까지 일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격차가 크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미시 자료 분석(2024년 5월 기준)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 나온 뒤 재취업한 임금노동자 중 고연령일수록 현재 일자리가 ‘전혀’ 또는 ‘별로’ 관련 없다고 했다. 56살에 37.9%로 가장 낮았고, 60살 43.2%, 65살 53.2%, 70살 59.6%로 높아졌다. 주된 일자리에서 비자발적 사유로 퇴직하는 비중이 높고 이후 재취업이 되더라도 기존 업무와 무관한, 상대적으로 저임금 일자리에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60살 전후 고령자의 노동 궤적을 10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한국노동패널조사를 활용해 2010~2022년에 55~62살을 경험한 이들의 노동시장 지위(그래픽 참조)를 살펴본 것이다. 정년까지 정규직 노동자 지위를 유지한 집단 규모는 대략 14.5%(정규직 유지+정년퇴직 및 재취업)에 불과하다. 최근 출생 코호트(같은 시기에 태어난 인구 집단)일수록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현재 시점에서 분석하면 20% 안팎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노동시장의 지위는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정규직 유지형이 월 290만원 정도 노동소득과 주 41시간 안팎 근무를 일정하게 유지한 반면 비정규직 유지형은 소득 수준이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 근로시간이 짧았지만 소득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다. 단순노무직과 시간제 종사자 비중이 높은 영향이었다. 심지어 비임금 근로자 유지형은 정규직 유지형보다 소득이 낮았지만 근로시간은 더 길었다.

‘계속고용’ 공전 속 기업에 재량권, 사회적 합의 서둘러야
‘하던 일’을 좀더 오래 하기 위한 당면 과제는 60살 이후의 계속고용 방안이다. 국민연금을 타는 나이는 차츰 늦춰져 2033년엔 65살이 된다. 법 정년과 격차가 5년이나 벌어지지만, 이 기간의 소득절벽을 메울 방안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계속고용 방식은 크게 세가지다. 정년폐지와 정년연장, 그리고 재고용이다. 전임 정부가 재고용에 방점을 뒀다면 현 정부는 정년연장을 추진한다. 어떤 방식이든 임금수준과 고용 기간 등 근로조건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어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상당 기간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면서, 기업들은 각기 ‘알아서’ 고령자 고용에 대한 재량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년퇴직자가 원할 경우 사실상 거의 전부를 최대 2년까지 재고용하는 현대자동차와 같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 병수씨가 다니는 휴비스 전주공장의 경우, 근무평가가 우수한 퇴직자를 중심으로 재고용 대상을 선별한다. 김승구 경영지원팀장은 “2000년대 초반 경영 사정이 어려워 한동안 신입 사원을 뽑지 못했는데 그 여파로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숙련도 높은 퇴직자 재고용으로 기술 전수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기업으로선 훈련 비용이 따로 들지 않아 재고용을 선호한다. 고용 규모나 계약 기간, 근로조건 등도 기업 재량에 달린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 가운데 37.9%가 재고용 제도를 두고 있다. 다만 퇴직자 입장에선 재고용을 원하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이 발생한다. 병수씨도 “자리를 얻지 못해 경비 업무 등으로 재취업한 동료들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승구 팀장은 “청년 채용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측면도 있어 법제화 전에 개별 기업이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간혹 근로계약이 종료된 뒤 당사자는 한번 더 연장될 줄 알았다고 주장하면 난감해진다”고 했다.
대기업인 휴비스와 달리, 인력난을 겪는 중소 규모의 하이서비스는 사정이 좀 다르다. 원청에서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퇴직자들은 필수 인력이다. 하익석 대표는 “건강에 이상이 없으면 70살까지 일하도록 취업규칙에 포함했다”고 했다. 대신 고령자들은 석달에 한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다. 상대적으로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아닌 탓에 고령자 고용 의존도가 높다.
고령 노동자의 근로조건도 큰 쟁점이다. 기업에 65살까지 계속고용을 의무화한 일본은 임금 삭감분의 일부를 고용보험이 보전한다. 계약직 재고용이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승호 연구위원은 “일본 사례를 보면 과도하게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들이 법정 소송에 나서는데 그간 축적된 판례를 보면 30% 정도 삭감은 허용하는 것 같다”며 “국내에서도 계속고용을 위한 로드맵을 정하는 과정에서 근로조건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과도한 임금 삭감을 방지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어떤 식으로 도입할 것인지 등이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열쇳말: 시니어 인턴십 제도는 60살 이상의 신규 및 계속고용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민간형 노인일자리 사업이다. ‘일반형’은 총 9개월간 1인당 최대 270만원, ‘세대통합형’은 300만원, ‘장기취업유지형’은 최대 280만원을 지원받는다. 18~36개월 이상 장기근로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올해의 경우, 총 7만명분의 예산이 편성됐다. 병수씨처럼 청년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세대통합형은 1010명에 그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계속고용 1인당 월 30만원씩 3년간 인건비 지원)과 ‘고령자 고용지원금’(고령자 고용증가 1명당 분기 30만원씩 2년간 인건비 지원) 제도를 두고 있다. 다만 지원 대상 요건이 까다롭고 예산 규모가 작다는 지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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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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