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505>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선왕조실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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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참판 박습이 아뢰었다.
위 문장은 1416년(태종 16년 9월 2일) '조선왕조실록' 권 32에 실린 내용 중 일부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조업하는 왜인들에게 "울릉도는 본디 조선 땅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남의 나라를 침범하였는가?"라며 꾸짖어 쫓아내고, 독도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왜인을 쫓아내었다.
독도에 도착하니 '독도 KOREA'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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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聞武陵島 … 傍有小島… ·문무릉도 … 방유소도 …
호조참판 박습이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강원도 도관찰사로 있을 적에 무릉도에 대해 들었는데 … 곁에 소도가 있고 … ”(戶曹參判朴習啓: “臣嘗爲江原道都觀察使, 聞武陵島 … 傍有小島 ….” 호조참판박습계: “신상위강원도도관찰사, 문무릉도 … 방유소도 … ”)
위 문장은 1416년(태종 16년 9월 2일) ‘조선왕조실록’ 권 32에 실린 내용 중 일부이다.
무릉도는 울릉도, 그 곁에 소도(小島)는 독도(獨島)를 일컫는다. 실록의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옛날에 방지용(方之用)이란 자가 15가(家)를 거느리고 입거(入居)했다. 삼척 사람 전 만호(萬戶) 김인우는 “군역을 피하는 자가 도망해 울릉도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하였다.
다음은 안용복(安龍福)에 대한 기사이다.
비변사에서 안용복 등을 추문(推問)하였는데, 안용복이 말했다. “저는 본디 동래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에 갔다가 마침 중 뇌헌 등을 만나서 … 드디어 같이 배를 타고 … 그 섬에 이르렀습니다. …”(備邊司推問安龍福等, 龍福以爲: “渠本居東萊, 爲省母至蔚山, 適逢僧雷憲等 … 遂同乘船 … 俱發到本島)
숙종실록 권 30에 실린 1696년(숙종 22) 9월 25일 기사이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조업하는 왜인들에게 “울릉도는 본디 조선 땅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남의 나라를 침범하였는가?”라며 꾸짖어 쫓아내고, 독도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왜인을 쫓아내었다.
그는 1693년(숙종 19) 처음 울릉도에 가서 일본 어선이 불법으로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고 일본까지 가 항의하였다. 그는 17세기에 일본과 울릉도, 독도 문제를 확실히 담판 지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의 대실학자인 성호 이익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 권 3에서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 왜인들의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하였으며, 한 고을의 땅을 회복하였다. …’고 평하였다.
필자는 독도 연구가인 황용섭 박사 등과 함께 오늘 아침 일찍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독도에 들어갔다. 독도에 도착하니 ‘독도 KOREA’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란 말이다. 독도경비대 관계자들을 만나 “수고 많으십니다”는 인사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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