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알바 18만원 매일 상납… "불법 추심, 죽어야 끝이 날까"

최현빈 2025. 9. 2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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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서 갚아야지."

상환 기한(일주일)을 넘기자 하루 5만 원의 '연장비'를 내놓으란 욕설 섞인 협박이 시작됐다.

추심 업자들이 피해자 가족과 지인은 물론 딸의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피해자 약점을 유포하며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고, 지난 7월 대부업법 개정안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최고 금리를 위반한 추심업자의 처벌 수위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각각 5년 이하, 2억 원 이하로 대폭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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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 사망 1년, 추심 피해자 인터뷰]
대학 제적, 주 7일 알바로 '연장비' 갚아
80만원 빌려 이자만 1000만원 넘게 내
"가족 알게 될까 봐 두려워 신고도 못 해"
17일 세종시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진호씨가 불법 사채업자에게 입금한 계좌 거래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최현빈 기자

"따서 갚아야지."

지난 4월 말. 온라인 도박에 빠져 있던 김진호(가명·27)씨는 통장 잔고 200만 원이 바닥나자 대부업 중개 플랫폼에 접속했다. 순식간에 날아든 수십 건의 문자메시지 중 4곳을 골라 이름, 나이, 직장 등 신상정보를 적었고, 전화번호부도 동기화했다. 가족, 지인 연락처가 몽땅 넘어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땐 몰랐다. 대부업체 1곳당 20만 원씩 빌린 80만 원을 전부 잃는 데는 10분도 안 걸렸다.

김씨는 한 달 뒤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 월급 말고는 별다른 수입이 없었다. 상환 기한(일주일)을 넘기자 하루 5만 원의 '연장비'를 내놓으란 욕설 섞인 협박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김씨는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해 버는 일당 18만 원을 고스란히 대부업체 4곳에 보내고 있다. 이렇게 넉 달간 연장비 명목으로 1,000만 원 넘는 돈을 갖다 바쳤는데도 원금 160만 원('선이자' 명목으로 최초 원금의 2배를 상환하는 조건)은 그대로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 22일 불법 사채업자들의 추심에 시달리던 30대 싱글맘이 여섯 살 딸을 두고 숨진 채 발견됐다. 수십만 원을 빌렸는데 빚은 1,000만 원 수준으로 금세 불어났다. 추심 업자들이 피해자 가족과 지인은 물론 딸의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피해자 약점을 유포하며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고, 지난 7월 대부업법 개정안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악덕 추심에 시달리는 채무자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지난 17일 세종시의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달라진 거요? 하나도 없어요."

그래픽=김대훈 기자

김씨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느라 출석하지 못한 대학에선 제적됐고, 이자를 갚으려 돈을 빌리러 다니다가 지인들과 연락도 다 끊겼다. 그는 "절벽에 매달려 살아가는 심정"이라며 "내가 죽어야 (추심이) 끝날까 싶다"고 털어놨다.

인터뷰 도중에도 김씨는 연신 휴대폰을 봤다. 화면엔 이날 아침 9시 12분 전송된 텔레그램 메시지가 떠 있었다. "입금 시간이다. 한 번만 더 내 연락 씹으면(무시하면) XXX 다 뜯는다." 온종일 계속되는 협박에 밤잠을 설친 지도 꽤 됐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도 새벽까지 뒤척이다 거의 2시쯤 잠드는 것 같아요. 언제 문자가 올까 불안해서 일찍 깨게 되고요."

21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차용증을 든 채무자 사진과 이름, 나이 등 신상정보는 물론 가족들 사진과 전화번호까지 버젓이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올해 7월 시행된 대부업법 개정안엔 연 이자율이 60%를 넘겼거나 협박 등 반사회적 행위가 수반된 대부계약은 '원천 무효'로 하는 규정이 신설됐다. 최고 금리를 위반한 추심업자의 처벌 수위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각각 5년 이하, 2억 원 이하로 대폭 올랐다. 그런데도 김씨가 신고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심코 넘긴 휴대폰 연락망 때문이다. 특히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될까 봐 그는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불법 사채업자들이) 대포 통장에다가 선불폰을 쓰니까 잡는 데 시간이 걸릴 텐데 그사이에 내가 신고한 걸 알아채고 가족들에게 연락할 것 같아 무서워요."

사실 김씨도 경찰서를 한 번 찾은 적이 있다. 그러나 민원실 직원으로부터 "우리 소관이 아니니 금감원(금융감독원)에 문의하라"는 무미건조한 안내를 받고 발걸음을 돌렸다. 싱글맘을 죽음으로 내몬 사채업자가 지난 5월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났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한 뒤엔 좌절감이 배가 됐다. 김씨는 "저도 잘못한 게 있으니 죗값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애절한 표정으로 기자에게 말했다.

"추심에 사용되는 대포 통장을 신고 즉시 정지할 수 있는 법이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 같은 사람들도 다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요. 근데 그렇게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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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106280004477)

세종=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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