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서 홍대까지… N72번 심야버스, 주말엔 외국인 세상

구아모 기자 2025. 9. 2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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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취재팀 이틀간 직접 타보니

“이태원에서 홍대로 가자!”

지난 20일 오전 0시 45분 서울 용산구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버스 정류장.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막 넘긴 시각, 폭우를 피해 뛰어든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 20여 명이 뒤엉켜 있었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금발의 독일인 남성이 맥주 캔을 든 채 비틀거렸고, 바로 옆 20대 일본인 여성 관광객 2명이 웃으며 “너모 재미써(너무 재밌어)”라고 했다. 그 뒤로 인도·네팔에서 왔다는 청년 무리들이 여러 번 홍대를 외쳤다. 이들 모두 ‘올빼미 버스’란 별칭으로 불리는 N72번 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토요일인 20일 오전 2시 서울 N72번 심야 버스가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N72번 버스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홍대·신촌·이태원 등을 통과해 새벽에도 붐빈다. 요즘에는 ‘외국인 만원 버스’가 됐다./최하연 기자

심야 버스인 N72번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과 중랑구 공영차고지를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하루 아홉 차례 왕복 70㎞를 달린다. 번호 앞의 N은 밤(Night)이란 뜻으로, 밤 11시 30분부터 새벽 3시 45분까지 운행한다. 지하철 운행이 끊긴 뒤 서북·동북권을 관통하는 몇 안 되는 노선으로, 심야 택시 승차 거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2022년 신설됐다. 그런데 최근 주말마다 ‘외국인 만원 버스’로 변한다. 홍대·신촌·이태원 등 대표 번화가마다 정차해 갈수록 늘어나는 외국 관광객들의 ‘발’이 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본지 취재팀은 지난 15일과 20일 이틀간 새벽 심야 버스를 직접 타보고, 지켜봤다. 20일 오전 1시 40분쯤 찾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중국에서 온 관광객 왕샤오위(22)씨를 만났다. 그는 아이돌 그룹 세븐틴 멤버 민규의 팬이 돼 한국을 찾았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N 버스는 단돈 2500원에 번화가를 오갈 수 있는 저렴하고 안전한 교통수단이었다. 이태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탄 그는 “한국은 밤에도 치안이 좋아 안심된다”고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르르 버스에 타자 버스 기사는 “카드 플리즈” “노 머니, 온리 카드”라고 외쳤다.

20일 오전 1시 40분쯤 찾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앞 버스 정류장 모습./ 최하연 기자

한 버스 기사는 “최근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서인지 N 버스가 평소 주말보다 더 붐빈다”고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홍대에 숙소를 잡은 외국인들이 저녁에 이태원에서 관광을 즐긴 뒤 N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날 새벽 2시 30분 이태원 앞 정류장에서 ‘탑승 전쟁’이 벌어졌다. 뒷문이 열리자 승객이 다 내리기도 전 승객들이 밀려 들어왔다. 내부가 미어터져 버스 기사가 문을 닫지도 못했다. “백(back·뒤로)! 백!”이라는 버스 기사 고성이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버스를 타지 못한 관광객들은 영어로 욕설을 내뱉었다.

지난 16일 새벽 1시쯤 서울 용산구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버스 정류장 모습./최하연 기자

버스 탑승을 포기한 다른 외국인 관광객 무리는 택시 기사들에게 “하우 머치 홍대(홍대까지 얼마인가요)”를 외쳤다. 브라질에서 온 루이즈(28)씨는 “라틴 음악을 많이 틀어주는 이태원 클럽이 좋아 연속 이틀 이태원을 찾았다”며 “그런데 오늘은 버스 타기도 힘들어 숙소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시 교통 통계에 따르면, N72번 버스 하루 평균 승차 인원은 2022년 523명, 2023년 840명, 2024년 1224명으로 2년 만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N 버스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외국인들이 목격되면서 최근엔 ‘서울의 심야 1호선’이라고도 불린다. N 버스와 지하철 1호선 모두 구간이 긴 데다가, 눈에 띄는 독특한 복장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그래픽=김성규

외국 관광객 승객이 늘면서 일반 승객과 기사들 불편도 커지고 있다. 자정 넘어 퇴근길에 오른 자영업자 김모(58)씨는 “삼각지에서 신설동 가는 버스를 타려 해도, 홍대서 놀던 외국인 관광객들이 2차로 이태원에 몰리면서 버스가 매번 꽉 차 귀가하기 힘들다”고 했다.

버스 기사들 사이에선 “금요일 근무가 다가오면 걱정된다”는 말도 나온다. 이태원 인근에선 과음한 승객들이 구토를 많이 하고, 신촌·홍대 인근에선 외국인 남성들이 한국 여성에게 헌팅을 자주 시도해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버스 운전 경력 10년 차인 이모(68)씨는 “평일엔 승객 절반이, 주말엔 10명 중 7~8명이 외국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 이렇게 외국인이 많은지 새삼 체감하고 있다”며 “새벽 차고지에 무사히 돌아오면 ‘오늘도 큰일 없이 끝났다’는 생각에 한숨을 돌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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