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랄랄레로 트랄랄라 앞에 멈춰선 아재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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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진열대에 매달린 키링(Key ring)에 시선을 강탈당했다.
"햐, 이렇게 조악한 걸 판다고?" 며칠 후 상어 이름이 '트랄랄레로 트랄랄라'이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더 황당했다.
'트랄랄레로'와 그 친구들은 올해 초부터 틱톡과 릴스, 쇼츠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얻으며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고, 전 세계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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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하고 무의미한 캐릭터들
청소년 사이에서 밈으로 유행

얼마 전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진열대에 매달린 키링(Key ring)에 시선을 강탈당했다. 하나같이 기괴하고 허무맹랑한 형태였는데, 실수로 잘 못 만든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예를 들면 세 발 달린 상어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거나 개구리 얼굴에 타이어 몸통, 사람 다리를 합쳐 놓은 식이다. "햐, 이렇게 조악한 걸 판다고?" 며칠 후 상어 이름이 '트랄랄레로 트랄랄라'이고,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밈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더 황당했다. "이런 게 왜 유행이지?"
트렌드에 뒤처지기는 싫어서 운동화 신은 상어를 탐구해 봤다. 그러나 뭐든 논리적으로 따지려 드는 50대 '아재'는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져들었다. 악어 대가리를 단 폭격기, 몽둥이를 든 통나무, 냉장고 몸통을 가진 낙타… 굳이 정체를 규정하자면, 동물과 무기, 과일과 사물을 AI 툴로 아무렇게나 합성한, 하찮은 이미지와 무의미한 내레이션의 반복일 뿐이다.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 '카푸치노 아사시노' 같은 이탈리아풍 이름에서도 맥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이 AI 찌꺼기들은 '이탈리안 브레인롯'이라 정의된다. 브레인롯(Brainrot)은 '뇌(Brain)가 썩는다(Rot)'는 뜻의 합성어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2024년을 관통한 단어로 브레인롯을 선정했는데, 숏폼이나 AI슬롭 같은 저품질 콘텐츠에 반복 노출되면 정신 건강을 해치고 지적 수준마저 퇴보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다. 브레인롯 중에서도 유독 황당무계하고 무의미한 캐릭터로 주목받는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내레이션에 종교나 인종 차별적 내용을 은근슬쩍 섞거나 아이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등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트랄랄레로…'와 그 친구들은 올해 초부터 틱톡과 릴스, 쇼츠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얻으며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고, 전 세계 청소년들을 사로잡았다.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성인들이 AI 이미지에서 거부감과 불쾌감을 먼저 느끼는 데 비해, 논리적 사고를 관장하는 전두엽이 덜 발달한 아이들은 AI의 엉성함과 기이함, 비논리에 친숙하다. 어떤 이미지든 AI로 조합하고 즐기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보니, 고양이와 새우를 조합한 캐릭터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이미 캐릭터 100개 이름 맞히기 챌린지가 유행하고 인터넷쇼핑몰에선 봉제인형, 키링 같은 굿즈 판매도 활발하다. 온라인 게임은 물론, 밈코인으로까지 만들어지며 자산 형성 도구로 각광받기도 한다.
나름의 탐구 결과를 종합하면,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전형적인 AI 시대 밈(Meme)이다. AI 툴로 아무나 쉽게 생성한 독특한 이미지가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공유되고 수없이 변형, 확장하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퍼져나갔다. 다시 말해 AI와 밈, 숏폼이 한데 얽힌 채 빠르게 소모되면서 새 트렌드를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칠가이'나 '지브리스타일'처럼 갈수록 유행 주기는 짧고 꼬리를 물며 등장하는 새 트렌드는 따라잡기 쉽지 않다. 특히 눈 깜짝할 사이 뒤처지고 마는 '쉰 세대'에게 현실은 더욱 버겁다. 뒤처지지 않으려 바둥거리다 뇌가 썩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를 만난 시장통에서 아재는 여전히 버퍼링 중이다.

박서강 기획영상부장 pindropp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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